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세요. 부처님 우리 남편은 바른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남편 시킨대로 잘 따라 하겠습니다. 요렇게 기도하세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바른말만 하는 사람이라니까. 아저씨가 기도하지 마라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이러고 안 하면 되지. 그런데 아저씨 시키는 데로만 한다 이러면 우리가 복종하라 이렇게 들리잖아 그죠? 마음속에서 당신 생각이 틀렸어 이러면서 겉으로는 할 수없이 아저씨 시키는 데로 하면 이건 복종이요. 복종. 비굴. 복종하고 비굴한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나쁜 거지. 아저씨 시키는 데로 안하고 내 고집대로 하면 이건 교만 그래. 교만. 교만한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나쁜 거지. 그러면 누가 뭐라 하든 내 갈 길은 간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는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그 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나를 안 내세우고 공손하게 겸손하게 사는 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좋은 거지.
그러니까 지금 질문하신 분은 남편 시키는 데로 안하고 제 멋대로 하는 교만하거나. 아니면 시키는데로 복종하고 비굴하게 살거나, 이 둘을 왔다 갔다 한단 말이오. 비굴하게 살다 보니까 반발이 생기잖아. 그죠? 그래서 내 맘대로 하겠다 하고 고개를 쳐드니까 이 또 교만해지잖아. 그죠? 교만해지면 안 된다. 하니까 또 고개를 숙이니까 또 비굴해 지잖아. 그러니까 세상이 뭐라 그러든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당당하게 살라 그랬죠? 붓다라는게 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존재가 부처님이요. 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이렇게 선언하셨단 말이오. 저 신들의 세계. 모든 인간 세계로부터 다 벗어났다 하는 속에는 남편의 굴레로부터도 벗어났다는 거요. 안 벗어 났다는 거요? 벗어났다는 얘기요. 그런데 털 끝만큼도 구애 받을 필요 없이 당당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당당하면 겸손해 집니다.
남편이 이렇게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남편이 저렇게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그러면 겸손하고 당당한 삶을 어떻게 살까? 지금부터 연구를 좀 해 보세요. 기도하지 마라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게 겸손한 자세로서 네 알겠습니다냐? 비굴해서 네 알겠습니다냐? 남편이 절에 가지 마라 하는데도 절에 오는 것은 당당해서 절에 오는 거냐? 말 안 듣고 반항해서 절에 오는 거냐? 절에 오는 건 똑같은데 그게 당당할 수도 있고 교만할 수도 있고. 남편이 하지 마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할 때도 비굴 할 수도 있고 겸손할 수도 있는데. 절에 가지 마라 하니까 안가는 것만 갖고 말 할 수 없고. 절하지 마라 한다고 안하는것만 가지고 말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건 똑같다 하더라도 그것이 때로는 비굴할 수도 있고 겸손 할 수도 있어요. 상대가 뭐라고 말하든 내가 하는 것이 그것이 당당할 수도 있고 교만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 우리남편이 하는 말은 다 옳습니다.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거는 내 고집 내 생각을 내려놔라. 이런 얘기요. 비굴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교만을 버려라 겸손해라 이런 얘기요. 그런데 절에 와서 이렇게 법문 들어보니까 이게 가정을 버리라고 가르쳐요 가정을 더 화목하게 잘 하라고 가르쳐요? 내 고집을 세우고 내 맘대로 하라고 가르쳐요 좀 겸손하게 자기를 숙이라고 가르쳐요? 어리석게 이러면 천당 간다 지옥 간다 이러면서 어리석음을 가르쳐요 좀 지혜롭게 살라고 가르쳐요? 그럼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봐도 여기 와서 배워보니까 이것은 나에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남편에게도 그렇고 이 가르침은 좋은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아 이렇게 하면 나는 좋지만 남편에게 해롭다든지 이 세상에 해롭다든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누가 뭐 라든 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남편이 가라 그런다 가지 마라 그런다를 기준 삼으면 안되. 그러니까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절에 다니면서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하루하루 내 삶이 변해 가는걸 보여준다 이 말이오. 그럴 때 아까 기도가 남편이 어떤 말을 하든 네 알겠습니다. 여보. 네 그렇게 하지요. 요렇게 해 나가면 남편이 볼 때 절에 다니더니 참 더 사람이 겸손해 졌다. 이런 걸 느끼겠어요 못 느끼겠어요? 느끼겠지. 그러면 절에 가는 거에 대해서 자연적 신뢰하게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너무 많은 얘기 하지 말고. 그냥 조금만 얘기하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우리 남편 하는 말은 다 바른말입니다. 남편 말 따라서 살겠습니다. 이 말은 내 아집을 내려놓는다 라는 뜻이오. 비굴 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래서 남편이 내가 기도하는데 기도하지 마라 이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탁 덮어 놔 놓고 출근한 후에 기도하면 되잖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서 저 방에 가서 기도하면 된단 말이오.
남편은 지금 복 달라고 기도하는 줄 안단 말이오. 그래서 그게 아니라 내 기도문은 당신이 말하면 내가 껍데기로는 옳소, 옳소 하고 따르는데 속에서는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스님한테 의논했더니 남편의 말은 부처님 말과 같다. 남편의 말은 다 옳다. 그냥 따라서 하는. 그러니까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내려 놓으세요. 이렇게 해서 제가 거기에 안되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렇게 못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런 지혜가 있어야 된다. 지금 사람은 착한데 지혜 없이 한다 이 말이오. 내 할 일은 다 해. 남편이 얘기하는 건 다 들어. 그럼 내 할 일 다 하는 거 하고 남편 하는 일 하고 상충되지 않느냐? 그게 문제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둘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둘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이. 그게 공부요. 그게 중도란 말이오. 부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왕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신 분이었죠. 그런데 부처님은 남의 집 밥 얻어 먹으면서 길거리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까지도 아주 겸손하셨단 말이오. 당당함과 겸손함이 같이 간단 말이오. 왜 이 좋은 법을 좋은 법을, 좋은 법을 공부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공부하는데 거기에 왜 내가 망설임이 있어야 되느냐 이거야. 밥을 굶고도 해야 되고 목숨을 바치고도 해야지. 그 길과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하는 얘기를 ‘알겠습니다 여보’ 하고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거는 또한 겸손한 자세요. 이게 왜 따로 가느냐? 같이 갈 수 있다. 그걸 지금부터 연구해 봐요. 기도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기도하느냐? 남편의 말은 다 옳습니다.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네’ 하고 숙이며 살겠습니다. 요렇게 자꾸 기도하면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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