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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19_3. 사랑으로 심하게 아파하는 딸

Buddhastudy 2017. 9. 20. 20:27


이런 경우가 많죠. 한번 좋아서 영원히 좋아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사람들이 좀 내성적 성격의 소류자들이죠. 한번 마음을 주면 그 마음을 걷어 들이지 못하는, 이것도 일종의 장애라고 볼 수가 있어요. 폭넓은 사랑, 한 사람에게만 집착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의 교육을 좀 받았다면 훨씬 더 나았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여러분, 유치원을 왜 보내나요? 유치원을 보내는 게 소통하는 것을 배우는 거거든요. 교육은 학문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게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야말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어서 나만 사랑해달라고 하지만, 나만 사랑하지 말고 고루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고통이잖아요. 집착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볼 때는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겨우 알은 것이, 내가 마음을 준 것이 유일하게 넌데, 그 네가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평생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잖아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인데, 그 세상을 향해서 이 갈아 봐야 누가 손해에요? 나만 손해잖아요.

 

그래서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이갈면 누구 손해에요? 치과만 좋은 거예요.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못 잊는다는 사랑은 진짜 사랑은 아니에요. 보내줄 때는 정말 크리어하게 보내줬으면. 아니 이갈고 보내주지 말고요, 그가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박수쳐서 보내줄 수 있는, 그것이 상대를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까?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있어. 난 울고 있어.” 하는 것은 그것은 진거에요.

 

그래? 내가 부족하다면 너를 보내줄게. 나보다 더 나은 사랑을 위해서 가는 너에게 나는 박수를 보낸다.” 라고 하는 것이 멋진 복수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가는 것이 복수가 아니고요. 내가 더 아름답게 살아줄 수 있는 여유가, 그리고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라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왜 그 한 가지만 쳐다보고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의 대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착은 사랑과 다른 언어입니다. 여러분 집착하지 말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소통입니다.

주고받는 겁니다.

 

그리고 받는다는 것은 나를 괴롭게 만들게 되어있습니다. 주는 사랑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부처님 사랑이고 그것이 불보살의 사랑입니다.

 

옛날에 저는 큰스님 전에 한번 여쭌적이 있습니다. 출가를 할 때는 혼자 살라고 출가를 해요? 같이 살려고 출가를 해요? 왜 대답을 못해? 혼자 사는 거예요. 당연히 혼자 산다고 생각을 하고 출가를 했는데, 그 젊은 혈기에 출가했던 내가 부러운 게 뭐였느냐 하면, 저 젊은 남녀들이, 또 많은 불자들이 부부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에 와서 기도하는데도 소원 잘 이루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왜 혼자 살아야 되나?” "저렇게 소원을 이루고 저렇게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을 위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이치가 그들에게도 있는데, 반드시 이렇게 출가를 해서 사는 것만이 능사일까?"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큰스님께 여쭈었더니 "큰스님, 왜 스님들은 꼭 혼자 살아야 되는 겁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때 큰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스님은 일체중생의 부모가 되는 거야.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주어진 생명체의 부모역할을 하는 거지만, 스님은 차별이 없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일체중생의 부모역할을 해야 되기 때문에 혼자 사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네가 개인의 영역을 갖기 시작하면 이기적 영역을 만들어서 그 사랑이라고 하는, 그 자비를 고루 베풀 수 없다. 그런 고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간에 다 포용하고 그를 안아주기 위해서는 혼자 살아야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속에 사는 여러분들도 바로 이런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받기 위한 이기적 조건으로 붙이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베풀어 주는 인격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보다 당당해 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보살님들이나 처사님들이 뭐라고 그래요?

사랑은 약속이에요.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겁니다.

의리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다보면 안 맞는 경우가 있잖아요.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도 뜻이 안 맞아서 싸울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생면부지인 남과 마음을 소통해서 나만 보고 살라고 하는데 그게 살아지기 쉽지가 않잖아요. 아니요.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 싫다고 떠나는 놈에게는

절대 잡고 늘어지지 마세요.

갈 때 과감하게 보내주세요.

 

그리고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세요. 나보다 더 멋진 사람 만나서 더 행복해져라. 네가 없는 세상 나는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통해서 노력해 살 수 있다는 게 훨씬 더 완벽한 부분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속알이 하고 있는 따님이 있다면 이 따님을 그냥 부모가 뭔가 해결해 주려고 생각하지 말고, 모르는 척 두지만, 이런 부분의 이야기를 소통할 수 있는 스님들에게 찾아가고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멘토를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또 여행이라고 하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뭐 이런 경험으로서 그 아픔을 치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