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문제 해결과 마음공부

Buddhastudy 2023. 12. 26. 19:27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를 공부해야 한다.

부수적으로 문제를 대하는 마음도 공부해야 한다.

마음공부에서 말하는 문제해결의 방식은

현상은 받아들이고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은 문제 해결과 마음공부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우리의 어떤 그동안의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그렇게 해서 이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더더욱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게 쉽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문제 해결을 하려면 먼저 문제를 공부해야 되겠죠.

문제를 잘 이해하고, 해결책을 실천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러스, 그것과 더불어서 마음공부도 할 필요가 있죠.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문제가 상당 부분의 문제가

내 마음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음공부의 1차적인 목적은

사실은 문제 해결이 아니고

[문제에 대한 나의 태도에 관한 공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일반적인 문장 표현이 이렇습니다.

모든 문제는 나의 생각에서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거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생각이 나를 부려먹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생각이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나의 괴로움을 더 깊게 만들어 간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게 생각과 생각하는 자에 대한 주종 관계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서열을 정립하지 않으면

생각이 나를 부려 먹게 되기 때문에

나는 번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런 자각이 마음공부의 전체적인 틀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그 결과로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마음공부를 하면

세상에 어려운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까?

취직을 할 수 있습니까?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요즘은 그런 사람은 없긴 한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문제 해결과 마음공부는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 다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문제는

즉 바깥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사실 내가 통제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예측도 못하고, 통제도 못하는 것이죠.

그걸 이제 스트레스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내가 통제하거나 정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겠죠.

그것만큼은 나에게 우선권이 있다.

 

근데 어떤 경우에는

그것마저도 타인의 해석이나 상황에 맡겨버리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좀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을 공부한다라고 하는 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놓고 보면

수많은 상황에 부딪힐 때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공부한다, 조사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외적인 모순은 내적인 모순을 통해서만 발현된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전쟁이 나도

내가 전쟁이 났다는 것조차 모르면

내 일상은 평온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제 모든 것이 [인식]에 달려 있고

더 정확하게는

그 인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이런 내적인 모순을 찾아내고, 조사해서 찾아내고

그걸 이해함으로써

벗어나는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관련해서 붓다에 대한 이해와 오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붓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근데 그 질문의 요지는 뭐냐 하면

당신은 그 생각을 아주 깊게 한 인간입니까?

아니면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그러니까 필멸의 존재인, 결핍투성인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성을 넘어서서

신이 되었습니까?”

이런 질문이거든요.

 

근데 붓다는 항상 그 중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대답을 이렇게 합니다.

나는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붓다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붓다

붓다라고 하는 것은 깨달은 자,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관련된 서술을 보면

깨달음에 대한 내용을 보통은 이렇게 표현됩니다.

눈을 뜬 자’ ‘잠에서 깨어난 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눈 감았을 때 상상한 세상이나

잠들어서 꿈꾼 세상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없죠.

눈을 뜬 사람, 잠을 깬 사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살아갈 뿐이겠죠.

 

요게 망상에서 깨어난 붓다가 제시하고자 했던

인간과 신, 두 개의 길을 다 여의고 중도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는 망상하고 있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가진 모든 결핍 반대편

모든 것이 충족된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다.

그런 개념을 내가 취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래서 붓다에게 어떤 자식을 잃고 비탄에 빠진 어머니가

내 아이를 살려달라라고 했을 때 붓다는

신통력을 가지고 살려준 게 아니고

이 마을에 사람 죽지 않은 집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다오.

그러면 내가 살려주겠다라고 해서

그런 비유로서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을 이제 얘기했죠.

 

그래서 그 붓다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엄청난 절대 반지가 있고

그 반지를 애써 노력해서 획득했다라고 하는 컨셉은

정확하게 완전히,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삶이 나에게 고뇌로, 번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방법이

문제 자체를 깨버렸다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서 해결] 해버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면

세상의 현상은 엄중하지만

밥 안 먹으면 굶으면 큰일 나죠.’

엄중하지만

본질은 없다라고 하는 무아를

연기법에 의해서 체득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번뇌로부터 벗어났다

이런 모습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눈을 뜬 것

-잠에서 깨어난 것이기 때문에

특정할 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멋진 절대 반지인데

이 절대반지의 속성이 이런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은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내가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도

여전히 망상일 가능성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다시 돌아가서

붓다의 경우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길에서 40몇 년을 살았는데

그동안에는 모함도 받고, 굶주리기도 했고, 짐승과 사람의 공격을 받기도 했고

위기도 있었죠.

그리고 제자들도 일찍 죽은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해서 사는 것도 고달팠고

그리고 나이가 들었고, 그다음에 병이 들었고

마침내는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초인이 된 사람

우리들의 일상적인 상상하고는 달랐죠.

그냥 평범하게, 변화, 상황을 받아들이고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붓다에게 있어서 그 수용의 의미는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끌려간 것은 아니었고

-마음속에서 이미 삶과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해탈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붓다를 완전한 자유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방법은 뭐냐?

무엇에 의해서 그게 가능했느냐? 하면

-현상은 있지만 본질은 텅 비어 있다.

-본질은 무아다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내적자유를 완성? 획득? 완성한 것이고

-그렇게 해서 붓다의 마음 공부는 완성되었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명상이 되었든, 멍때리기가 되었든, 마음 공부가 되었든

이 복잡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조금 더 마음을 캄다운하고

내가 조금 더 뇌를 능률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좀 더 평정심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게 됨으로써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 좀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것도

썩 그렇게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향 자체는 다르다라고 하는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내가 잘 먹어야 되겠다, 잘 살아야 되겠다,

출세해야 되겠다, 성공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 마음속에

이미 번뇌가 있기 때문에

그거를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

명상과 마음공부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뭔가 총을 거꾸로 들고 전쟁으로 나아가는 것과도 같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문제 해결에는 문제를 공부해야 된다.

근데 마음공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마음공부의 결과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마음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적인 자유를 이룩하는 데 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