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교장쌤 특강] 삶은 당신이 사는 게 아닙니다.

Buddhastudy 2024. 4. 16. 20:09

 

 

그래서 이 꿈에서 깨어나는 비유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 하나 여쭤볼게요.

꿈은 도대체 누가 꾸는가?

 

우리는 보통 내가 꾼다고 그래요.

간밤에 무슨 꿈을 꿨는데 혼나는 줄 알았네

가위 눌렸다든가

또는 어떤 꿈을 꿨는데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았는데

그 꿈 다시 한 번 꿨으면 좋겠다든가

이런단 말이에요.

 

근데 내가 꾸는 거 알면

꿈을 내 마음대로 꿀 수 있어야 되잖아요.

뭐 좋은 꿈만 꾸고

가만있어봐, 오늘 밤은 무슨 꿈 꿔볼까?’

뭐 이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죠?

근데 그게 안 되잖아.

 

 

--꿈은 누가 꾸는가?

그러니까 꿈은 내가 꾸는 게 아니에요.

누가 꾸는 거죠?

마음이 꾸는 거예요.

내 마음이 꾸는 거라고요.

이 마음이.

 

마음이 내가 키워온 이 에고심이

그게 자기가 부족하고 아쉬운 걸 대체적으로 꿈으로 만들어요.

안 그래요?

그래서 꿈에서나 그거를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그러는데

잘 돼요? 안 돼요?

아쉽지만 잘 안 될 겁니다.

?

잘 안 되는 게 여러분의 삶이었기 때문에

꿈도 그것만 딱 고만치만 나타내거든요.

 

그러니까 꿈은 마음이 꾸는 거지 내가 꾸는 게 아니다.

또 나 역시 마음이 만든 가상의 어떤 식스존이지

내가 실존하는 게 아니다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마음이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마음을 깨닫고자 공부하는데

그런 말있죠.

니들이 개맛을 알아?”

그것처럼 니들이 마음을 알아?”

이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일상적으로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을 제대로 알면 깨달았게?

마음을 몰라요.

 

근데 우리는 어떤 업습에 빠져 있냐면

분별지 속에서

생각으로 앞뒤 논리만 맞으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 안다고.

 

 

--우리는 너무나 '안다병'에 빠져있다

그러니까 애들이 아버지 엄마한테 물어봐요.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겼어요?’

하나님이 창조하셨단다

 

논리는 다 맞잖아요.

그럼, 논리는 다 맞으니까 된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걸 그냥 말로 그렇게 만든 것뿐이에요.

하나님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창조했는지도 모르고.

 

근데 앞뒤 거두절미하고

그냥 그 말 만들고 단어들 사이에 앞뒤 논리만 맞으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게 바로 분별지예요.

그러고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알긴 뭘 알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죠.

 

이걸 다른 말로 안다병이라 그래요.

말로는 저 동그라미 자리에 뭘 초월하고, 관조하고

이런 거 말로 다 알아.

근데 실제로는 체험해 보지도 못했고

또 체험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진짜 우리가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여기에 뭔가 있는데

여기 뭔가 있으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생겨나서 떠돌고 있잖아요.

희로애락에 오욕도 살고 있고.

 

뭔가 있는데

이걸 이름하여 굳이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놈의 마음이 도대체 정말 뭐 생사를 넘어서 있는지

도대체 이놈의 마음이 뿌리가 어디인지

우주의 근원인지

이게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런 걸 탐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아요.

이게 바로 마음공부라는 것이고

그걸 이제 공부한다고 하는 게 바로 [정견]하는 거죠.

 

제가 이 마음자리는 생명조차도 이렇게 일으키는 자리다

이런 얘기를 가끔 하잖아요.

그럼, 생명이라는 거에 대해서도 그래요.

 

진짜 여러분들이 생명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아무것도 몰라요. 사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치만 아는 거야.

생각하는 것만치만 알지

정말 생명의 신비나 위대함이나 경이로움에 대해서

자기가 몸소 체험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안 그래요?

 

그러다가 어느 날 진짜 뭐 자기 주변에서

이 생명의 기적 같은 어떤 신비성을 체험할 때

그때 , 생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감동하고, 울기도 하고, 혼자 감탄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다고 다 아나?

 

우리는 그러니까

죽은 말의 세계 속에

명사 관념의 세계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들을 엮어서

무슨 논리 만들고, 논리가 앞뒤로 별로 탓할 바가 없으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뭘 알긴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서 이 현실이라는 게 뭐냐?

우리는 현실에서 실상을 보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보는 걸 보고 있어요.

자기 안목만큼만 보는 거예요.

 

 

--차별지, 분별지, 무명업습

그래서 뭐가 무명업습이냐면

이 세상을 자기가 아는 그 경험의

경험을 표상하는 단어와 개념으로 재빨리 바꿔치기 하는

이것을 업습이라고 그래요.

무명업습.

그 속에 빠져 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고

그래서 꿈이라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진짜 아프리카 원시 민족을 하나 데려다가

여기서 이거를 보면

그 사람이 이게 뭔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뭔지 아무것도 몰라요.

핸드폰 보여주면 알겠어요?

뭔지 몰라요.

그걸 체험하고, 그다음에 그거의 이름을 물어보고 확인해서

저게 무엇이구나이렇게 자기 마음속에서 개념하고 이름 지음으로써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것이 어떤 작동을 해서

어떤 것을 해결하거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요.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의 해석이에요.

우리가 자기가 해석한 것이

그러나 살아보다 보면 틀린 적이 얼마나 많아요. 그죠?

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아니야.

그런 적 없어요? 많죠?

 

그러니까 뭐예요?

결국 내가 이 세상을 진실되게 보는 게 아니고

내 해석대로 본다는 거예요.

 

이걸 [무명업습의 장애[라고 하고

우리 마음 학교에서는 [차별지] [분별지]라고 그래요.

자기 분별 속에 빠져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식스존] 속에 빠져 있는 거예요.

근데 제가 식스존 우리 처음 강의할 때

우리 교사님들이 이런 거 보여드리잖아요.

 

처음에는 갓난애가 태어났을 때 이것만이 있었다.

근데 여기에 이제 감각존부터 시작해서

이런 식스존이 생겨났다

이 얘기 다 하죠?

 

 

--어린아이와 같은 평등지

그래서 이거 생겨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거를 잊어버리고 요것 속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이 식스존의 다른 이름이 뭐냐 하면

[오온]이에요, 오온

그래서 이것의 공함을 보면 다시 이 자리가 회복된다

이 말이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걸 [참나존]이라고 다른 말로 하면 [평등지]예요.

이게 평등지.

 

그리고 이게 불교 사찰에 가면

이렇게 동그라미 그려놓은 게 바로 그거예요.

평등지가 깊어지면 이게 드러나요.

 

그럼, 이 평등지가 뭐냐?

어린애들은, 두세 살 이렇게 된 어린애

이제 겨우 말 시작하고 한 서너 살이나 됐나 이런 애들은

세상에 일체가 다 평등해요.

그래서 이거 보면 먹는 건가 하고 빨아봐.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애들 보고 철이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걔네들 입장에서는 세상의 일체가 평등한 거야.

심지어는 내 몸조차 이게 나라는 것의 안팎의 경계도 없고

이게 내 몸이라는 것도 몰라.

오로지 의식만, 이것만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애들이, 아직 철이 없는 애들이 보면

얼마나 그런 애들이

스트레스 받는 애를 봤어요?

우울증에 걸린 애를 봤어요?

자기 인생이라는 짐에 대해서 고민하는 애를 봤어요?

그런 애들은 그냥 생명성으로 넘쳐나.

그게 본연의 진리거든요.

 

본연의 진리는 그냥 무진장한 에너지고, 화살표고

그리고 막 환희, 기쁨, 에너지, 경이로움, 찬탄, 사랑, 자유

이런 것밖에 없어요.

그런 걸로 충만해.

애들이 그렇지 않아요?

 

근데 여러분이 이제 살아오시면서 어떻게 되냐면

그걸 하나씩 둘씩 잊어버려.

그리고 자기가

이건 뭐예요?’ 하면

그건 뭐 한다

저건 뭐예요?’

이거 어디다 쓰는 물건인고?’ 하면

그건 이렇게 쓰는 물건

 

그러면 그 분별 세계 안에 갇혀버린 다음에

그걸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 동그라미 자리를 잊어버려.

그리고 이 몸 안의 의식에 갇히는 거예요.

 

원래는 이 자유로운 이것이었어요.

이 자리가 원래 우리의 참모습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이 몸에 적응하는 게 바로 철드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갓난애들은

그냥 결국은 이 몸 하나 안으로 자기 의식을 집어넣고 갇혀서

이 몸을 제대로 관리 건사하고

벌어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그리고 돈 벌고 이러고 살다가

애 낳고 뭐 어쩌고 저쩌고 살다가

죽는 게 인생이에요.

즉 이 몸의 노예가 돼서 사는 거라고요.

 

근데 깨어난 사람은 뭐냐 하면

이 몸은

이것이 자기를 체험하기 위해서 만든 무지개 몸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냥 여러 가지 체험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거를 정견 직관하는 사람이에요.

 

--오온개공 정견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이 자리를 보려면

아까 말한 식스존을

오온개공, 그게 오온이니까.

그걸 오온개공 정견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 몸이 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이거를 벗어나려면

이 몸이 라고 착각하는 근거를 들여다보면

정견을 하다 보면

생각하고 느낌이에요, 주로.

 

여기 내가 있다라는 생각

그걸 자기 동일시하고 있고.

 

여기 뭔가 이 몸이 있기 때문에

느낌이 이 피부에서 일어나요.

오늘 춥네, 덥네, 아프네, 쑤시네

느낌에서 일어나는데

그러면 자기 몸속에서도 일어난 걸 다 느껴야 될 거아니에요?

그건 또 못 느끼거든.

어디 암이 있는지, 아니면 기생충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이 사실은 이런 거 만지면서 일어나는 이 느낌이나

이거 만지면서 일어나는 느낌이 다 똑같은 거예요.

평등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 몸을 객관시 해서

하나의 생각 + 느낌의 오온의 집합에 불과하구나

 

이걸 철저하게 보면

의식이 내 몸 안에 갇혔다가 다시 해방되는 거예요.

이 마음이.

 

 

--의식이 내 몸에서 해방되는 소식이란?

이걸 철저히 봐야 돼요.

그러니까 그걸 철저히 안 한 사람은 무아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무아가 돼야

철저하게 오온개공을 해야 비로소 무아가 되고

그런 평등지가 딱 드러나요.

 

이 평등지가 드러나게 되면

어떤 여러 가지 체험들이 일어나요.

근데 그거 좀 이따 얘기하기로 하고.

 

그래서 이 동그라미 자리는 살아있어요.

살아있기 때문에 이게 늘 화살표로 나타나

뭔가 제가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걸어 다니고, 이렇게 보고, 이런 소리도 듣고, 이렇게 빨아보기도 하고

뭐 그러잖아요.

어디 가려우면 긁기도 하고.

살아있기 때문에

이게 다 화살표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국 색성향미촉법이 다른 말로 하면 화살표예요.

이 동그라미 자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화살표로 자꾸 일어나는 거야.

살아있는 하나의 현상

바다에 파도가 치듯이 바다가 살아있기 때문에.살표에 분별이 개입이 돼요.

그리고 이름을 붙여

그렇게 되면 분별지에 빠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