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61. 주역 강의 중 발췌 - 안회, 교종과 심종

Buddhastudy 2013. 8. 4. 20:38

출처 : 홍익학당

 

이 괘는 뭔 괘인가요? 5-9 얘기가요, 안씨의 자식은 안씨지자하면 바로 아셔야 됩니다. 공자가 안씨의 아들내미는 이렇게 얘기할 때는 안자를 말합니다. 안회. 안회. 안회인데요, (돌아올 회 자)잖아요. 그 우리 선생님이 봉우 권태웅 선생님 같은 경우는 안회가 전생이 순임금이라고 주장하셨죠. 순임금이 다시 돌아왔다고요, 공자님이 아주 안자를 아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도 그래서 뭐 회가 됐다. 이런 말씀 하시는데, 참고삼아 들어보십시오. 이 안자가 원래, 그러니까 엄청난 존재인데, 서른 몇에 죽었단 말도 있고, 마흔에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마흔 몇에, 아무튼 일찍 죽었죠.

 

공자님이 아주 상심해서 천상이여, 하늘이 날 죽였다. 나를 죽였다. 하고 아주 울부짖으시고 해가지고 제자들이 너무 그러지 마시라고 할 정도로. 그런데 나를 죽였다. 하늘이. 그래서 안자가 죽는 바람에 공자님보다 먼저, 이게 불교로 치면요, 마하가섭이 부처님보다 먼저 죽어버린 꼴이에요. 선종이 끊겨버리지 않습니까? 선종의 제1조인데, 어느 종교나 교종이 있고 선종이 있잖아요. 글을 잘 아는 제자가 있고요, 한 스승 밑에.선종, 심종이라고 그러죠. 마음 잘 닦은,

 

그러니까 성인의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한 영성지능이 제일 높은 종파가 있고, 명상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글을 주로 연구하는, 말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있는, 마음은 잘 모르지만 평소에 성인이 해놓은 말을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두 파가 항상 있습니다. 어디나. 불교 같으면 마하가섭이 심종이고, 교종은 아난이죠. 그래서 아난은 부처님 말을 다 외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와 같이 들었다. 하고 모든 경전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아난의 입장에서. 그런데 재미있는 건 부처님 가시고 나니까 아난이 읊어요. 난 이와 같이 들었다. 이야기하잖아요.

 

마하가섭이 듣고 있다가 그건 아닌 거 같다. 그건 맞다. 이거를 마하가섭이 판정해 줍니다. 마하가섭만이 부처님 마음을 아니까요. 이래가지고500나한이 모여서 1차 경전이 결집될 때 이렇게 결집시켰어요. 그런데 유교 같으면 교종의 대표는 증자거든요. 그래서 논어는 증가계통에서 나와요. 맹자도 증자계통 제자고. 증자가 제일 수제자가 되는데, 원래 진짜 수제자는 안자죠. 안자가 일찍 죽어버려요. 유교가 심종이 많이 발달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대로 다시 맹자가 나와서 또 이 부분을 잇는데요, 맹자가 증자 밑에 자사가 배웠어요.

 

자사가 공자님 손잔데 자사도 성인으로 취급 될 정도로 아주 그 공부가 높으니까 그 문하에서 맹자가 나와 가지고 다시 심종을 또 잇는. 그래서 이쪽에서 다시 이쪽을 이어주는데요, 안자 이후에 그러니까 맥이 좀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지죠. . 그래서 이 안자가 엄청 중요합니다. 그래서 송나라 때 도학을 이을 때 안자가 이었다는 걸 제일 강조하면서 주자학이 나와요. 우리가 안자를 이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논문 주제도 그거에요. 안자가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안자가 좋아하는 학문은 뭐냐?

 

이런 게 자기들끼리 그 논문의 주제가 되고 그 논문을 잘 써가지고 송나라 때 자기를 철학적 입장을 제시하고 하는데요, 이런 게 있다는 거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쪽도 여기 보면 교종은 주로 글을 전한 사람이 플라톤이죠. 이분도 신종은 안한 건 아니겠지만 소크라테스 쪽로 갖다 놓고 보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교를 대게 잘 하고, 심종도 물론 이거 완전히 분리해서 보시면 안 됩니다. 이쪽이 더 글을 전하는 건 소크라테스의 글을 전하는 건 이쪽이었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였으면 심종 쪽은 소크라테스 마음을 제일 우리가 있다고 주장한 쪽은 견유학파에요.

 

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이어서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뭐냐 하면요, 난 아테네에 달라붙어서 신이 하느님이 나를 아테네에 딱 달라붙어가지고요, 아테네가 졸면 따끔하게 물어서 깨우게 하는 등애라고, 등애로 날 보냈다라고 소크라테스 변론에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보살도에요. 돌아다니면서 인간애라고 그래요.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게 나의 봉사의 길이라고도 하고요. 보살이에요. 그래서 아테네를 늘 감시하면서 아테네 사람들 중에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가가지고 따끔한 지적을 해서 깨어나게 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것 때문에 법정에 나와서 사형 당하게 생겼는데도, 나를 풀어놓기만 하면 난 그 짓을 할 거라고 계속 강조하니까 죽여야겠더라고 결정을 내린 겁니다. 거기서도 울며불며 좀 사정했으면 사형당할 일이 전혀 없는 법정이었는데, ~ 난 죽어도 나는 그 짓을 하겠다고 계속 얘기를 하니까 안 되겠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정신을 잇는 거예요. 우리는 통나무집에서 자면서 가진 거 없이 돌면서. 소크라테스가 그러느라고 재산을 못 모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마음과 행적을 본받는 파입니다. 가진 것 없이 아테네 도시를 돌면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만을 주 임무로 삼아서 늘 지적하고 다니는.

 

그래서 키니코스학파라고 하죠. 견유학파를. 시니컬하다가 여기서 기인한 말이고요. 그런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름 귀족집안 자재들의 큰 학교를 만들어서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파했죠. 소크라테스 쪽에서도 이런 식의 모양새가 있다는 것도 아시겠죠? 이분들이 심종이 낫다는 건 아닌데요, 그런데 증자 안자만 해도요, 대표적으로 갈립니다. 안자는요, 죽을 때까지 칭찬만 받아요. 공자님한테. 죽은 뒤에도 또 칭찬 받고요.증자는요, 공자님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우둔하다 증자여.” 말길을 하면 좀 알아들어야지. 마음이 이해가 잘 안돼서 답답하니까 한 얘기죠. 안자는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이게 안자한테 한 최대의 비판이었어요.

 

내가 뭔 말을 하면 예하고 끝난다는 거에요. 그 마음이라, 같은 마음이라 더 말이 필요 없잖아요. 나한테 그래서 자극제가 안 된다. 그런데 그것도 뭐죠? 편한 거죠. 증자한테 얘기를 했더니 답답해지잖아요. 자극제 정도가 아니라 답답해지니까 우둔하다. 증자여.” 이게. 재미있지 않습니까? 증자계열에서 나온 논어에 우둔하다 증자여가 그대로 들어있는 거 보면 옛날분들 보면 재미있어요. 자기 선생님 비방인데 공자님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 아무튼 이런 칭찬을 받았던 안자인데 뭣 때문에 칭찬 받았는지 한번 보시죠. 밑에 논어부터 볼까요? 안자의 길부터 보면요, 121페이지인가요? 논어가 있죠?

 

뒤에 보면 이게 논어 옹야장에 나오는 겁니다. 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했다. 지금 이것 때문에 송나라 때 논문이 나온 겁니다. 안자가 좋아하는 학문 뭐냐? 하는 이게 화두가 된 겁니다. 안자를 배우고 싶어서요, 안자라는 제자 학문 좋아했는데 자~ 보십시오. 뭔 학문을 했는지. 이거 제가 최근에 에피테투스 이런 거 했는데 서양철학의 핵심도 뭐냐 하면 그거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선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이라 할지라도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선 철저하게 선악을 따져서 세심하게 선악을 가려서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말자.

 

이걸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철학자가 아니다. 이렇게 나왔죠. 실천철학을 얘기했죠. 4대성인 급들. 그리고 그 성인의 올바른 제자들은요, 다 실천 철학입니다. 이론 철학 아니에요. 이론 철학은요, 실천은 안하면서 머리로만 자~보십시오.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요, 이론 철학자들은 이론으로 따져 볼 말이 있었을까요? 뭐냐 하면요, 이런 성인들이 한번 다녀가야 이 성인들이 잔뜩 뱉어놓은 말이 있죠? 그 말을 가지고 교종이 이루어집니다. 그 말을 가지고 굴려요. 제가 제 한평생 한 말을 이렇게 한보따리로 해 놓으면요,

 

제 마음은 뒷전이고 제 말을 가지고 맞추어보면서 철학을 먹고 사는 철학자들이 엄청 늘어요. 제 마음이랑 같을 까요? 검증이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요, 우리가 아는 무수한 이론 철학자들은 다 성인에 기대서 존재해요 왜냐하면 성인만이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아는 건 성인밖에 없어요. 팩트를 즉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자명하다고 해 놨는데 이 사람들은 경험을 없죠. 펙트가 없어요. 이 말만 가지고 그러니까 논리만 강조하게 됩니다. 말이 논리적이냐 아니냐 밖에는 검증할 길이 없으니까요. 이 사람들은.

 

체험은 못하는 영역이니까. , 우리 마음에서 영혼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얻을 체엄이죠. 내가 죽음을 대범하게 구족해왔더니 죽음에 대해서 자명하게 이해하고 실제로 대범하게 살아봤더니 이런 이즐 얻었다. 삼에서 이런 얘기는요, 체험 안한 사람은 들어도 나는 그게 그 상황 자체가 상상도 안된다. 하면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실제로 선하게 양심껏 살아왔더니 이런 이런 호연지기가 생기더라. 이러면요, 양심적으로 안 살아본 사람은 호연지기 차제가 뭔지 납득도 안 돼요.

 

이렇게 말만 남아가지고 전하니까 지금도 호연지가하면요, 전국의 철학자 분들한테 물어보면 호연지기에 대해서 다 엄청난 얘기를 쏟아내겠지만, 맹자가 말한 그 체험한 그 호연지기일까요? 이건 검증할 길이 없어요. 이래서 꼭 심종이 버텨줘야 됩니다. 심종은 성인의 마음을 그래도 체득해서 팩트를 그대로 체험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말을 하면요, 교와 선이 제대로 합쳐지면서 진실한 말만 남기는데, 이게 이쪽이 강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론에 매달리게 되고, 그 성인들이 해 놓은 말에만 매달려요. 그래서 멀어집니다. 그런데 자~ 그런 철학을 진정한 철학은 그게 아니고요, 이론과 실천이 겸비된 건데, 특히 실천이 담보되는 이론이어야 되요.

 

그래서 안회가 학문을 좋아했다고 해놓고 공자님이 한 얘기는요, 그 친구가 머리가 너무 좋아가지고 말을 정말 잘해. 논리를 정말 잘 전개 해. 반박할 수가 없더라니까. 이런 식의 칭찬해주는 게 아니고, 뭡니까? 칭찬이? 不遷怒불천노. 분노를 남한테 옮기지 않더라. 이 사람 때문에 화가 났으면 그 사람한테만 화를 내지 다른 사람한테 그 화를 옮기지 않더라. 이게 뭔 말일까요? 不遷怒불천노, 불의가 한번 지은 허물은 다시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더라. 여러분 이러시면요, 성인이에요. 안자는 공자님한테 거의 성인대우를 받던 제자인데, 칭찬해 준 게 딱 이거였죠? 두 마디

 

걔는 화를 다른 사람한테 옮기지 않아. 자 보십시오. 제가 어떤 사람한테 화가 났다면 제 감정은 화로 물들었겠죠?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잘못해서 화를 내거기 때문에 원인이 그 사람한테 있어요. 내가 화를 내는 게 자명하게 만든 어떤 원인을 갖고 있었겠죠. 그때는 화를 내요. 화 안내는 사람이 성인이 아닙니다. 화낼 때 화 자명하게 내요. 그런데 자명하게 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딱 만나면 이 사람한테는 화낼 이유가 없잖아요. 제 양심이. 화를 안내요.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요, 어떤 자명한 원인이 있었다 치더라도 내 감정이 이렇게 폭발해서 화를 낸 거기 때문에 그걸 봤어도 다른 사람 보면요, 너 한테라도 화를 내야겠다가 되죠. 내 이 감정을 풀어야 되니까요. 딱 걸렸다.

 

그래서 그 괜히 밖에서 큰 일 저지르고 오셔서 가족한테 화를 내시죠. 거기다 못낸 화까지 다해서 자식이 아니면 가족이 뭔가 하나 실수했을 때 되는 일도 없는데 나를 건드렸다고 쫘아악 거기다 뿜어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순간적으로 개운하지만 일이 더 꼬이죠. 이런 짓을 안 한다는 겁니다. 이게 성인들이 하는 최고의 일은 양심 그대로 사시기 때문에 화낼 때 화내더라도 왜 화를 얘기했을까요? 화 참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겁니다. 여러분만 어려운 게 아니라, 옛날에도 인간이면 어려운 일이니까 화를 옮기지 않았다는 게 희로애락을 정말 잘 조절한다는 걸 다 담고 있는 겁니다.

 

분노가 희로애락 중에 제일 감당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니까 그걸 조절하더라. 그 다음에 한번 지은 허물은 다시 안 짓더라. 양심에 따라 살기 때문에요, 한번 허물인줄 알았으면 알고는 고의로 이제 안하더라는 겁니다. ~ 이게 이제 학문이라는 거 아셔야 됩니다. 불행이 수명이 짧아서 일찍 죽었다. 이게 그가 없으니 학문을 좋아한 자를 듣지 못했다. 증자는 인정 받았습니까? 못 받죠. 난 제자가 그 뒤론 공부 좋아하는 사람을 못 봤다. ~ 이 얘기도 자~ 한번 또 보십시오. 학문을 좋아한다는 건요, 온몸으로 즐겨서 그걸 실천하는 걸 즐긴다는 겁니다.

 

양심을 실천하는 걸요, 진심으로 즐기는 양심의 오탁구라는 겁니다. 그때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을 쓸 수가 있어요. 나 철학 좋아해. 뭐 좋아하는데? ~ 칸트가 마음에 들고 니체가 좀 어떻고 이러면요, 이 철학자들이 뱉어놓은 말을 좋아하고 즐기시는 거지. 지금 말하는 안자처럼 학문을 좋아한다. 영성지능 계발을 좋아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단계로 가는 공자님이 즐겼던 학문을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 안자밖에 없었다는.내가 진짜 즐긴 학문은 양심 실천 학문인데, 이걸 같이 공감해주고 즐겨준 친구는 안자밖에 없다. 이해되시죠? 나이를 초월해서 그 사람밖에. 그 사람 가고 나니까 아무도 좋아하는 놈이 없더라.

 

공자님 말을 외워서 하는 사람은 천재였겠죠? 그때도. 공자님 강의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았을 걸요? 공자님도 볼 때 학문 좋아한 사람은 죽었다. 없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거 잘 이해하십시오. 으흠. 오탁구에요. 오탁구. 둘이 오탁구 둘이 좋아하다가 한명이 죽으니까 지금 이제 나 어떻게? 내 후계자도 죽어버렸어요. 후계자가 끊겨버린 거예요. 이게 충격적인 거죠. 그런데 하늘이 나를 죽였다. 라고 말을 하는 게 이거에요,내가 이룬 학문을 그대로 받아들일 그릇이 깨져버린 거예요. 이제 다른 제자들은 아무래도 왜곡이 되요. 그 친구들은 내 마음을 모르니까요. 이렇게 살아가는 맛을 모르니까요. 불천노 불이과 하는 마음을 이해를 못하죠. . 이렇게 지금 얘기를 했습니다. ~ 이거를요, 괘를 가지고 한번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