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는 안심(마음이 편안하다) 혹은 영어로는 comfortable로 표현된다.
건강함, 좋은 느낌, 생각한대로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안심 즉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또 사회생활에서 함께하는 울타리(조직,소속)에 접속해 있을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이러한 조건들이 결핍되었을 때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상황에 대한 선택권은 없어도 상황에 대한 해석과 반응은 나의 선택임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상황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한 진정한 평화를 없다는 것에 대하여 숙고해 보는 것이다.//
오늘의 마음이 평화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펼쳐진 들판, 노란 들판이 있고, 녹색 나무들이 있고,
저 넘어 산이 있고, 푸른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서 이 평화를 잘 이루어내고 있지 못하죠.
마음이 평화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개인생활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사실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죠.
그럼 이런 것이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느냐, 어떤 내용이냐
하는 것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안심이라고 말할 수 있죠.
편안할 안, 마음 심.
마음이 편안하다라는 뜻이죠.
그럼 이 편안할 안자를 들여다보면,
집 택자 안에 여자,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집에는 엄마도 있을 수 있고, 부인도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이 글자만으로도 마음이 참 푸근하고 편안하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조금 더 뜯어보면
쾌적하다라든가, 편안하다라든가, 여의하다, 내 뜻과 같다, 이런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쾌적하다는 얘기는 몸에 고통이 없다, 상쾌하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이게 쾌락하고 조금 다른 것이죠.
평화와 관련된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편안하다는 얘기는 편안하다라고 하는 편(사람 인 변, 고칠 경)
사람이 있는 그 자연 그대로의 상태, 손을 봐서 고쳐서 편안하게 편리하게 만든 거거든요.
편안하다는 뜻은 또 다르게 얘기하면 굿 필링, 좋은 느낌을 준다. 그런 뜻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좋은 사람과 담소하면서 좋은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을 때
보통 이걸 굿 필링, 행복의 원형이라고 이야기하죠.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이것이 굿 필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또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세 번째는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일이 풀려나갈 때, 이때 흐름은 평화라기보다는 득의 한다고 그러죠.
내 뜻대로 일이 풀려나간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개인 생활에서 몸이 건강하고, 좋은 느낌을 반복적으로 받고
또 내 생각대로 일이 되어지면
우리는 보통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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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회생활에서는 마음의 평화? 혹은 편안한 마음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Comfortable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Comfortable 글자를 좀 쪼개보면
com, fort, able 이렇게 3가지고 나눌 수 있는데
com이라는 게 with라는 뜻이죠. 함께 만든.
fort라고 하는 것은 요새, 보루,
Comfort라고 하는 것이’ 함께 만든 요새’, ‘보루’라고 하는 것이죠.
함께 만든 요새 안에서 우리는, 우리라는 느낌,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우리, 울, 담, 이런 건 다 비슷한 뜻이죠.
그 속에서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안심과 Comfortable은 이런 의미가 있을 텐데
마음의 평화일 때는 요거보다 복잡합니다.
요게 다 되면 좋은데,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는 조건이니까,
이런 조건들이 이루어지면 평화로워지고
이런 조건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화는 없는 것인가?.
또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인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통이 있더라도 평화로울 수 없을까?”
“굿필링이 아니어도 감각적으로 불쾌하더라도 또는 편하지 않더라도
평화로울 수는 없을까?”
“여의치 않아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내가 고통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힌두어로 괴로움을 ‘두카’라고 하는데,
두카의 뜻은 내 뜻과 같이 아니하다, 이런 뜻이거든요.
정확하게 괴로움이라는 것은 여의치 않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없을까?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살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혼자가 될 때도 있죠.
강제로 혼자 남게 될 수 있습니다.
혼자라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아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의지할 것이 없어도 울도 담도 없어도 좀 괜찮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이룰 방법이 없는 지를 탐색해 봅니다.
한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법1
첫 번째 방법은 심리학에서 일방적으로 이런 표현을 합니다.
상황과 선택이죠.
우리는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도 선택권은 있다는 겁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또 그 해석된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완전히 나의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손댈 수는 없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수동적이거나
조건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해석하고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나는 내 마음의 평화와 관련해서 훨씬 주도적인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방법2
두 번째 방법은 조금 더 본질적인 방법인데, 본질적인 측면인데
우리는 고통이 있다 없다, 굿 필링이다 배드 필링이다, 여의하다 여의하지 않다
또 함께한다 혼자한다, 요새 안에 있다 안전한 요새 밖에 있다.
이런 구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부분은 필연적으로
이것은 좋고 이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는 호어를 낳게 되어 있죠.
그래서 우리가 구분하고 있는 한, 마음의 평화는 없다라고 하는 부분은
어쩌면 굉장히 의미있는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일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서
구분과 호오好惡라는 부분에서 일정부분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상황에 따른 평화가 아니라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죠.
마음의 평화는 일정한 조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의 평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해석과 반응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구분짓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마음이 진정한 평화의 걸림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마음의 평화라는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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