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현실을 진실로 변하게 하는 방법 | 사랑이란 무엇일까? |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Buddhastudy 2024. 8. 20. 19:31

 

 

현실이 변하기 위해서는요.

현실의 기본 골격 자체가 변해야 돼요.

기본 골격, 뭡니까?

관념망 현실회로예요.

이것 자체가 변해야 돼요.

 

근데 이게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이냐면요.

인체의 골격을 새롭게 하는 어떤 수술하고도 같아요.

아니면 재활훈련하고도 같아요.

 

온몸에 틀어져 있는 뼈와 근육을 새롭게 하고

혈액과 에너지의 흐름을 새롭게 바로잡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이게 뭐가 될까요?

관념 분석과 허용, 재규정의 그 과정이 되는 것이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현실이 변하려면

현실의 기본 골격 자체가 변해야 된다.

그리고 이거는 말 그대로

내 인체의 골격을 새롭게 바로잡는 어떤 수술하고도 같아요.

환골탈태, 말 그대로.

 

또한 각자의 관념 회로가 모두 다르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데만도, 만나는 데만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겁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현실에 휘어진 골격을 바로잡아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돼요?

당연히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죠.

 

이와 같은 전체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신다면

현실이 마음공부를 통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임을 수긍할 수가 있습니다.

 

힘겨루기가 나타나는 거죠.

기존의 관념들과 새로운 관념들의.

 

새로운 관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는 세상의 중앙 무대를 차지하려 하고

한 번 그 정권의 맛을 본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메인 카르마라고 부르는 그 아이들이에요.

이 관념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를 쓰고 버티려고 하고

여기에서 여러 가지 온갖 공작들이 오고 가겠죠.

간첩도 서로 보내고

그다음에 그때그때 관념이들끼리 서로 간의 이득에 따라서 이합집산을 거듭하게 되고요.

로비도 하고, 미인계도 쓰고

별일이 다 일어나겠죠.

이거 전부 다 관념이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그게 인간사회에서 인간관계 안에서 그대로 투영돼서 나타나는 겁니다.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말하자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 듯하네요.)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항복이라는 것은 조금 그 개념이 달라요.

허용이 일어나야 돼요. 항복이라기보단

항복은 체념 일종의 도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허용은 그런 게 아니에요.

조금 이따 살펴볼게요.

 

여러분, 처음부터 이 부분을 알고 있으면

이제 마음을 이렇게 내시는 거예요.

변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인격화한 관념이들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면 아이들이 변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는데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또 내면아이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버티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보존하기 위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진정한 변화를 위한 첫 번째 스텝은요.

우리의 삶을 출력해 내는

관념이들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왜 이렇게 안 변하지? ”

한탄하고 자포자기하고 그러지 마시고

우리의 삶을 출력해 내는 관념이들

그럴 만하기 때문에 그러하고

그럴 만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라는 사실

이 현실을 출력해 내고 있는 관념이들 개개인의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마음

이 마음이 필요한 거예요.

이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허용이라는 여정이 시작이 되게 되는 거죠.

 

이 허용의 마음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현실적인 근본적인 어떤 그 변화는

현실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나타나기 힘들어요.

 

변화가 나타나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았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또 힘을 강하게 써버리면 돌아가고 말죠.

휘리릭 하고

반복되는 패턴 안으로 다 윤회하고 말죠.

 

허용에 대해서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진정한 힘은 허용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허용에는 한 가지 비밀스러운 이치가 그리고 원리가 숨어져 있습니다.

이게 뭘까요?

 

우리가 현실을 바꾸고자 할 때

새로운 관념을 선택해서 받아들이려 할 때

현재의 내 현실을 출력해 내고 있는 낡은 관념들은

무엇으로 치부됩니까? 걔네들은 뭐 취급을 할까요?

낡은 관념들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요?

 

...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현재의 내 현실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뭐 하려고 합니까?

밀어내려고 하죠.

기존의 것을 싹 뽑아버리고 밀어버리고

내 입맛에 맞는 것,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것을 심으려고

얘네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배척하죠.

뿌리 뽑고, 배척하고, 미워하고.

그러니까 얘들의 존재를 뭐 하기 시작하는 겁니까?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부정적인 것들을 부정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정하는 척해도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죠.

왜냐하면 다 알기 때문에 그래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반복할게요.

부정적인 것들을 부정해서는 변화하지 않아요.

이게 왜 그렇게 되는지 살펴볼게요.

 

지금의 내 현실을 만드는 관념이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해 버릴 때

나의 현실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속성은 무엇으로 규정되어 버릴까요?

부정성으로 규정되어 버립니다.

나의 현실을 유지하고 있는 에너지 자체를

부정적으로 흐르게 만들어버려요.

 

그렇다면 내가 나의 현실에 뭐를 계속 퍼부어주고 있는 거예요?

부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퍼부어주고 있는 거예요.

미움, 증오, 원망, 배척

얘네들을 나의 이 지긋지긋한 현실과

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낡은 고정관념이들한테

미움, 증오, 원망, 배척을 쏟아부으면 부을수록 어떻게 된다는 얘기입니까?

부정성이라는 속성 자체는 강화시키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부정적인 것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세요?

부정적인 것들의 역할

얘네들은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뭘까요?

부정성을 표현하는 게 임무겠죠.

부정성을 표현하는 게 부정적인 것들의 역할이에요.

그들의 임무예요.

 

그런데 볼게요.

이 역할 때문에 얘네들은 어쩔 수 없이

항상 미움받고 배척받아야만, 배척되어야만

그 존재가 유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반복할게요.

부정성은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서죠?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예요.

역할이 뭐예요?

부정적인 것을 표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임무에요, 얘들이.

 

부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정당해야만 유지됩니다.

항상 미움받고 배척받아야만 오히려 그 존재가 유지돼요. 오히려.

 

허용이라는 것은요.

부정성이 가진 속성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배척받아야지만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슬픈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그런데 인정받기 시작해요.

욕먹지 않고 배척받지 않고 외면받지 않고 인정받기 시작해요.

얘네들의 존재 자체를, 얘네들의 역할을, 얘네들의 가치를, 얘네들의 의미를.

 

아까도 말씀드렸죠.

얘네들은 맡은 바 역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항상 뭐 당해야 됩니까?

미움받고 배척받아야만 되는 거예요.

근데 왜

이 부정성이들이 이런 대접을 받아줘야지만

긍정성에 해당하는 것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부정이들이라고 그런 대접을 받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성, 전체성, 동시성 안에서

얘네들이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어주지 않으면

나타날 수 있는 것 자체가 없어요.

긍정성도 부정성도.

 

어찌 됐든 얘네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진짜 가슴으로 한번 묵상해 보세요.

깊이깊이.

 

그랬더니 이게 웬걸

내가 나의 현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미워하고 밀어내고 바꾸려고 하는 마음을 내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부정성에다가 물을 주고 있었구나

얘네들을 밀어내고 배척하고 있는 그게

오히려 얘네들의 존재를 유지시켜주고 있었구나.

그걸 아셔야 돼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부정성은요, 부정을 통해서 부정할 수가 없어요.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관념들을 전부 다 인격이라고 말씀드렸죠.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얻어맞는 역할, 샌드백 역할을 맡는 겁니다, 얘들이.

그리고 절대로 환영받지 못하는 역할을 맡아요.

항상 부정만 당하고, 외면만 당해야 돼요, 얘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외면받고 배척받아야만

부정성이라는 속성이 유지되면서

얘네들이 존재가 유지될 수 있어요.

슬픈 일이죠, 너무 슬픈 일이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처음으로

받아들여지고 허용받는 느낌을 느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외면과 배척이 멈추네요.

그럼 어떻게 돼요?

부정성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얘네들의 또 다른 모습인 긍정적인 얼굴로 변하기 시작하죠.

 

...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현실을 진짜 바꾸고 싶으면요.

지금 내가 바꾸고자 하는 현실을

밀어내거나 어떤 배척받는 대상으로 취급하시면 안 돼요.

없애버려야 할 것

아까 막 여러 가지 여기에 참여하신 분들

여러 가지 채팅 내용이 있었잖아요.

오랑캐 취급, 찬밥 취급, 적폐 취급,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또 동시에 또 뭡니까?

지금 나의 어떤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

이러한 관념이들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죠.

얘네들이 그대로 자기 자신을 펼쳐낸 게

이 현실이라는 지금 3D입체 영상이란 얘기예요.

 

얘네들도 뭐예요?

얘네들을 바꿔버려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그 순간

부정성으로 내 삶 전체가 전환됩니다.

나의 삶의 에너지가 부정성으로 전환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 계속 이 부정성을 부정하는 동안에는

부정성이 오히려 어떻게 돼요?

탄력을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