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독서당에서 풍광 즐기며
사가독서한 사대부들, 조선의 동량이 되다
성리학군주 청년임금 세종의 뜻은 자못 원대했다.
천년왕국의 근본은 인재, 성리학 사대부들의 학문연구를 장려했다.
세종 8년(1426) 집현전 학사 몇몇을 불러 독서휴가를 명했다.
“집현전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독서를 하며 학문에 정진하라”
사가독서賜暇讀書제의 시작이다.
그러나 사가私家는 시끄러운 법
사가독서를 명 받은 성삼문 신숙주가
조용한 절에서 책을 읽는게 좋겠다고 세종에게 건의한다.
세종은 1442년 북한산 남쪽 기슭의 진관사(현재 은평구 진관사)의 건물 중 일부를
‘독서당’으로 내어준다.
산사에서 학문에만 정진하니 젊은 사대부들의 실력이 늘어날밖에.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사육신의 산실 집현전을 폐쇄하며 사가독서제까지 중단시켰다.
성종이 다시 시작했다.
1492년(성종 23)에 마포에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열었다.
연산군에 의해 다시 중단됐다가
중종이 1507년에 부활시켜
동대문구 숭인동에 있던 정업원淨業院을 독서당으로 만들었다.
정업원 독서당이
학문연마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신하들의 의견에 따라
중종은 1517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두뭇개(한강과 중랑천 합수부)에 있는 정자를 고쳐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을 마련해줬다.
청년 사대부들이 한강 최고의 풍광을 즐기며
독서와 학문 연마에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준 셈이다.
독서당은 영조 때까지 존립했지만
정조 때 규장각奎章閣이 세워짐에 따라서 제도 자체가 소멸되었다.
영조까지 48회, 320명의 청년 사대부들이 사가독서를 경험하며
조선 조정의 기둥이 되었다.
‘사가문신’은 가문의 큰 영예였고
당대의 학문 높은 사대부가 임명된 대제학은
대개 사가문신 출신으로 임명됐다.
우리 시대에는 정부 관료들과 대학교수들이 안식년의 혜택을 누린다.
자영업자들과 산업 일선 노동자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안식년’처럼 재충전하는 제도를 산업계 일반에 도입하도록 제도화시키는 일은
한낱 꿈일런가.
저도 창업 21년을 포함해 27년 간 산업계에서 일했는데,
창업 10년을 맞은 2012년 3월부터 4월까지
겨우 1개월의 ‘사가독서’를 떠난 바 있다.
계란후라이로 서울 지도를 만든 건 지인의 작품이다.
한명회가 압구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던 강남은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 되었다.
하지만 한강 최고 풍광은
두뭇개에 위치한 해발 100m 높이의 응봉산과 달맞이봉에서 즐길 수 있다.
한강뷰가 아름다운 이곳을 찾아가서
유유자적 한강과 서울의 풍광을 즐기며
책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동호독서당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도로의 이름으로 남겨져 있다.
한남역 교차로에서 응봉삼거리까지 도로의 이름이 독서당로이다.
# 한강걷기 코스 : 옥수역 – 응봉산 – 한강둔치
옥수역에서 내려
응봉산과 달맞이봉에 올라
한강과 서울의 경치를 감상한다.
주간의 풍경도 좋지만,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가볍게 산행을 마친 후
한강둔치로 내려와
한강과 중랑천의 합수부 두뭇개와 옛 모래섬 저자도의 흔적, 살곶이다리를 살펴보며
걸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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