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다양한 인종, 11개의 공용어가 존재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나라로
통합과 다양성을 추구하기에 ‘무지개 국가’라고도 불립니다.
남아공은 흑인이 79.2%,
식민지배자의 후손인 백인과 모든 인종이 혼합된 유색인이 각 8.9%
아시아계는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인구는 백인과 흑인인데요.
두 인종 간 많은 차이가 실제로 나타납니다.
백인의 연간 평균 가계 수입이 약 365,000랜드라면
흑인은 60,000만 정도 랜드만을 법니다.
백인의 실업률이 7.8%
흑인은 무려 36.8%나 됩니다.
‘무지개 국가’라는 이상적인 모토는 현실에선 소용없는 것 같고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지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남아공에서 가장 큰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 가볼게요.
이 지역을 같이 보실까요?
일반적인 요하네스버그의 주거 지역은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마당, 쾌적한 녹지, 수영장까지 있는 경우도 있고
거리도 잘 정비되어 있죠.
지도를 오른쪽으로 조금만 이동시켜 보겠습니다.
이곳이 보이시나요?
이렇게 확대를 해보면
빽빽하게 판자촌 형태의 집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구 밀도도 훨씬 높고
주차 공간도 적어 길가에 차들도 종종 보이죠.
예상하시다시피 열악한 이 환경엔
흑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습니다.
이 도로 하나를 두고
엄청나게 다른 주거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이 쾌적한 지역엔 백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죠.
남아공 출신의 샤를리즈 테론이 나오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도로가 사실 진짜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분노의 도로가 아닐까요?
이렇게 흑인들이 모여 사는 열악한 주거지역을 [타운십]이라고 하는데요.
이곳뿐만 아니라 요하네스버그는 물론 남아공 곳곳에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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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사이에 있습니다.
해안 쪽은 저지대이지만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거의 남아공 전역을 가로지르는
그레이트 에스카퍼먼트라 불리는 높은 고원이 나타납니다.
해안지방과 내륙 고원의 경기는 심한 곳은 거의 절벽 수준이기에
해안지역과 내륙을 분리하는 산맥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곳의 대부분의 고도는 1,000m에서 2,100m 사이이며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습니다.
동쪽에서 가장 높은 곳은 드라켄스버그 산맥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3,450m나 됩니다.
이렇다 보니 남아공 전역의 기후가 다른 형태를 띠는데
기후 지도로 정리해 본다면
일반적으로는 온대기후이지만
남서쪽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는 지중해성 기후
서쪽은 매우 건조하여 사막성 기후
동쪽은 고도가 높고 습하여
지역에 따라 아열대, 혹은 해양성 기후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해안과 내륙 고원지대를 큰 산들이 구분하고 있고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기후가 나타나기에
인구 분포표를 보면
남서쪽과 해안지대, 그리고 동쪽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의 오랜 시간 식민지를 거친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의 인구 현상을 단순 지리만으로 알 순 없어
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1487년 아시아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처음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발간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아공을 처음 점령한 것은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로 가는 무역상, 중간 보급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1652년 케이프타운이 된 희망봉의 식량 공급소를 세우고
이 지역을 점령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1800년대 초
나폴레옹이 네덜란드를 공격합니다.
그 혼란한 시기를 틈타
1806년 영국인들이 남아공 지역을 점령하고
이곳을 [케이프 식민지]라고 불렀죠.
남겨진 수많은 네덜란드인들은 한 세력을 형성하였고
[보어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흑인 노예들을 착취하고, 노예무역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런데 영국이 식민지를 점령한 1년 후인 1807년
영국에선 노예무역 폐지법안이 통과되었죠.
노예들을 계속 착취하고,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보어인들은 동북쪽의 내륙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흑인들을 엄청나게 학살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곳에 트란스발 공화국과 나탈리아 공화국, 오렌지 자유국 등
보어 공화국을 세우고 살아갑니다.
영국도 식민지 건설 초반
세력을 키우고, 영토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 있기는 하였지만
케이프 식민지는 무역을 위한 중간 기지로서 활용되는 전략적 위치일 뿐이기에
내륙으로의 진출 의지는 크게 보이지 않고
흑인, 보어인들과 그럭저럭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케이프 식민지를 세운 지 약 60년 후인
1867년의 다이아몬드.
1884년엔 내륙에서 금이 발견되며
광물 혁명이 시작되었고
단순한 무역기지 정도였던 남아공은
영국에게 아주 중요한 식민지로 부상합니다.
이후 영국인들이 남아공으로 이민을 대거 왔으며
경제도 성장했지만
동시에 남아공에 대한 영국의 본격적 착취도 시작되었죠.
당연히 영국은 식민지의 영토를 내륙까지 넓히려고 하여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금을 해외로 반출하기 위해
내륙부터 해안까지 철도를 연결하였습니다.
이 철도 루트를 중심으로
케이프 식민지의 경제가 발전해 갔고
특히 케이프에서 가까운 이 중심 지역은
백인 중심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1913년에는 원주민 토지법까지 제정하여
흑인들의 토지 소유권을 크게 제한하게 됩니다.
이 법으로 인해 흑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은
주로 중점 도시의 가장자리인 이 지역들이고
이는 전체 국토의 7%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죠.
좋은 땅들은 이주해 온 백인들의 차지였습니다.
1931년 남아공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치를 허가받아
영국 정부는 직접적으로 남아공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영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그 자리를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의 후손인 보어인이 차지했습니다.
지금도 100인의 60% 정도를 보어인들이 차지할 만큼
인구비가 높았던 영향도 컸죠.
보어인이 중심이 된 국민당이
1948년 선거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죠.
본토의 네덜란드인들은 18세기 이후
자유주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남아공에 계속 살아온 보어인들은
사고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크게 달랐다 볼 수 있죠.
국민의당의 집권으로
전 국민의 20%도 안 되는 백인들이
압도적 다수의 흑인들을 지배하는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거대한 인종차별 정책이 사회 전반적으로 시행됩니다.
인종차별이 법제화된 것이죠.
그 법안들은 인종 간 혼인 금지,
인종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해변, 버스, 학교 등뿐만 아니라
흑인들을 남아공에서 분리하기 위한
[반투스탄]이라는 영토를 지정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죠.
흑인 민족을 위한 자치령 구성을 지원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 백인과 흑인의 구분을 강화하기 위한 분리주의 정책이었고
이 반투스탄은 국토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경제적 개발도가 낮고
대부분 농촌인 지역으로 수많은 흑인들이
이곳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습니다.
최초 식민지로 개발된 지역이면서 중요한 항구 도시이기에
늘어나는 무역으로 당시 상당히 발달해 온 케이프타운에는
District6와 같이
흑인, 유색인종, 상인, 이민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며
나름대로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근대 아파르트헤이트 법안으로 인해
거주지를 구분 짓는 정책들이 강화되며
이제 그런 지역들도 백인 전용 구역이 되었고
1966년 백인 정부는
District6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차별적 사회가 계속되었지만
남아공에도 변화가 점차 나타납니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고
1993년 총선에서 대통령이 됩니다.
또 만델라가 의장이었으며
반아파르트헤이트에 앞장섰던 아프리카 국민회의 정당이 대승을 거두며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새로운 정부는 기존의 차별적 정책들을 폐지해 나가고
억압받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적 권리와 기회를 얻게 되었죠.
당연히 취업 가능성이 높고 일자리가 있는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과 같은 중심 도시 주변으로
시민들의 이주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 수요를 채우기 위해
주요 도시들 주변에 타운십이라고 하는 거주 지역을 만들어
여러 집을 짓고 수도와 전기를 연결했습니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이 정부 주관에 공공주택 지역인 타운십에서만 살 수 있게 되었고
여전히 케이프타운의 주요 지역은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없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기에
경제력이 있는 백인들만 소유가 가능한 것이죠.
흑인들을 위한 타운십이
새로운 인종차별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처음에 보여드린 것처럼 전체 인구 분포는 이렇게 나타나지만
인종별 인구분포는 더욱 명확히 갈리게 됩니다.
백인들은 철도 경제라인으로 한 주요 도시들
그리고 강을 주변으로 한 의도적으로 개발된 지역에 집중되어 살고 있으며
흑인들은 외곽 지역이나 도시에 있더라도 타운십에 거주하고 있죠.
2022년 3월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남아공 전체 부의 80% 이상을 10%의 사람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보고서에서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 올랐습니다.
남아공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지만
2010년 이후 정체와 하락세를 보이며
이제는 나이지리아의 1위 자리를 내어주었고
여전히 국민의 50% 이상이 빈곤에 처해 있습니다.
2021년 7월 인플레이션, 경제난, 빈부격차로 일어난 폭동으로
354명이 사망하고
45,000개의 기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더라도
무지개 국가라는 별명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남아 있다면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
오늘 영상이 남아공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시사 - 역사 > 역사,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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