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이혼하고 재혼 또 이혼 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벅찹니다.(2024.05.11.~12)

Buddhastudy 2024. 5. 21. 19:26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가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의 자녀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다시 이혼했고

지금은 다른 분과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길 원하셨지만 저는 거절을 했고,

그러자 어머니는 서로 얼굴을 보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지만

상처가 남아 연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무속 신앙을 믿으시는데

저는 늘 그 부분에 대해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굿당에 가서 일도 도와드리고

참회의 백팔배도 1년 가까이했습니다.

그러나 역효과가 났는지 정신병적인 증상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어머니 없이 자라며 힘든 세월을 보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제가 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이기는 벅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지금 스무 살이 넘었나요?

 

스무 살이 넘었으면 이제 성인이에요.

이제 어머니에 대해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지금 상처가 덧나서 힘든 거지

이건 어머니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한 부모 밑에서 쭉 자라는 것도 좋지만

매년 부모가 바뀌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이런 부모와도 살아보고 저런 부모와도 살아보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남자하고만 쭉 살아도 괜찮지만

매년 바꿔가면서 살아봐도 괜찮고

한 회사만 쭉 다녀도 괜찮지만

매년 직장을 바꿔 다녀도 괜찮아요.

 

그것을 가지고 어느 게 좋다 나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주어진다면 그런 경험을 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할머니 밑에서 자란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대화할 때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또 의붓아버지 밑에서도 자라 봤기 때문에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성추행의 위험이 있는지

아니면 학대받을 위험이 있는지 잘 알 수 있으니

그런 사람들을 상담할 때도 많이 유리할 거예요.

 

이제 스무 살이 넘었는데

과거에 어떻게 자랐는가가 왜 중요합니까?

안 죽고 산 것이 중요하지요.

 

질문자의 지금 문제는

어머니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아버지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할머니에 대한 문제도 아닙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어리석어서 상처를 입은 겁니다.

어리니까 몰라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그 상처를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핵심 원인이에요.

이 상처를 치유하면 지난 과거가 내 삶에 유리해질 것이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괴로움을 안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문제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 문제 역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안 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으면 봐도 됩니다.

어머니를 이해하겠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누구나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어머니가 무당을 하든지, 교회를 다니든지

남의 인생에 내가 왜 신경을 씁니까?

그냥 어머니께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됩니다.

 

질문자는 상처가 있어서 어머니가 싫기도 하고

키워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고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어요.

 

이 마음은 어머니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본인의 마음에 생긴 상처가

계속 본인을 혼란스럽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내 상처가 치유됐는지 검증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처가 치유된 것입니다.

갈 때마다 자극이 오면

상처가 남은 거예요.

상처가 남았을 때는 안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또 상처가 좀 치유됐는지 검증하려면

어머니께 가서 테스트를 해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면 부르면 되지

그게 뭐 큰 문제예요?

내 마음대로 불러도 되고, 안 불러도 돼요.

 

법륜스님도 스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스님이라 부르고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으면 아저씨라 불러도 됩니다.

마음대로 해도 돼요.

그런데 절에서는 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 유리합니다.

 

그것처럼 그 집에 가려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나한테 유리한 거예요.

법륜스님을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지만

절에서 그렇게 부르면 본인이 좀 불리해집니다.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부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덕 볼 게 있으면

아버지라고 불러주면서 이익을 좀 챙기면 되고

별로 덕 볼 게 없으면

아저씨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라 불러라하고 말하면

하고 돌아서서 아저씨이러면 되는 거예요.

 

큰 문제는 아닙니다.

나이가 스무 살 밑이면 이해가 되는데

질문자는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잖아요.

더 이상 남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남을 탓한다는 건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몸은 성인이 됐지만

의식 구조는 상처로 인해

아직 열 살에 멈춰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자기 치료를 해야지

더 이상 다른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