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교장쌤 특강] 알 수 없는 자리! 지금 바로 이것!

Buddhastudy 2024. 4. 15. 18:31

 

 

오늘 강의의 제목은 지금 바로 이것

말은 쉽죠, 지금 바로 이거다.

그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깨닫기 위한 기본자세

첫 번째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깨닫기 위한 기본자세예요.

마음의 자세,

 

우리가 워낙 그 생각으로만

나이 들면서 생각에 집중해서 살아와서

생각으로 자꾸 어떤, 선생이 얘기를 하면

그거를 생각으로 자기가 이해하려고 들거든요.

그러니까 또 이 얘기도, 깨어남에 대한 얘기도

또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들어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벌써 무슨 예수, 석가, 성인들이 다 얘기해 놓고

그거 보고 다 끝났지

그렇게 팔만대장경에 나와도 사람들이 못 깨닫잖아요.

 

왜 그러냐 하면

생각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생각이 아닌 정견으로

그래서 생각으로 이해하는 게 절대 아니고

정견을 해서 깨어나는 거예요.

 

깨달음의 본질은

꿈에서 깨어나는 건데

꿈에서 꿈꾸던 사람이 생각해서

이거 꿈이구나, 내가 깨어나야지한다고 깨어날 수 있습니까?

안 돼요.

그냥 깨어날 수밖에 없어.

 

그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절대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또 묘한 체험을 자꾸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체험이 물론 있습니다.

저도 체험이 여러 번 왔고

또 이러저러한 체험은 필요하다라는 걸

제가 좀 이따 말씀드릴 거예요.

 

그렇지만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된다

그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체험을 너무 추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체험을 맹신하고 있다면?

그다음에 자꾸 자기가 주체가 돼서

자기가 주체가 되고, 주어가 돼서

자기가 진리를 알려고 들고, 얻으려고 들고

체험하려고 들고, 밝히려고 들어요.

그러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본래 무아다!

그게 아니고

내가 여태까지 정말 철석같이 믿어왔던

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이것이 본래 무아다.

 

이거를 철저하게 정견해서

완전히 무아라는 걸 생각으로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무아임을 스스로 실증적으로 확인할 때

비로소 이 진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베일이 거치고

진리가 드러나는 거예요.

 

내가 무아가 돼줘야 진리가 드러나는 거지

내가 아니야 내가 진리를 보고, 내가 진리를 알고, 가질 거야하면

진리는 드러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이미 진리에 속한 일부분이지

진리와 나는 내가 무슨 대상화시켜서

저건 진리고 나는 진리를 가진 사람이고

이렇게 될 수가 없어요.

아시겠죠?

 

그래서 진리는 이원론이 아니고 일원론이다.

모든 게 다 하나 속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 꿈에서 깨어나면

지난밤 꿈이 아무리 좋았든 나빴든

그게 다 공하죠.

그렇잖아요. 덧없잖아요.

 

근데 이 현실이라는 삶도 똑같아요.

이것도 여러분이 아무리 지금

괴롭든, 슬프든, 아프든, 화나든, 어떤 스트레스 속에 있든 간에

이 정말 깨어났다면

이 모든 것이 완전히 공허함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설사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나 약화가 돼서

그런 게 있을 뿐이구나이렇게 돼요.

 

그리고 정말 살아있는 참 생명의 마음자리만이

내가 돼버립니다.

 

--음무소주 이생기심

그다음에 그러면 결국 그 상태가 뭐냐?

육조가 말씀하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되는 거예요.

 

제가 맨날 말씀드리는 그거가

이거잖아요. 이거.

이 동그라미 속의 화살표.

 

이게 동그라미가 응무소주고

화살표가 이생기심이에요.

 

자 이 동그라미가 있으니까

그게 무소주가 아니라

동그라미에 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이렇게 생각하시면

그건 완전히 번뇌망상을 지금 부리시고 계신 건데

 

왜냐하면 동그라미라는 것 자체는

형상이 없는 것을 표시한 수단에 불과한 거예요.

 

 

--지난 밤 깊은 잠속에서

동그라미가 뭐냐?

한마디로 여러분이

간밤에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주무실 때

그때 뭐가 있었죠?

아무것도 없었죠.

 

아무것도 없는 걸 굳이 표현하려니까

동그라미로 그린 것뿐이에요.

 

그때 어디에 주하셨어요?

어디 주 할 내가 있어야 어디에 주하지.

응무소주였잖아요.

 

아침이 되니까 이생기심에 하셔서

여기 오셨잖아.

그러니까 진리를 정말 보면

여러분은 이미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사시고 있어.

안 그래요?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이미 살고 있다고

근데 그 안에서 또 분별심을 일으켜서

또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찾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