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성찰하는 자아, 눈을 떠라!

Buddhastudy 2022. 4. 5. 19:01

 

 

 

우리의 생각, 감정, 느낌은 기억을 토대로 한 정신 활동이고 이것을 경험하는 자아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고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자신의 정신 활동 자체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되는데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이것을 성찰하는 자아라고 이름을 붙인다.

성찰하는 자아가 충분히 자라나면 경험하는 자아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좌충우돌과 그로인한 상처 등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어 점차 충돌과 상처가 줄어들게 된다.

또 행동에 대한 제어력도 향상되는데 우리가 생각이나 감정에 대항하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성찰하는 자아는 냉담해지거나, 생각이 없어지거나 할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더 명석하고 사려깊은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경험하는 자아와 성찰하는 자아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인생이라는 차의 운전대를 쥘 수 있다.//

 

 

 

오늘은 성찰하는 자아라고 하는 제목으로 생각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쁘게 살고, 열정적으로 살 때에는

한발 멈추고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함께해야 하는 것인데

열심히 사는 것과 뒤돌아보는 것, 되돌아보는 것은

어느 것도 빠드릴 수 없는 중요한 일이죠.

그래서 오늘은 성찰하는 자아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정신 활동을 합니다.

정신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이죠.

살아있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정신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는 어떤 감각이 있을 수 있죠.

차다, 따뜻하다, 바람이 세게 분다, 햇빛이 좋다, 이런 감각을 합니다.

그 감각이 생각을 낳게 되죠.

그리고 이 생각을 하게 되면

이러면 어떻게 되지 저러면 어떡게 되지하면서

,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하는 감정이 생겨납니다.

 

감각과 생각과 감정은 어느 것이 먼저랄 건 없고

서로가 서로를 상승시키고 하면서 역량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돌아갑니다.

 

생각이 중심이 되어서 감각과 감성을 느끼고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기억입니다.

이 기억이 감각 생각 감정의 자료죠.

뭘 판단하려면 과거의 기억의 창고에서 판단의 근거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렇게 하는 이 전체의 과정을 /경험하는 자아/,

우린 뭔가를 경험하고 지금 현재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경험하는 자아는 맹렬하긴 하지만, 맹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고, 깨지고, 부딪히고, 상처입고 그럴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어떤 경험들이 쌓이고 반복이 일어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뭔가 지켜볼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이 정신활동을, 나의 생각 감정 느낌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자아, 또는

내가 이런 상태이구나하는 것을 아는 자아

지켜봐서 아는 자아가 점점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찰하는 자아/라고 경험하는 자아의 대비해서 이름을 붙입니다.

경험하는 자아가 다수가 목적이라면 성찰하는 자아는 눈을 뜬다는 것이죠.

자신의 정신활동을 쳐다본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그렇게 되면 이 성찰하는 자아가 처음에는 약하지만

점점점점 자라나서 상당한 힘을 갖추게 되면, 보는 힘이죠.

그러면 나의 생각과 느낌 감정, 또 기억 창고의 기억들,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이 정신 활동의 어떤 덩어리가

보지 않습니까? 벌써 객관화 시킨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이 한참 맹렬하게 돌고 있는 정신활동에 대해서 나는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런 생각과 감정들은

나에게 강렬하게 나를 휩쓸면서 행동하게 만드는데

그 행동하기 전에 나의 생각과 감정들로부터의 제어력, 그것을 다스리는 힘도 올라갑니다.

 

그렇게 해서 이 거리감과 제어력이 상승하게 되면

좋긴 좋을 것 같은데 우린 또 걱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게 혼수상태하고는 뭐가 다르지?

또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와는 어떻게 다르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다.

거리감이 커지죠.

 

내가 잘 제어할 수 있다고 하면

좀비나 사이코패스가 되는 게 아닌가하는

그건 우리의 생각이 상상 밖에 할 수 없으니까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죠.

우리가 좀 더 나를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고, 할수록

우리는 각성상태가 아주 좋고,

그리고 감정도 훨씬 더 건강하게 풍부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렇게 해서 이런 성찰하는 자아가 점점점점 자라나게 되면

이런 결론이 뜨게 되죠.

/모든 것은 정신활동 뿐이다/ 다시 생각하면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이건 내 느낌일 뿐이다./

 

그럼 뭡니까?

모든 활동은 생겨났다가 사라지죠.

생멸하는 것이다.

생멸하는 것은 나의 것도 아니고, 영원히 머무르지도 않고,

내가 여기에 휩쓸려서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이런 얘기가 쭉, 따라 나오게 됩니다.

 

, 생각일 뿐이잖아, 느낌일 뿐이잖아.”라는 생각이 들면

우리가 하나 얻는 게 있는데,

그것은 고뇌, 괴로움이 감소한다는 것이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기 전에

좀 멍한 상태에서 생각이 하나 드는 게

나이도 들었는데 별로 이룬 것도 없고, 석양에 노을은 지기 시작하고이렇게 하면

그런 생각이 어떤 것을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거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정신의 활동일 뿐이거든요.

그렇게 보면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게 고뇌 감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성찰하는 자아/를 가지고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고뇌가 감소하고

그리고 /경험하는 자아/만 있는 그런 일변도에서

성찰하는 자아가 적절히 /조화/롭게 /성장/해서 둘이 /균형/을 이루면

우리는 결국 어떻게 되느냐?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경험을 하거나 성찰을 하거나

그것은 운전대를 내가 잡는 것이죠, 그 주권을 내가 가지는 것

 

마음이 뭔지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공부의 첫 번째는

완전히 경험한 자아일변도, 맹목적인 자아로부터 벗어나서

성찰하는 자아를 가지고 슬슬슬슬 힘을 길러서

두 자아가 균형을 이루어서

고뇌는 감소되고

마음의 주체성, 마음의 주인은 점점점점 능수능란해지는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성찰하는 자아를 키워야 하는, 향상시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