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가 할 때
내가 남자다, 여자다, 아무개다 하는 것은 전부 생각.
그 생각이 없을 때
지금 생각 없을 때도 유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지금 이렇게 보는 거예요.
가장 직접적으로 직접적인 생명의 활동.
생명의 활동은
이 현상을 경험하는 거예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생명 활동인데
그것을 압축하면
가장 직접적인 것은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
지금 ‘보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
이게 가장 지금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보세요.
지금 이 순간 보고 계시죠?
그 보는 것이 [의식]이에요.
보는 것이 생명이에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지금, 지금 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보고 있는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게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게.
지금 이렇게 보고 있는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이 자기의 [성품]
성품이라는 말은 불교 용어인데
이걸 가장 쉽게 말하면 [본질]이라는 뜻이에요.
본질, 자기의 본질
자기의 본질은 지금 뭐 하는가?
여러분 놀랍게도 우리의 본질은
인생 100년, 365일, 24시간, 매 순간순간 살아서 작용하고 있어요.
단 1초도 예외 없이.
밤에 깊은 잠에 잘 때조차도 우리의 본질인 생명은
계속 작용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깊이 잠들어도 안 죽는 거예요.
안 죽었죠?
여러분 어젯밤에 깊이 깊이 잠들었을 때 다 사라졌잖아요.
그렇지만 아침에 멀쩡하게 깨잖아요.
생명이 1초도 쉬지 않고 작용하고 있었다.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런 말을 왜 하는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진리는
명백한 사실은
지금 이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우리 각자가
지금 이렇게 보고 있는 것
이게 진리예요.
이게 가장 구체적인 사실이에요.
지금- 이렇게- 보고 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한번 느끼는 것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보고 있다는 거를
스스로 느끼는 것.
보고 있는 이것이 나의 본질이다.
이것이 나의 의식이다.
그리고 이 의식을, 자기의식을 한자로는 [마음 心] 자를 써요.
마음 심자를 쓰는데
마음 심자를 지금 우리들은
[의식]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와닿아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의식이 이렇게 보고 있어요.
느끼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느낌이 깨달음이니까
(느낄 각)자가 (깨달을 각)자니까
느낄 覺자가 느낄 覺
느낄 각자가 곧 깨달을 각자랑 같죠.
각, 느끼는 것이 깨달음이에요.
지금 느껴보세요.
지금 보고 있다.
근데 뭐가 보느냐?
눈을 통해
눈이 보이지는 않죠, 오케이?
눈은 물질이에요.
물질이 스스로 볼 수는 없어요.
그러면 눈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의식이
눈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다.
근데 의식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 각자의 의식이 이렇게 눈앞에
-지금 눈앞에
-여러분하고 저 사이
-지금 여기
여기에 의식이 꽉 차 있는데
이거를 제가 투명한 물을 놓쳐서 못 봤듯이
지금 우리가 못 보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제일 중요한 공부의 급소는
[견성]이다.
[성품을 보는 것]이다.
[성품은 자기의식]
그럼 자기의식이 어디 있는가?
지금 이 전체가, 이 공간 자체가 의식 공간이에요.
이 공간 자체가 의식이에요.
여기 지금 들어앉아 있으면서 이걸 못 본다.
왜 못 보는가?
투명해서 못 본다.
너무 맑아서.
그 사실을 돌이키면
지금 이 순간, 음미해 보세요.
긴 말할 것이 없이, 음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음은 음미하다가 깨달아요.
음미하다가
“아, 그러네”
이게 깨달음이에요.
음미를 하다가
“어, 그러네” 하는 게 깨달음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보는 이것이 나의 의식이에요.
나의 의식이 현상을 보고 있어.
긴말이 필요 없어요.
깨달음은 긴말이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본질인 이 변하지 않는 투명한 의식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현상을...
현상은 생겼다가 변해서 사라지고 있어요.
이걸 지금 보고 있어요.
언제나 이랬어요.
놀랍게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1초도 예외 없이
언제나 의식이 눈앞을 보고 있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1초도 예외 없이
의식이 이 세계를 이렇게 보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지금도
이거 알아차리는 게 견성이다 이거예요.
견성이다.
근데 이렇게 제가 말할 때
의식은 손가락이에요.
제가 지금 말하는 의식이라고 하는 말은
손가락이에요.
제가 손가락으로
의식이라는 말로 가리키는 의식 자체
실물로서의 의식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그 달을 봐야 되는 거예요.
저는 손가락을 가리킬 수밖에 없어.
그러면 의식이 어디 있는가?
지금 눈앞에 이것 자체가
시야.
시야라는 말 아세요?
시야.
시야가 의식이에요.
모든 사람의 시야가
그대로 그 사람의 의식이에요.
그 의식 속에서 살아.
그리고 의식이 보고 있어요.
모든 사람한테서 의식이 보고 있는 거예요.
이게 김아무개다 박아무개다, 혹은 남자다 여자다
황인종이다 백인종이다 흑인종이다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사실은 강아지나 고양이까지도
똑같이 의식이 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몸을 나라고 알고 살다가
의식이 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깨달음이란
몸을 나로 알고 살다가
“의식이 나네.”
지금 이 순간 보는 이것.
지금 봅니까?
여러분 저 보이십니까?
저를 보는 것이 여러분의 의식이에요.
이 말도 수긍이 되나요?
그리고 그 의식을 느껴보세요.
느껴보세요.
지금 이렇게 보면서
보는 자기의식을 느낀다.
이게 느껴야 달을 보는 거예요.
못 느끼면 손가락만 보는 거에요.
자기의식을 느껴야 돼.
근데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말씀을 해드리면
제 말을 듣고
시선을 현상에 뺏겼던 시선을 잠깐 돌려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의식이 이렇게 살아 있다.
깨어 있다.
그리고 안다.
자기의식 아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자기의식 알겠는 사람?
다음에 자기의식 모르겠는 사람?
보세요.
자기의식이 “이게 의식이구나”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의식이죠.
그리고 “아직까지 나는, 나의 의식을 좀 감을 못 잡겠다”
‘감을, 의식을 모르겠다’ 하는 그것도 의식이에요.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의식이 뭔지 아직까지 확인을 못했습니다”하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하는 게, 그게 의식이라고.
다시
“뭔지 모르겠어요” 하는 게...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한 인간의 인생 100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매 순간순간
그 사람이 알든 모르든
실제로는 그 사람의 의식이 이렇게 사는 거라고요.
모르겠다 하더라도 모른다는 그거야
안다 하더라도 아는 그거예요.
지금 몰라도 돼.
그런데 모르는 그거야.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리는 깨달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깨달아 있어서
이해되세요?
뭘 해도 의식이니까 뭘 해도 깨달아 있어.
‘의식은 깨어 있다’ 이 말 이해되세요?
모르겠다고 하는 것도
그게 의식이 깨어 있으니까 모르겠다 그러잖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일거수일투족이 의식이 이렇게 작용하고 있어.
누구를 통해서?
자기를 통해서
그러면 자기의식이 이렇게 지금 있어서
이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나타나는 것은 현상이죠.
의식은 본질인데 여기에 나타나는 건 현상이죠.
그러니까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도 현상이고
선생님이 나타나면 선생님도 현상이고
기독교인 같으면
갑자기 예수님이 딱 나타나도 현상이다, 이거예요.
의식은
한 인간의 인생 100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매 순간순간
작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있잖아요.
이해되세요?
지금도 있잖아요.
지금도 있어야 진리잖아요.
그럼 지금 있는 거는 뭐냐?
멀쩡하게 지금 보고 있는 이거예요.
이렇게까지 맹물 같아.
지금 특별한 뭐가 있어요? 지금 보는 이것이?
그래서 무위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진리인 본질인 의식의 모든 작용은
무위, 힘이 들지 않아요.
맹물 같아.
그래서 이걸 못 알아차리는 거예요.
이게 무위법, 이해돼요?
힘이 안 들어.
거저 주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를 못 알아차리는 거예요.
근데 이런 말을 듣고 한번 돌아보는 거예요.
돌아봐야 돼.
돌아보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자기의식을 한번 이렇게 확인을 해야
비로소 이 의식과 이 의식의 집에서
의식 자체가 자기 집에서 잘 안 나가게 돼
나가더라도 빨리 돌아오게 돼.
일반인들은 의식이 집 나가서
그냥 길을 잃어서 x고생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돌아갈 집을 알아야 돼.
이해돼요?
나가서 헤매고 있다가
돌아와서 딱 자기 집이라는 걸 확인해야 돼.
그리고 자꾸 돌아오는 거예요.
자꾸 돌아오기.
그래서 힘이 붙으면
웬만하면 멀리 안 나가기
필요할 때는 의식을 쓰고
그리고 끝나면 돌아와서 있고.
여러분 빨리 깨달아야 돼.
그냥 깨닫는 데는 다른 거는.
꿩 잡는 게 매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냥 깨달으면 돼.
제일 쉬운 깨달음은
제일 쉬운 깨달음은 전염되는 거예요.
깨달음은 전염성이 있어.
왜냐하면 여러분한테 없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뻔하게 매 순간순간 여러분한테 있는 거
지금도 작용하는 거
‘그거다’라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알아듣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알아듣는 게 최고야 이거는.
그래서 돌이키면 꿈을 꿀 때
실제로 꿈을 보는 것은
의식이 보는 거예요.
꿈을.
여러분 우리 돌아보면 꿈을 봤죠.
꿈속에 있는 아무개가 본 게 아니고
꿈을 꾸는 의식이 꿈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꿈을 깨도 의식이 그대로 있으니까
다 기억을 해.
그러니까 꿈을 누가 보느냐?
꿈을 꾸면서 누가 보느냐?
꿈을 꾸는 의식이 본다, 이거예요.
그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보느냐?
여러분, 이 감각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보느냐?
지금 이 의식이 보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볼 때를 지각할 때는 생각이 못 붙죠.
이해돼요.?
이렇게 깨워가지고 이렇게 빨리 봐.
요때는 생각 안 하잖아요.
[생각 안 하면 나가 없다]니까요.
안 그래요?
생각 안 하면 김아무개가 어디 있어요?
김아무개 하려면 생각을 떠올려야지 그게 김아무개지.
그러니까 이렇게 볼 때는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으면
그냥 의식이 보는 것일 뿐이다], 이거예요.
이게 사실이다. 이거 사실
실상.
나머지는 여기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 복잡해져
한 생각이 일어난 즉
가지가지 사건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심멸즉_ 그 한 생각이 사라지니까 모든 복잡한 일들이 다 사라지더라.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
이때 법은 Thing이에요.
법이라는 말은 유위법_ 인연 따라 생기는 것들
한 생각이 일어나니까
한 생각이라고 하는 인연 때문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꼬리에...
그러니까 원효가 해골물 시원하게 마셨고, 잘 잤다가
아침에 해골 보고
한 생각이 “아이고 더러워”하니까
토하고 막 난리 쳤다 이거예요.
그래서 깨달았다 이거예요.
한 생각이 없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한 생각이 일어나니까 온갖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이걸 깨달았어.
깨달으니까 그 한 생각이 사라지니까 모든 문제가 사라지니까
“아, 중국 유학 안 가도 되는구나.
이거 깨달으려고 중국 가려고 했는데
갈 필요가 없네“ 하고 돌아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문제가 생기는데
한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게 사라졌죠.
오케이?
뭐가 남아요?
이 문장 뒤에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생각이 없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남는 게 뭐냐?
지금 이거를
이게 너무 투명하니까 구슬이라고 불러.
마니주(여의주)라고 쓰는데
마니하고 주가 같은 뜻이에요.
지금 눈앞에 있는 의식이
지금 보고 있어요.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이 마치 구슬 같아.
투명한 구슬
요즘 말로 요즘 젊은이들 말로 홀로그램
빛을 쏘면 입체적인 이미지가 나타나서 실제로 공연하는 것 같아.
음악도 틀어 놓고 하면
깜빡 실감나게 하는 거예요.
홀로그램.
사진이 입체 사진
지금 눈앞에
홀로그램에
변하지 않는 의식이라고 하는 홀로그램에
삼라만상의 이미지가 인연 따라 이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나타난 것의 특징은 시간성을 가지고 있어
[현상은 시간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 이해돼요?
*!
소리가 시간적이죠
이해돼요?
소리가 시간적이다.
생겼다가 사라진다. 맞아요?
지금 이 순간에 찰나가, 현재가
지금도 현재- 현재- 현재
시간적이죠. 그렇지 않나요?
현상은 그 자체가 시간이에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서 이렇게 보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보여지는 것은
생겼다가 사라지는 현상인데
보는 이것은 변하지도 않고, 모양도 없고.
근데 이것에 대한
제가 이거를 할 수 없이 [생명]이라고 먼저 말을 했고
두 번째 [의식]이라고 말을 했는데
생명의식은 손가락들이에요.
근데 이거를 통해서
여러분이 자기의 지금 살아서, 깨어서,
소리 들리면 소리 알죠?
아는 거예요.
[각]이라는 말이 [안다]는 뜻도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소리 들으면 소리 알아요. 몰라요.
그게 부처다 이거예요.
그게 여러분 의식인데
그 의식이 살아있는 의식이죠.
그 의식이
개구리 반찬은 죽었어요? 살았어요?
개구리 반찬은 죽었을지 몰라도
‘개구리 반찬 살았어? 죽었어?’ 하는 그거는
살아있다 이거예요.
이것이 언제나 살아있다.
확인돼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어요.
살아있는 그 의식.
그냥 아는 거.
그러니까 선사들이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졸리면 잘 줄 아는 거다” 이러잖아요.
“지금 화장실 가야 되는데
왜 안 끝내고 저렇게 말을 계속 하고 있느냐?” 하고 알잖아요.
아는 그거예요.
진짜 간단 명료하게
그리고 아는 그건데
몰라도 모르는 그거예요.
그러면 24시간 자기한테서 증명된다 이거예요.
그리고 이 의식 속에
지금 아무리 좋은 말도 전부 관념이에요.
의식 속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이에요.
하다못해 부처님이나 하나님까지도.
여러분 놀라운 말이에요.
하다못해 부처님이나 하나님까지도
이 의식이 있으니까 여기서 일어나는 개념들이에요.
그러니까 전부 다 손가락들이야.
부처님이 뭘 가리키는가?
2500년 전에
혹은 저 불당에 앉아 있는 그분 말고
지금 보고 있는 지금 이거
안이비설신의 중에서
안이 첫 번째 나오는 이유는
인간한테 보는 게 9할이에요.
인간이 감각하는 것 중에서
보는 이게 9할을 차지해요.
그러니까 정보량이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에서 시각 정보가 90%예요.
그러니까 안이 제일 앞에 나온다 이거예요.
그럼 지금 보잖아요.
저는 힘 안들이고
저분은 검은색이고, 푸른색이고, 빨간색의 지금 잠바는 베이지색이고
이게 컬러가 지금 한눈에 그냥 다 들어오네.
뭐가 이렇게 알아요?
저의 노력하지 않아도 아는 것,
무위법
무위법_ 힘들이지 않아도 다 알고 작용하는 것.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의 본질이다. 이거예요.
이거 하나를 우리가 알아채는 것이 공부에 시작이다.
그다음은 뭐냐?
집 나가는 걸 자꾸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수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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