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11 : 황건적 장각

Buddhastudy 2023. 12. 13. 19:58

 

 

후한 말기, 후한의 12대 황제, 영제는 십상시와 더불어

돈을 주고 벼슬을 살 수 있는 매관매직을 공식화 함으로써

한나라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졌습니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삶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자연재해와 기근을 대비하는데도 소홀히 하여

각지에서는 농민들이 모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중에서도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은

종교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무장을 한 농민들이

군대와 같이 훈련에 매진하며 세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교주 장각은 젊은 시절, 글공부에 뜻이 있었지만

귀족 집안의 자제도 아니었고, 아울러 관직을 얻기 위한

주변에 자신을 추천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출사의 꿈을 접은 장각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이른 나이부터 짐을 나르거나, 장사를 도우며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힘든 일에 종사하는 장각은 백성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가난과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라는 책을 접했는데

병을 고치고 몸에서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장각은 이 책을 통해 무언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집을 나선 장각은 태평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를 펼치러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길거리의 굶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초를 사용해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장각의 포교 활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자가 늘어갔고

수입이 생기자, 장각은 더더욱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병든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고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적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장각의 이러한 활동들은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가

신도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교세가 확장되어 갔습니다.

장각은 태평도를 널리 퍼뜨렸고

사람들은 장각을 두고 태평도인이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한편, 서기 180년 무렵, 그동안 관직 자리를 얻기 위해

조용히 뇌물을 바치며 거래하던 매관매직 현상을 두고서

황제인 영제가 직접 나서, 이를 법적으로 공식화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합법적으로 매관매직을

관료의 임용절차로 공식화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이 때문에 관리들은 일자리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수탈을 더욱 가속화 해나갔습니다.

 

황제와 관리의 수익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백성들은 일을 열심히 해도 세금으로 뺏기는 형국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점점 장각의 태평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는 교도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고

질병도 치료해 주니, 장각의 활동에 감명받은 부유한 장사꾼들은

자발적으로 태평도에 재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태평도에 입문한 신도들은 진심으로 장각을 믿고 의지했으며

어느새, 장각은 대현량사로 높이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장각을 신격화해 나갔습니다.

 

 

 

태평도의 교주 장각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데 힘을 썼으나

세가 확장됨에 따라, 신도들의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수십만의 넘는 신도들이 모여, 장각을 추종하고

그와 동시에 황실에 대한 원망이 커지다 보니

조정에서는 태평도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양사는 태평도의 세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 신경쓰여

영제에게 교주 장각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사도연 유도는 한층 더 공격적으로

장각을 포함한 주도하는 무리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영제는 태평도 무리에 대해서는

별일이 아니라 여겨, 일단 그대로 두었지만

조정의 대신들과 지방에서 직접 태평도의 무리를 접하는 관원들은

점점 태평도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장각의 동생들인 장보와 장량은

왜 우리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났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태평도의 우두머리들을 잡아야 한다는

소문까지 들은 지라, 이참에 난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각, 장보, 장량 삼형제는 썩어빠진 세상을 구원하고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군사력을 키워나갔는데

항상 머리에 노란 두건을 하고 다녀, 황건적이라 불렸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중국사 사상 최초로 종교집단이 일으킨 봉기로

이들의 구호는 삼국지 이야기의 초반을 장식했습니다.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누런 하늘이 일어나

갑자년에 천하가 흥할 것이다.

 

장각은 본래 난을 일으킬 생각까지는 없었고

자신의 동생들인 장보, 장량이 봉기를 재촉하는데 있어서는

개인적인 욕망이 있다는 것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각은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후, 동생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결국, 황건적이 난을 일으킨다면

실패했을 때, 많은 신도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부정부패가 발생하리라 여겼지만

이제는 태평도 교단에 너무 많은 사람들과 재물이 모였고

장각은 이들의 말에 따라 개벽을 일으키기로 결심합니다.

 

장각은 황건적의 난을 성공적으로 일으키기 위해

미리, 조정과 내통하는 창구로 마원의를 심어두었습니다.

마원의는 십상시 중 한 명인 봉서와 서봉에게 접근하여

뇌물을 바치는데 성공 및 낙양에서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장각은 자신이 신용하고 있는 제자인 당주를 불러

낙양으로 가서, 마원의가 내통을 잘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낙양 내에서도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시켰습니다.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는 시작일은 35

형주, 양주 일대에 수만 명을 모아 북상하여

기주에서 봉기할 계획으로

당주는 봉서와 서봉에게 날짜를 전달하기로 합니다.

 

 

 

영제 시대 때, 권력의 중심이었던 십상시들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10명 중에서도 환관 봉서는 자신의 존재감이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 불만이었습니다.

 

평소, 궁중 암투에 밀리고 있다고 생각한 봉서는

여느 다른 부패한 관리들처럼 재물을 밝히기를 좋아했는데

장각은 그의 욕망보다 더 큰 뇌물을 준비하여

봉서에게 조정 내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장각에게 부름을 받고 낙양에 도착한 당주는

마냥, 부정부패로만 알고 있었던 분위기와는 달리

당주가 바라보는 도성은 매우 평온하고 어떠한 혼란의 조짐도 없었습니다.

 

비록, 정치 세계에서는 십상시들이 날뛰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유능한 자들이 본분을 지키고 있는 수도 낙양은 견고함을 자랑했습니다.

 

낙양은 황하의 지류인 낙수(洛水)가 남쪽에 흘러 이름이 붙여졌으며

사방이 평야였기 때문에 농업 생산력이 뛰어나

고대 사회에서도 식량 수급에 걱정이 없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도시와 평원을 둘러싼 산악지대가

원형의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어, 군사 방어력도 뛰어났습니다.

 

도성과 황성을 지키는 정예병들은 번쩍이는 갑주를 입고 있었으며

멀리까지 명성이 자자한 황보숭, 주준, 노식, 동탁과 같은 명장들도

수도를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예 장수로 떠오르는 원소, 조조와 같이

소문난 장수들도 여럿 있어 망조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주는 황건적 무리가 마원의를 심어놓았다고는 하지만

십상시 내에서 봉서의 입지는 보잘것없이 여겨졌습니다.

봉서는 자신이 십상시에서 더 좋은 위치를 갖고자

황건적을 이용하고자 했지만, 그의 계획은 터무니없이 보였습니다.

 

결국, 낙양을 둘러보며 여러 정황을 가늠해 본 당주는

현실적으로 황건적이 세상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하여

마원의를 찾아가지 않고, 궁으로 달려가

황건적이 조정을 탈취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당주의 상서를 받은 영제는 주요 인사들을 급히 소집하고

관원들을 동원하여, 낙양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추려내어

장각의 교도 1,000여 명을 색출해 처형했습니다.

마원의 또한 체포되어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해졌으며

서봉과 봉서의 사망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때 죽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편, 업성에 도착해 있었던 장각은

35일 봉기일 전날, 마원의의 처형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동안, 장각은 혹시나 계획이 틀어지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는데

그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습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낙양 안팎에서 동시에 혼란을 일으켜

조정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순식간에 낙양을 점령하여, 순간의 기회로

중앙을 차지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들통난 후, 황제는 대장군 하진을 임명하여

전국의 있는 각 주와 군에 조서를 내려 방어 태세를 준비하였고

각지에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한 장수들과

군대를 모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황건적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부군을 상대로

낙양 밖에 있는 신도들을 모두 모아

수십만의 인원으로 낙양을 향해 공격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11번째 시간으로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태평도의 교주

장각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