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이회영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4. 10. 19:35


글쎄요, 지금도 내가 무언가를 바꾸려고

뭔가 시도를 하려고 하면

일단 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죠.

자식이 셋 있다 보니까.

 

솔직하게 얘기하면

나도 할 수 있어요.’ 이건 제 스스로에게도 가식적이고 거짓말인 것 같고

저는 감히 못할 거 같아요.

 

성동일

기억하여 기록하다.

 

19051117일 을사늑약 체결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 되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웃음을 얻었던 세상

 

독립은 망령된 이야기

-신용희

조선 독립이라는 선동은 허언이고 망동이다.

-이완용

 

조선양반들이 일제의 귀족으로 신분세탁을 해가며

호의호식을 택할 때,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 50여명의 가족들이

전 재산을 걸고 한 마음으로 내린 결단

 

만주 벌판에 조선인을 위한 학교를 세우자

가문의 전 재산으로 세운 항일투쟁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그 명동일대 땅 대부분이 그 집안 소유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해 보면 몇 백억 원이 훨씬 넘겠죠.

 

우당 이회영 일가의 재산 규모

-실제가치 약 2조 원 추정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썼다는 게 참...

 

백사 이항복 가문의 후손

조선의 명문가 집안이 택한 독립운동의 길

 

일주일에 세 번 밥을 지우면

운수대통이라 여겼다

-아들 이규창의 회고

 

첫째 이건영 병환으로 사망

둘째 이석영 영양실조로 사망

셋째 이철영 병환으로 사망

여섯째 이호영 의병활동 중 행방불명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이끌었던

넷째 우당 이회영 선생

 

193211

중국 다롄 경찰서

말해

재판장에서 말하겠소

 

일본 관동군 사령관 처단을 위해

만주로 향하던 중

밀정의 고발로 일경에 체포

 

조국을 떠난 지 22, 예순 다섯의 나이

중국 다롄에서 옥사

류치장 창살에 목매 죽은 리상한 로인

일제는 그의 죽음에 대해 거짓 발표한다.

 

만주로 떠난 여섯 형제 중

조국의 광복을 본 이는

다섯째 이시영, 한 명뿐이다.

 

모두의 독립을 위해 바친 가족의 전 재산

그리고 일생

 

이회영

(1867. 3. 17~ 1932. 11. 17)

 

성동일

이회영을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