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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도미니카연방에 대한 모든 것

Buddhastudy 2022. 5. 11. 19:03

 

 

 

1. 소개

도미니카연방

영어로 The Common wealth of Dominica

비슷한 이름의 도미니카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가로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상 동부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도미니카연방의 국기는

초록바탕의 노랑 검정 하양의 삼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빨간 원 안에는 노란별 테두리의 초록별 10개가 있으며

중앙에는 국조인 황제아마존앵무새가 있습니다.

초록은 식물이 풍부한 국토를

노랑은 카리브 인디언 및 특산물인 바나나를

검정은 국민의 대다수인 흑인을.

하양은 강과 호수의 맑음과 국민의 순수성을 의미합니다.

 

세 가지 색상이 십자가를 이루고 있는 형태는

삼위일체의 신앙을 나타내며

빨간 원은 사회주의를

10개의 별은 10개로 나뉜 행정구역을 상징합니다.

 

도미니카연방은 카리브해와 북대서양 사이에 낀

소앤틸리스해에 낀 섬나라로 수도는 로조입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국가로는 바다 건너 북서쪽에는 아이티.

남쪽으로는 그레나다. 베네수엘라 등이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양 750로 한국의 부산광역시 정도의 크기입니다.

 

도미니카연방국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7만명 정도이며

이는 약 350만 명이 살고 있는 부산광역시의 2% 수준입니다.

도미니카연방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5억 달러

이는 세계 177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모로코와 통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도미니카연방의 인종 구성은 흑인이 주민의

90%를 차지하며, 그 외 카리브계 인디언이 있습니다.

 

주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프랑스 방언인 파도아어가 있으며

주민의 약 60% 정도가 가톨릭교를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도미니카연방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기원전 3000년경 무렵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해온 오토로이드족으로

기원전 400년까지 오랜 기간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 후에 남아메리카에서 아라와크족이 이주했고

1400년경 호전적인 민족인 카리브족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도미니카연방은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를 통해 유럽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라틴어로 일요일을 뜻하는 도미니카로 섬 이름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원주민인 카리브 원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200년이 흐른 170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프랑스의 통치하에

유럽인들의 이주가 본격화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1699년부터 1763년까지 통치하였는데

그 후 영국과 영유권을 둘러싼 대립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외세에 적대적이었던 카리브 인디언들은

이러한 혼란한 상황을 거치며 급격하게 인구 규모가 줄어들어

1730년대에는 불과 4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805년 도미니카연방에 대한 지배권을 굳힌 영국은

1958년까지 도미니카를 속령으로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1834년 경작을 위해 유입되었던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해방으로 자유를 얻은 후

도미니카연방은 꾸준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1958년 영국으로부터 일정부분 자치권을 획득하여 서인도제도의 연방을 결성하였으나

서인도제도 연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1967년에 다시 영국의 자치령이 되었습니다.

 

1967년 도미니카연방은 외교와 국방만 영국에 의존하는 자치권을 획득하였고

1978년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지 정확히 485년 만에

완전한 독립국가로 출범하였습니다.

 

 

3. 정치& 경제

영국으로부터 독립 직후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자연재해와 여러 혼란이 수습되지 못한 상황에서

도미니카연방의 정치 상황도 매우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혼란한 시기를 거쳐,

점차 안정을 찾아간 도미니카연방은

1980년대 이후 뚜렷한 회복세에 들어서게 됩니다.

 

도미니카연방은 공식적으로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하는 공화제이지만

실질적인 행정권한은 의회 다수당의 수장인 총리가 가지는

내각 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는 행정부의 수반이자 내각회의 의장 역할을 겸합니다.

 

의회의 형태는 32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진 단원제입니다.

의회는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의원 21명과 임명직 의원 11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동일하게 5년입니다.

 

현재 도미니카연방의 주요 정당으로는 지방과

농민층의 지지를 받는 도미니카 노동당 DLP

실업계에 기반을 둔 도미니카 자유당 DFP가 있습니다.

 

도미니카연방의 경제는 농업

그중에서도 특히 바나나 재배가 주력산업입니다.

농업이 GDP20%를 차지하는 농업국가로

적은 면적의 농경지를 이용해서 바나나와 감귤, 코코아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중 바나나가 농업 비중의 90%, 수출의 40%를 차지하며

국가 경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바나나는 1930년대부터 재배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도미니카연방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바나나 산업은

차별적 관세 특혜권의 상실과

연달아 터진 허리케인 피해까지 보면서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도미니카연방은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으나

코코넛을 말린 코프라, 코코넛 오일 등과 같은 농산물 가공업이 발달했습니다.

또한 섬의 풍부한 목재 자원을 이용한 제재업도 발달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 바나나 산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도미니카연방은 관광사업을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는 전 세계에 도미니카섬을 생태 관광지로 알리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유람선 정박 시설을 개설하고

푸에르토리코 직항 항공 노선을 개설 등

정부 차원에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산지가 많고 국토 대부분이 삼림으로 덮인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앤틸의 진주로 불리는 도미니카연방은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카리브해 면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윈드워드 제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서로 29km, 남북으로 47km의 길쭉한 모양의 단일 섬입니다.

2,6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섬으로

섬 전체 면적의 2/3가 열대우림으로 덮여있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온천인 끓는 호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상당수의 지역이 개발되지 않은 지역으로 남아있어

이미 멸종했다고 추정되는 동식물의 상당수가 도미니카연방에 서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강우량과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강과 호수가 많으며

수력 발전에도 활발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연방은 열대 해양성 기후 지역으로

연 평균 기온이 약 27도 정도입니다.

연중 가장 추운 1월의 기온은 26, 가장 더운 6월의 기온이 32도 정도로

계절에 따른 편차가 적습니다.

 

돌발적으로 내리는 폭우와 늦여름에 찾아오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자연재해가 잦은 편입니다.

 

도미니카연방은 오랫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노예로 유입된 아프리카인들이 끼친 영향도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음악과 춤은

도미니카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97년부터 매년 10월 말 독립기념일 전후로 3일 동안

세계 크레올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연방 중남부에 위치한 모르네 트루아 피통 국립공원은

해발 1300m에서 1400m에 위치한 모르네 트로아 피동산을 포함하여

다섯개의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인 로조에서 동쪽으로 13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화산, 하천, 폭포 뿐 아니라

다양한 생태환경과 지질 형태를 보유하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국립공원 내에서 하이킹과 온천욕, 머드스파, 호수 수영 등

다양한 생태관광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황폐한 계곡이라는 이름의 하이킹 코스가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길이는 무려 483km에 달하며

완주시간은 8시간이 소요되는 이 코스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스팩터클한 하이킹 코스입니다.

 

또한 두꺼운 증기구름 아래에 숨어 있는 끓는 호수, 보일링 레이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우윳빛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대한 온천으로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5. 인물

도미니카연방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영화배우 헨리 윌콕슨이 있습니다.

 

그는 스펙타클 역사극으로 잘 알려진

세실.B.데밀의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할로 주연을 맡았습니다.

 

1905년 도미니카연방의 수도 로조에서 태어난 윌콕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아버지가 윌콕스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다른 양부모에게 보내지게 됩니다.

 

하지만 입양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윌콕스는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고아원으로 가게 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윌콕스는

친아버지가 새롭게 가정을 꾸리게 되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 소설가의 조수로 일하던 그는

193125세의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하였으며

2년 뒤인 1934년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후원하는

세실.B.데밀의 대형 사극 작품인 클레오파트라에서

주연으로 당당하게 캐스팅되었습니다.

 

이때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해리라라는 이름이 위엄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헨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27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윌콕슨은

이름까지 바꿔가며 영화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로마 분열을 일으키게 된

안토니우스 역할을 맡아 열연했는데요.

 

영화 클레오파트라는 개봉 당시

아카데미 주요 다섯개 부문의 후보로 올라갔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윌콕슨은 그 뒤로 세실.B.데밀이 제작한

다수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지만

배우로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그는 세실.B.데밀의 작품들의 준 프로듀서로 함께 활동하며

삼손과 데릴라, 지상 최대의 쇼, 십계와 같은 대작 작품들에 일조하게 됩니다.

 

노년에는 화가와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하다

78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