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816회 제 행동에 말썽이 많아서 주위에서 싫어해요

Buddhastudy 2013. 9. 11. 22:16

출처 YouTube

 

으흠. 가족으로부터도 신뢰 받기가 어려워요. 지금 자기하는 행동을 봐서. 첫째 자기가 말썽꾸러기다. 자기 인정해요? 문제아다. 인정해요? 이래 살다 죽을래요? 고쳐서 죽을래요? 고쳐서 죽을래. 다 따라 하면 안 돼요. 고쳐서 살래요. 이래야지. 보여주고 싶어요?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 이거지? 그래요. 그러니까 드러난 꼬라지는 진짜 말썽꾸러기인데, 저런 사람도 속에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지도 이런 나쁜 행동, 말썽꾸러기 안하고 싶다. 진짜 속에는 잘하고 싶은데 자기도 모르게 어때요? 자꾸 이렇게 부딪히면 이렇게 튀어나온다.

 

진짜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냥 못하게 되고.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실없는 인간되고, 그럼 거짓말쟁이 되고, 내가 거짓말 한 거는 아니다.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보니 안 된 것뿐이지. 지금 이렇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습관화 되어있기 때문에 습관화가 자기가 한 게 아니라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요. 엄마 살아있어요? 그래요. 그래서 얘기했잖아. 성질 더럽지. 엄마가 어때요? 엄마얘기 해 봐요. 그런 얘기 놔놓고. 그러니까 아까 외국인 여자 분하고 결혼했다는 아들을 지금 이 사람하고 내가 딱 비견하면, 그 할머니가 지금 이 할머니와 똑같이 지금 행동하고 있고, 이 아이 엄마가 지금 며느리가 방황하고 있고, 그 손자들이 자라면 이 아이처럼 되는 거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20년 후에 지금 애지중지하는 내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된다? 이걸 알아야 되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더 이상 여기서 욕심을 내면 안 되고, 아이를 위해서도 며느리를 다독거려줘야 되요. 며느리를 다독거려줘서 며느리가 마음에 안정이 되어야 아이들 손자가 좋아진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다 사람은 자기 성질대로 살라 그러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지금. 자기 지금 죽을 각오를 하고라도 바꿔보려고 생각을 해요? 진짜가? 그러면 여기 있다 연락처 적어놓고 가서 일단 첫 번째 약속, 절에 와서 3일 안에 만 배를 해봐요. 3일 안에.

 

그러면 결국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첫 번째는 하다가 중간에 성질이 나가지고 집어치우고 염주 던져버리고 절에 침 뱉고 나가버릴 가능성이 90%. 지금. 해보면 안 해도 뻔한데. 그런데 그거를 자가기 악을 딛고 그 불같은 거를 참아가면서 죽기 살기로 해서 그걸 뛰어넘으면 1단계를 지나가는 거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래서 1단계를 넘어가는 거고. 이런 식으로 단계를 108번을 거쳐야 자기가 改過遷善개과천선을 할 수 있어. 이거 만 배 한번 하는 정도가 아니고, 이렇게 집어던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고비를 108번을 넘어야 자기가 사람이 될 수가 있지 그 전까지는 되기 어려워.

 

그럼 그 정도로 각오하고 인생을 덤벼야 돼. 지금 성질대로 하면 안 돼. 참는 게 아니라 그건 그 사람들 문제가 아니라 자기 성질 문제라. 자기 성질문제. 그거 핑계잡고 자기 성질을 내는 핑계거리지 자기 성질 문제야. 그 사람들 아무 관계가 없어. 만약 만 배를 한다 하면 하다가 불같이 화가 나 집어던지고 갈 때 만 배 탓이가? 염주 탓이가? 법당 탓이가? 그래. 그럴 정도로 각오를 해야만 이걸 극복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거는 자기에게 장점이 딱 하나 있어. 자기 성질을, 대부분 자기 성질이 더러운 줄 모르는데, 자기는 자기 성질이 더러운 줄을 안다는 거.

 

일어날 땐 태도가 굉장히 불량했는데, 그러나 불량한 상태로 불량 끼를 솔직하게 드러내 줬다는 거, 그건 굉장히 가능성이 있어요. 솔직한 거, 남이 뭐라고 그러든, 내 성질 내 고민을 그냥 숨기지 않고 확~ 드러내고, 첫째. 두 번째는 그래도 한번 바꾸어 보려고 마음을 일으키는 거. 나도 한번 세상 사람한테 본때를 보여줄 그런 의지가 있다는 거. 내가 안 그런 인간이라는 거, 한 번 봐라. 네 생각이 틀렸다는 걸 내가 한번 증명해 보여주고 싶은 분심이 있어. 그런 게 있다는 건 굉장히 장점이야. 그러니까 한번 시도해 보지 뭐.

 

뛰쳐나갈 땐 나가더라도. 왓따 거 왕건이가 하나 있었데.^^ 난 일어날 때 저거 말썽꾸러기 저것도 시작해서 얘기가 길어지겠다. 딱 보고 이거 시간도 없는데 이래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주 으흠. 아주 오늘 즉문즉설에서 아주 모범적인 사람이었어요.^^ 격려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먹고 비틀비틀 취해가지고 다녀요. 그래서 ~ 너 술 취한 거 같다.” “무슨 소리야, 술이 취하기는. 이거 봐라. 잘 걷잖아.” 이건 진짜 취한 놈이에요. 그런데 너 술 취한 거 같다.” 그러니까. “, 그래? 내가 조금 취한 거 같지? 안 그래도 약간 어지러워.” 이러면 덜 취한 사람이오. 아시겠어요?

 

이 사람은 덜 취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저런 사람은 사실 남이 보면 문제지만 뭔가 개선의 기회가 있어요. 스님이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미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별 문제 아닌 거 같지만 서로 기회를 못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없다 이런 얘기요. 다시 말하면 자기가 너무 착한 줄만 아는 사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여자가 누군지 알아요? 착한여자. 착하고 어리석으면 무섭기가 한이 없어. 아시겠습니까? ? 이게 자기 생각을 바꿀 줄을 몰라요. 자긴 착하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세상 탓이에요. 오히려 성질이 더러운 여자는 자기 더러운 줄을 알기 때문에 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 말이오. . 즐거웠습니까? . 우리가 노래 부르고 춤추고 안 해도 즐거웠죠? 사실은 굉장히 심각한 얘기했지 않습니까? 그죠? 이혼하는 문제, 자녀 문제, 사실은 심각한 문제를 얘기했는데, 우리가 얘기하다보니까 심각성이 좀 사라지고 좀 가벼워졌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마음이라는 거는 좁혀서 시비하기 시작하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도 없다. 그렇게 마음이 좁아져요. 그러니까 부부지간에도 원수가 될 수 있고, 부모 자식 간에도 원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이게 마음에 한번 턱~ 넓어지면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러고 한번 턱~ 풀어 헤치면 우주가 이 마음속에 다 들어와도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넓다 이 말이오. 마음이라는 게.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기에 못 박은 사람, 못 박아 죽인 사람을 보고 죽으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랬죠. 우리 같으면 될까? 안될까요? 안 돼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 특별한 예수님의 특별한 게 아니에요. 이해에요. 이해.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두 사람이 누구냐?

 

사형집행인이에요. 그 사형집행인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사형을 선고해 놓으면 그럼 뭐하는 사람이다? 집행하는 사람이죠? 여러분들 생선 잡아오면 요리사는 생선 뭐합니까? 배따고 머리 자르고 그러잖아.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죄짓는다고 하고 있어요? 자기 일상 요리해요? 그는 직업으로 하는 거요.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의 직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한다면 그가 이렇게 했다고 지옥 가는 건 좀 억울할 일이오? 억울 안할 일이에요. 억울한 일이에요. 만약 이렇게 한다고 지옥 간다면 이 세상에 지옥 안 갈 사람 한 명도 없어요.

 

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저건 용서 못할 놈인데, 그러나 그의 입장에 돌아가서 보면 그는 특별히 무슨 악심을 갖고 하는 거는 아니에요. 그냥 자기 일 하는 거요. 그 뒤에 붙은 말이 뭐요?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얘기 했어요. 그래서 아까 그 며느리 도망간 보살님이 볼 때는 돈을 그렇게 들여 가지고 며느리를 데려와서 친정 다 도와주고 애 둘까지 낳아놓고 바람나서 미쳤다. 이러는데, 그 어머니의 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그 베트남 며느리를 데려와서 여기서 물어본다면 자기 할 말이 있을까? 없을까?

 

아마 시어머니보다 더 절절한 자기 하소연을 할 수 있겠죠. 자기 고민을. 외국에 와가지고 20살이나 많은 남자하고 살면서 그것도 시집살이하면서 애 둘 키우면서 자기가 겪은 어떤 고뇌가 있을 거요. 그걸 이해 못하면 지금 저렇게 악심이 드는 거고, 그걸 이해하게 되면 어때요? 우리는 또 다른 생각이 들 수가 있다. 그러니까 부처나 관세음보살이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바로 나와 다른 그를 인정하고 이해할 때 마음이 저절로 이렇게 일어나는 거다. 그러니까 북한의 하는 행동을 우리가 보고 저 놈의 새끼들, 저런 놈들 왜 도와줘?”이렇게 생각하면 굶어 죽는 게 싸다.” 이렇게 까지 가고.

 

저놈들 굶어죽어야 돼.” 이렇게 되는데, 내가 배고픈 그 아이를 직접 만나서 그 아이의 처지나 그 가족, 자식이 굶어죽고 어미가 국경을 넘어서 중국에 와서 숲속에서 덜덜덜덜 떨면서 두려워하면서 그래도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서 다만 얼마라도 얻어서 돌아가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보면, 이념 사상, 이런 건 다 없어지고 눈물만 나고 내가 뭔가 도울 수 있 거 도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요. 그거는 어떤 특정한 그가 스님이라 서도 아니고 불교인이라 서도 아니고, 사람인이상 이렇게 되는 거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해라는 거요.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에요. 우리가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한다하지만 자식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죽겠다 그러고,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 마음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와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그 이해의 기초를 둔 우리들의 애증이 있어야 그게 사랑이지 이해 없는 사랑은 그냥 **적인 것에 불과한 거다. 그런데서 오늘 우리들의 삶을 조금 한번 돌아보자. 이런 얘기에요. 나만 옳고 항상 내 기준에서 보기 때문에 세상에 온갖 불만이 있는데, 그래 남편입장에서 아내입장에서 자식입장에서 보는 게 필요해요.

 

영주인가 어제 갔을 때 며느리를 보고 애가 있는데 어디 가서 점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집에 액운이 있다고 방서를 써줬어요. 그래서 금강경인가 뭔가를 늘 집에 틀어놔야 된다고 해서 이 시어머니가 또 한 번만 이런 게 아니라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가 얘기합디다. 이런 걸 좋아해서 그래서 틀어 놔라 그랬는데. 며느리가 그 매일 집에 틀어놓는 거를 안했다는 거요. 그런데 교통 사고나가지고 아들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어머니는 누구 때문에 죽였다? 이 며느리가 내가 방서를 써줬는데도 안 지켰다. 그래서 이 분을 못 이겨가지고 막~ 보면 눈이 뒤집어진다는 거요.

 

그래서 상담을 했는데 즉문즉설 했는데, 그 저 뒤쪽에 며느리가 와서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또 끝나고 나서 며느리가 이제 이거 끝나고 나서 아까 그 시어머니가 얘기하는 며느리가 이 사람이다 하면서 울고 앉아있는 거요. 그런데 어머니는 남편 잃고 애기 하나 데리고 20몇 살 밖에 안 되는 여자가 남편 잃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와서 위로해주는 이런 딸 같은 자기어린 그 애기 엄마를 생각한다. 이러면 어떨까? 또 이 애기 엄마는 자기도 슬프지만 남편 잃은 사람하고 아들 잃은 사람하고 누가 더 슬플까? 어떻게 생각해요? 아들 잃은 사람이 더 슬프겠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잃고 정신없어서 저렇게 광분하는 시머어니가 어떤 소리를 해도 아이고, 아들 잃은 엄마의 심정이 어떻겠나?” 이게 이해가 된다면 그걸 능히 우리가 수용해 낼 수 있겠죠. 그러면 여기에 서로 고통을 받는 사람 아닙니까? 서로 고통 받는 사람이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야 되는데, 서로 고통을 못 이겨서 서로가 철천지원수가 된다. 이거야. 그랬을 때 그 또 어린 아들, 하나는 아들이고 한 사람에게는 손자는 어떻게 되겠냐? 이렇게 아버지 잃고 엄마와 할머니가 원수가 됐을 때 그 아이는 또 어떻게 되겠냐? 이 하나의 사건이 어리석음에서 불행이 계속 자처된다 이거야.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조금만 돌이키면 이 불행은 이 사건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느냐? 그래서 사건 자체는 행과 불행이 없는 거다.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사건에는 행불행이 없다는 게 공이란 뜻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일체유심조란 뜻이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따르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복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따라 해보세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 이것은 내가 기독교인이냐? 불교인이냐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기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된다. 행복이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된다. 내 인생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고 누구다? 내 자신이며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다. 그러니 여러분들 각자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게 첫째 수행적 자세고. 그다음에 타인에 대해서 우리가 보면 똑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주위에 주어진 조건들이 좋으면 어때요? 그 사람도 덩달아 좀 좋아집니까? 안 좋아집니까? 좋아지죠.

 

그래서 우리가 꼭 모든 건 다 개인책임이다. 이렇게만 돌리면 안 돼요. 우리가 사회적인 조건을 좀 개선해 줘야 된다. 이걸 우리가 정토건설이다. 정토다. 이래 말해요. 사회적인 환경이 좋은 사회를. 그래서 上求菩提상구보리_스스로는 깨달음을 구해서 부처가 되고, 下化衆生하화중생_아래로는 주위를 좀 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좋은 사회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도록 살도록 만들자. , 개인 인생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좀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들자. 이게 우리가 지금 하는 희망세상 만들기 운동입니다. 한번 따라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희망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입니다~ 내가 우리 가족의 희망입니다~ 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내가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내가 이 지구의 희망입니다~ 지구의 희망이라는 것은 지구를 오래도록 보존하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보전하자는 얘기고, 우리 민족의 희망이라는 것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그리고 나아가서 통일이 되도록 하자는 얘기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 그리고 안전망이 구축된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얘기고, 내가 우리 가족의 희망이라는 것은 부모는 원망하지 말고, 부부는 사랑하고, 자식은 자립하도록 키우자. 이런 얘기고.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라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자. 이런 얘기에요. 그걸 10가지로 나눠서 하니까 하겠습니다. 희망세상을 만드는~ 열 가지 희망실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부족한 줄 알아~ 매일 108배 참회의 절을 하겠습니다~ 부모님께는 다만 감사한 마음을 내겠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자식은 사랑으로 보살피되~ 자립하도록 키우겠습니다~ 세상의 주인이 되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겠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쓰레기 제로 운동을 실천하겠습니다~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하루 천 원 이상 기부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통일 의병이 되겠습니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꼬옥 투표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