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190년 동탁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반동탁 연합군에서의 유비 관우 장비의 활약에 따라
동탁을 비롯한 부하 및 장졸들이
수도인 낙양을 불태우면서
장안으로 천도하는 전개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는 반동탁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도주하는 성격의 장안 천도가 아니라
이미, 동탁의 주도로 천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반동탁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모여들자,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정태는 동탁을 설득하는 데 있어 10가지 이유를 들어
동탁이 군대를 징발하는 일을 막았으나
정태의 계책은 가후에게 가로막히며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동탁이 연합군을 토벌하는데
군대를 모으는 일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정태의 설득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황제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중앙 세력의 권력을 독차지한 동탁이었지만
사실 동탁이 군대를 모으고자 동원령을 내린다 해도
당시, 한나라 전역에서는 이미 동탁에 대한 반발이 컸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징집에 호응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겁니다.
우선, 동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서량 양주 지역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한수와 마등이 난을 일으켜
중앙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며
남서쪽에 위치한 익주는
영제시절부터 유언이 자리 잡으며
잔도를 끊고서는 아예 조정과 연락을 두절한 상태였습니다.
형주 남양군의 태수 장자는 형세를 관망 중 이었는데
근방에서는 원술이 반란군을 집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강남에서 출발한 장사 태수 손견은 원술과의 협업을 통해
세를 모아 낙양 쪽으로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낙양 주변의 수도권인 사례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기주, 연주, 예주에서는
자사인 한복, 유대, 공주가
연합군 병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젊고 패기가 넘치는 원소와 조조
장막, 장초, 포신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낙양과는 거리가 아주 멀리 있었던
유주와 청주 서주 등의 지역조차 중앙의 손길이 닿지 않아
도겸과 진온은 형세를 관망하고 있었고
그나마 유주에서는 인망이 두터우며
한나라 조정에 충성심이 높았던 유우는
동탁이 권력을 잡고 있더라도, 끓어오르는 연합군보다는
여전히 국가에 변함없는 충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한편, 유우의 부하이자 유주에서 소문난 장군인 공손찬은
연합군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세만 불리는 데 신경 썼는데
이러한 전국 각지의 세력 분위기로 보았을 때
이미 동탁은 연합군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었거나
군웅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던 겁니다.
동탁이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큰 병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사례와 병주 정도의 지역이었는데
병주 지역은 후한 말기에 이르러 나라가 어지러워지면서
장연이 이끄는 흑산적과 황건적의 잔당인 곽태가 이끄는 백파적이
한나라의 관군들을 제압하며, 병주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탁이 무리하여, 병주 지역의 백성들을 상대로
군대를 징집하거나 재물을 수탈한다면
더욱 민중의 반란이 거세지면서 도적의 수만 늘어날 판국이었습니다.
한편, 동탁이 주시하고 있던 관군의 병력은
장안이 포함된 경조와 풍익 지역을 총괄하고 있었던
황보숭이 이끄는 서량 토벌군으로
실질적으로 동탁이 걱정했던 주요 군대는
전투에 어줍잖은 경험을 지니고 있는 반란군의 군대가 아니며
얼마 전, 황건적을 함께 토벌했던 당시 중랑장 직책이었던
전투 경험이 풍부한 황보숭과 주준, 노식이었습니다.
이 중 노식은 삼국지 35편에서 정권을 차지한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낙양에서 도망치며, 은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장기 시절부터 변방 지역에서 숱한 전투를 경험해 온
동탁의 시선에서 반란군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교모와 한복, 유대, 공주는 전장에 나가본 적도 없었고
그나마, 당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던 원소라든가
지략이 뛰어난 조조 등이 있었지만
아직 30대 나이의 햇병아리로 여겼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자신을 노리고 낙양을 압박해 오는 과정에서
동탁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황건적 토벌의 용사 황보숭으로
만약, 황보숭이 반란군에 호응한다면
동쪽에서는 반란군이, 서쪽에서는 황보숭으로 인해
그야말로 동탁은 궁지에 몰린 쥐가 될 판국이었습니다.
황보숭에 이어, 또 한 사람의 두려워한 인물인 주준은
황건적의 난 이후, 하내 태수가 되어 흑산적들을 막아냈으며
그 후 왕윤의 뒤를 이어 하남 윤으로 임명되고서는
하남에서의 치안 담당, 병력에 대한 지휘권도 갖고 있었습니다.
동탁은 주준의 성실성과 충직함을 탐내고 있었기에
세간의 좋은 평가에 대한 질투를 감추고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동탁이 조정 중신들을 은밀히 모아 수차례 회의를 하며
낙양에서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했을 때
주준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동탁은 그의 명성을 중하게 여겨 함부로 죽이지는 못했고
천도를 동의한다면, 부상국으로 승진시켜 데려가준다고 약조했지만
이를 거절한 주준의 행동이 소문으로 인하여
동탁의 비밀 천도 계획은 조정에 모두 퍼지게 되었습니다.
동탁은 이왕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이제는 힘으로 밀어붙여서라도 일을 진행해야겠다 여겨
태위 황완, 사도 양표, 사공 순상 등
삼공을 만나 천도에 대한 뜻을 확고히 밝혔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조정 중신들은
얼마 전에 황제를 폐립하고 헌제를 내세우더니
연이어 수도마저 바꾸려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어 반대하고 싶었으나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눈치를 보며 천천히 말을 꺼내던 황완과 양표가
수백 년간 이어온 도읍을 바꾸는 일은
백성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말을 했다가 당일 즉시, 직급이 면직되었습니다.
양표의 후임으로 왕윤이 사도가 되면서
천도하는 일을 주관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반란군의 주요 핵심 인물들을
면밀히 살펴보던 동탁은 최근 들어 지방관으로 발탁된 인사들이
모두 주비와 오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동탁은 오경과 주비가 적과 내통했다고 간주하여 모두 죽여버렸고
이를 지켜보던 황완과 양표는 크게 겁을 먹고서
동탁을 찾아가 자신들의 잘못을 빌며, 다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천도를 급박하게 서둘렀던 동탁은
다음으로는 천자의 이름으로 황보숭에게 조명을 내려
수도를 장안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천자를 보위하라고 명했습니다.
장안으로 건너가라는 조명이 떨어지자
황보숭의 부하들은
조명을 따르는 일에 결단코 반대하면서
지금은 동탁을 따를 때가 아니라
연합군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황보숭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후한 시대에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문무겸비한 충신으로
국가에 대한 배신을 할 수 없었던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동탁은 바로 황보숭이 충신이라는 점을 노려
명분을 만들어, 직책에서 물러나 성문교위로 불러들였고
황보숭의 군대는 모두 동탁 아래로 편입되었습니다.
황보숭의 군대를 흡수한 동탁은 아군을 더 만들기 위해
서량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한수와 마등을 포함한
해당 수령들을 모두 사면하고 관직을 수여하겠다고 제안하니
원래 조정 출신이었던 한수와 마등은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항복에 응했습니다.
이렇게, 동탁은 낙양에서 고립되었던 상황을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황보숭을 무력시킴과 동시에
물리적인 거리에서도 낙양보다 연합군에서 멀어질 수 있었고
서량의 지원까지 받으며, 든든한 군세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40번째 시간으로
정사 삼국지에서의 동탁,
장안 천도 계획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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