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4회 에스보드 협박

Buddhastudy 2011. 10. 2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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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워서 이 아이가 망나니가 돼서 사회에 여러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있죠. 우리 애가 커서, 지금 청년이 젊은 애들을 성추행해가지고 사회 물의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죽여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뭐 공부는 잘해서 똑똑한데 부정부패를 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면 이런 거를 생각할 때 본인이, 우리 아이가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되더라도 살아 있는게 좋으나? 그런 사람이 될 바에야 죽는게 낫겠다. 이 엄마가 결정을 해야 되.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고, 세상에 많은 혼탁을 줄 바에야, 살 필요가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게 낫다. 아니면 어떤 물의를 일으키더라도 그래도 살아있어야 된다. 이게 내 자식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느냐? 살아있어야 되요. 그러면 원하는 데로 해 주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여기서 결정 하라 그러잖아. 나 같으면, 이 아이가 자라서 세상에 온갖 물의를 일으킬 것이 예견되면, 오히려 죽는게 낫겠다. 이렇게 딱 결심을 할 거 같애.

 

그러니까 극단적인 예 같지만, 딱 둘 중에 선택을 해야 된다니까.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고, 세상에 많은 불이익을 끼치고, 세상을 혼란하게 할 바에야,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없는게 낫겠다. 이렇게 부모가 입장이 분명하면, 애를 인간이 가야 할 길로 가고. 그걸 거부해서 지가 죽어도 부모가 죽었다 해서 후회를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 잘 죽었다. 이렇게 장례를 치러주고 끝내버려야 되. 그럴 지금 입장이 딱 되면, 이건 유서 아니라 어떤 협박에도 이길 수가 있지.

 

어린아이들은 이거 정말 너를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이건 안 되는 거야라고 하면, 죽는다고 해도 안 되는 거야. 이렇게 가야 중심이 잡힐 거 아니오. 그러면 애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어떤 수단을 써서 안 되면 훔치든지, 그것도 안 되면 죽겠다고 협박해서 얻어가는, 이렇게 키우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지금 이 아이가 하는 이런 짓을 용납하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아이가 될 거고, 이거를 개선하려면 죽는 것도 각오를 해야 만이 이걸 개선할 수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애가 딱 죽는다 하더라도, ~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내 아이라도 자라면 세상에 여러 가지 불이익만 줄 거기 때문에, 그냥 이왕지 죽었으니까 잘 장례를 치러주면 되지, 애를 하나 더 낳아서 키우든지, 양자를 낳아서 키우면 되지, 그것 때문에 후회하고 울고불고 이럴 필요가 없다. 이게 딱 분명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 애를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이 말이오. 이거는 마지막 대결이란 말이오. 내 죽는거 갖고 둘 중에 선택하라, 칼을 뽑아댔다 이 말이오.

 

그러면 여기서 굴복을 하면 평생 애 하자는 데로 끌려가야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단호하게 한다는 거는 애가 유서대로 행동할 수 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차라리 그럴 바에야 죽는게 낫다. 이게 진정으로 너를 위하는 길이다. 이 생은 죽고 다음 생에 그럼 한 번 해 봐라. 이렇게 마음이 되 있느냐? 그때 해줄걸. 이렇게 죽고 난 뒤 후회가 되겠느냐, 이 말이오. 사로잡히니까 죽을 수가 있지.

 

엄마가 앞에서 얘기했지만,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선 자기를 버려야 되. 자기를 자꾸 움켜쥐고 분별을 하면 안 돼. 자기를 확 죽여야 돼. 아이를 위해선 내가 죽음도 각오하는 그런 사람이 돼야 되. 그런 헌신성이 있어야, 애가 잘못 될 때도, 야단을 쳐도, 털끝만큼도 내가 양심의 가책이 없어. 이건 정말 아이를 위해서 야단을 치기 때문에.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게 하니라, 너를 위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매를 때리더라도.

 

그런데 지금 엄마가 자기중심이 없다, 이 말이오. 엄마가 얼마나 자기중심이 없으니 애가 대들지. 애라는 건 원래 지 맘대로 하기 위해서, 어릴 때는 밥 안 먹어. 이래 나오죠. 그럼 엄마가 애한테 지잖아요. 밥그릇 갖고 따라 다니잖아. 애가 굶고, 바짝 여의면 엄마가 못 이기지. 그래도 밥그릇 딱 뺏어버리고 그래 굶어라. 이래서 열흘이든 스무날이든 굶도록 놔두면 굶어 죽더라도, 열흘 굶으니까 엄마가 항복한다, 그러면 평생 어때요? 엄마가 애한테 굴복해야 될 거 아니오. 그죠? 그럴 때 밥그릇 딱 뺏어 버릴 수가 있느냐?

 

사춘기 때 집나간다 이리 나오잖아. 그지? 집나간다 할 때, 나가라 하고 문 걸어 잠가버리고, 어디로 가든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있어요? 찾으러 다녀야 되잖아.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교육을 못시키는 거요. 그것이 아이에게 옳지 않다면, 정말 이건 내 어떤 사로잡힘이 아니라, 이것이 정말 아이에게 옳지 않다면, 단호하게 안된다, 라고 해야지. 그렇게 해서 죽는다 하더라도 흔들릴게 뭐가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자식을 키우면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 몸이라도 버려서 하겠다. 이게 자식에게 나쁘다면 내 몸을 버려서라도 막겠다. 이런 헌신성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된다, 이거야.

 

애가 아무리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안 돼는 거는 안 돼는 거고. 돼는 거라면 내가 구걸을 해서라도 해 줘야 되는 거고. 이런게 분명해야 되는데, 그냥 내 생각에, 안 된다 했다가, 된다 했다가. 안 된다 했다가, 된다 했다가. 이러니까 조그마한 애가 안 된다 해도 까짓것 밀어붙이면 된다. 애가 딱 잡히는거 아니오. 한번 울어버리면 된다. 밥그릇 한번 던져버리면 된다. 유서 하나 쓰면 된다. 이게 딱 애가 알잖아. 벌써 이건 이미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거야. 선택을. 그럼 그 선택에서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각오를 해야 되는 거요. 어떤 희생이 오더라도 이건 아니기 때문에 끝장 낼 각오를 해야 된다. 이거요.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