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은 올해 스물한 살입니다.
열일곱 살에 처음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해서
올해는 두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완치가 아닌 입원하는 간격을 늘리는 것이
이 병의 치료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현재 치료를 받지 않고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지만 자주 마십니다.
제가 자취를 하는 딸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같이 있어도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딸에게 연락이 안 되거나 울면서 전화가 오면
제가 너무 불안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 현재 딸은 조울증 환자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환자인 딸에게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하고 요구하면
딸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건강한 정신의 아이도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딸은 환자이기 때문에
내가 좋은 제안을 하는데 딸이 듣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해결이 안 됩니다.
딸은 욱하고 기분 좋은 감정이 올라오면
천사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기분이 한 번 딱 가라앉으면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게 되어버리는
비정상적인 사유 체계를 가진 환자입니다.
둘째, 의사한테 이 병의 증상을 묻고 자세히 들어야 합니다.
조증일 때 보이는 증상과
우울증일 때 보이는 증상이 어떠한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해요.
딸이 막 좋아하더라도 환자의 증상 중 하나이고
방에 박혀 안 나오더라도 환자의 증상 중 하나라고 보고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데 딸의 행동을 보고
증상이 좋아졌다고 보거나 나빠졌다고 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양쪽의 성향을 보이는 것이
조울증의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으로 왔다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기분이 좋은 쪽으로 치우쳤다가
기분이 나쁜 쪽으로 치우쳤다가 하는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양극성’이란 표현을 쓰는 거예요.
이런 딸의 증상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의사에게 이 병의 증상이 나타날 때
옆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보세요.
딸의 기분이 너무 고조되었을 때도 같이 동조하지 말고
차분하게 지켜보라든지,
딸이 방 안에 틀어박혀 안 나온다거나 연락을 안 받고 잠적하여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 기다려 줘야 한다든지,
이런 전문가의 지침에 따라
질문자가 그것을 도와주면 됩니다.
육체가 병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하러 가면 의사가
‘약을 시간에 맞춰서 드리십시오’,
‘통증을 호소하면 진통제를 드리십시오’
이렇게 지침을 주는 것과 같이
조울증도 증상에 따라서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
전문가한테 물어서 그대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병이 있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정상인처럼 생각하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를 두고 자꾸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육체가 병이 났을 때
육체를 그냥 놔두고
증상에 따라서 눕고 싶다면 눕게 하고
앉고 싶다면 앉게 하듯이
정신도 그 증상에 따라서 내가 대응을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이 필요해집니다.
그럴 때 본인이 원하면 입원이 되는데,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입원을 시킬 수가 없어요.
즉 남을 때리거나, 기물을 부수거나, 길거리에서 절을 하거나, 똥을 눠버리거나,
하는 이상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극단적인 행동을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 입원이 가능합니다.
딸의 병이 악화가 되어서
강제 입원이 가능한 정도가 되면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가든, 119를 부르든
강제로 입원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강제 입원은 안 돼요.
단순히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딸을 강제로 입원시키면
인권 침해로 처벌을 받게 되고
아이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됩니다.
본인에게 입원을 권유해서 본인이 이에 동의하면 다행이지만
입원을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에
입원을 권유해도 안 듣는다고 속상해하면
질문자만 괴로워집니다.
병이 아주 악화가 되면
내 뜻대로 입원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의사가 말한 대로 완치는 없고
현상 유지를 하거나
입원하는 간격을 좀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약을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해요.
그리고 자살을 해버린다든지 남에게 폭행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야 합니다.
가끔 조울증 환자가 묻지 마 폭행 사건을 일으켜서 기사화될 때가 있는데
보호자는 환자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약을 꼭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약 먹는 것을 본인이 거부하거나, 안 먹고 버려버리거나 하면
방법이 없어요.
약을 안 먹는다고 속상해한다고 해서 해결이 안 됩니다.
딸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약을 먹으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뜻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딸의 증상에 따라서 지켜보고 있다가
이런 증상일 때는 이렇게 대응하고
저런 증상일 때는 저렇게 대응한다는 관점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환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도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부모의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까
끌려다니게 되는 거예요.
환자라고 보고 어떤 행동을 해도
그냥 ‘저런 증상이 나타나는구나!’ 이렇게 보면
딸로부터 독립된 내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딸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끌려가서 딸과 내가 일치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딸과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자세를 갖고
증상에 따라서 대응하는 정도의 행동을 취하면 됩니다.
딸의 병을 빨리 치료해야겠다는 의도를 가질수록
치료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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