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3 : 조조를 알아본 교현

Buddhastudy 2023. 11. 15. 20:08

 

 

서기 2세기 후반에서 3세기간의 중국 내륙에서 벌어진 삼국지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그중에는 삼국지 시대가 끝난 4세기 무렵에 살았던

손성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저서에는 이동잡어’ (異同雑語)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손성의 이동잡어

주로 삼국지와 관련된 인물들을 비판하는 형식이었는데

조조의 집안을 두고서는 미천한 자들이라 논하였고

유비를 두고서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평하였습니다.

 

하지만, 비판의식이 강한 손성의 저서에서도

조조의 무예 실력만큼은 높이 평가했는데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조조는 일찍이 중상시 장양(張讓)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장양에게 발각되었다.

그러자 뜰에서 수극(手戟)을 휘두르다 담을 넘어 달아났다.

무예가 남들보다 뛰어나니 능히 그를 해칠 수 없었다.’

 

장양은 후한 말기 나라를 어지럽히던 십상시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인물로

조조의 조부인 조등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 조조보다는 다소 윗세대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연유로 장양의 집에 몰래 들어갔었죠.

조조가 장양의 집에 들어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조조는 장양의 침실에 침입해

다수의 호위병들과 싸움을 벌였는데도

전혀 다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는 아니지만, 삼국지를 소재로 한

창천항로라는 작품에서는 조조와 장양의 갈등을

재밌게 풀어낸 일화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영상은 정사 삼국지에 대해 완전히

파헤치고자 하는 영상도 아니니 편하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조는 여자를 밝히기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다른 상류층의 남자들과는 달리

반드시 뼈대 있는 귀족 가문의 여자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조조와 여성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장양의 집에 잠입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일화에 따르면, 조조가 아직 20살이 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시장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던 조조는

한 주막에 들러 일하고 있던 하녀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녀는 가게 주인이 사들여온 호인으로

중국인들과 달리 피부가 까만 여인이었습니다.

귀족 가문의 조조와 호인 출신의 하녀가 사랑에 빠져 거리를 활보하니

사람들은 독특한 조조의 취향을 두고 이해를 하지 못했으나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조조는

주막의 하녀와 결혼을 생각하게 됩니다.

젊은 혈기에 결혼 준비를 하던 조조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러 갔으나

이미 하녀는 거금을 받고 다른 집에 팔려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간 사람은 바로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이었던 겁니다.

장양은 색욕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고, 환관이었던 몸이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를 즐겼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조조는 뒤늦게 주점에 청혼을 하러 갔지만

장양에게 팔려갔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분노에 차오른 조조는 집으로 돌아가

조정에 출입할 때 입는 옷인 조복으로 갈아입고

혼자서 장양의 집을 방문합니다.

장양의 집에 도착한 조조는 안내를 받아 침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장양과 여자들이 옷을 벗은 채로 침대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조조는 장양에게 그 호인 여자는 자신과 결혼할 사람이니

돌려달라고 요청하였고, 장양은 새파란 젊은 녀석이

어이없게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보고

호위병에게 조조를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조와 사랑에 빠졌던 여자는 죽게 되고

조조는 손정의 저서 이동잡어의 묘사처럼

무예가 남들보다 뛰어나 호위병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조가 죽인 호위병들의 가족들이

조조를 탄원하며, 금세 재판으로 넘겨집니다.

 

창작물에서 이 재판을 맡은 사람은 교현이라는 인물로

말단 법관으로 설정되어 나옵니다.

장양은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교현이

법을 집행하는 것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교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조조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다면

판결을 내린 사람을 사형시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역사 속의 교현은 십상시 시절 이후, 동탁이 집권했을 때

반동탁연합군 형성을 주도했던 교모라는 인물의 숙부입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교모가 반동탁 연합군을 모집하기 위해

헌제의 칙서를 위조했다고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칙서를 위조했다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모는 삼국지 게임 시리즈에서는 최악의 군주로 설정되어 있는데

부하 장수 없이 홀홀 단신으로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조조, 유비, 동탁의 세력이 둘러싸고 있어

금세 게임오버를 맞이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교모의 숙부 교현은 서기 109년도 태생으로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이 10~20대 시절

교현은 60대의 나이로 삼국 시대보다는 한 세대 이전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품이 까다로우면서도 엄격하고 공정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교현은 부패가 만연했던 한나라의 벼슬아치들을

성실히 고발하거나 벌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변방의 수비를 지키는 장군직을 맡았을 때도

3년 동안 변경이 편안하고 조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교현의 강직한 성격을 나타내는

예를 들면, 한 번은

교현의 10살 짜리 막내아들이 혼자 문 앞에서 놀다가

유괴범들에게 납치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들을 돌려받고 싶으면 돈을 달라고 요구했고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교현은 죄를 지은 도적을 이 세상에 풀어줄 수가 없다며

병사들에게 진격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교현의 아들은 도적들에게 칼부림 당해 죽게 되고

동시에 인질범들도 죽게 됩니다.

 

교현은 자신의 아들이 죽어 슬픔에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질을 데리고 협박하는 도적들은 모두 죽여야 마땅하며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면

도적들이 더욱더 기승을 부려

다른 사람에게 더 피해를 끼칠 것이라 말했습니다.

 

평소 성품이 까다로우면서도 고집이 강했던 교현은

동시에 겸손하고 검소한 행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생활이 청렴하여

죽을 때 장례 비용도 없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역사 속의 교현은 조조와는 40살 정도의 차이로

조조가 젊은 시절에 그 인연이 닿았습니다.

조조는 환관 가문의 출신으로 그 위세가 대단했지만

명문 가문의 다른 자제들과는 달리 조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낮았습니다.

 

아직, 조조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세력이 약했을 때

한 번은 교현을 찾아가 문안한 적이 있습니다.

 

 

 

 

교현은 사람의 됨됨이를 살피며 인물평에 뛰어나기도 했는데

조조를 보고서는 다소 파격적인 평가를 합니다.

지금의 천하는 참으로 어지러우니

난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네 같은 사람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교현은 자신이 천하의 명사들을 많이 봐왔지만

조조 같은 젊은이를 본 적이 없다며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조언합니다.

 

이때부터 교현은 조조의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하며

조조를 본격적으로 지원해 줍니다.

 

삼국지의 시대에는 과거제라든가, 시험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관직에 오르는 것은 모두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추천을 해준 방식으로

이러한 평가는 조조가 앞길을 열어가는데 중요한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교현은 조조에게 명성을 얻으려면 허소를 방문하라고 합니다.

허소는 매달 초하룻날마다 향리의 인물을 골라 비평했는데

그의 월단평으로 등용된 사람들은

매우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허소는 평소 조조가 양아치 두목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은지라

조조를 앞에 두고서 쉽사리 자신의 평가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조의 재촉에 마지못해 답을 했는데

이때 바로 유명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치세의 능신이오, 난세의 간웅이다.”

 

다시 말해, 화평한 세상에는 능숙한 신하이지만

난세에는 간사하고 꾀가 많은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표현이며

후한서 허소전에서는 이와는 다른 표현을 합니다.

 

소설이 아닌 역사 기록에서의 허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이오, 난세의 영웅이라”.

, 평화로운 시대에는 악독한 도적에 불과하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이를 평정해 줄 인물로 평가한 셈이었습니다.

 

자신을 두고 간적이든 간웅이든 어떤 말을 들었던 간에

조조는 평가를 두고 아주 좋아하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이는 호인이든 악인이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만족하는 조조의 야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편, 자신의 길을 열어주었던 교현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던 조조는

교현이 죽고 나서 묘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바쳐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아들인 조비가 위나라를 통치할 때까지도

교현에 대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세 번째 시간으로 조조의 청년 시절

십상시의 대표 격인 장양과의 마찰.

그리고, 조조를 평가했던 교현과 허소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