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김원봉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4. 8. 20:59


/1945815

36년 만에 맞은 광복의 날/

 

일제치하 36년 만에 찾아 온 광복에 모두가 기뻐하던 그 시절

지워진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

그 이름을 기억해 내고자 합니다.

 

/신하균

기억하여 기록하다/

 

/일제가 내건 현상금 100만원

*현재 가치 320/

 

역대 최고의 현상금을 걸고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 걸 정도로

일제가 치를 떤 남자.

 

전해 오는 얘기 중엔 일제에게 체포되지 않으려고

한 곳에 2~3시간 이상 머무는 법이 없을 정도였데요.

그야말로 하루 24시간 11초 온 신경을 다 세우고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191911월 만주

13명의 목숨을 건 독립투사들이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겠소

 

/종로 경찰서에 투탄(1923)

이종암, 오성륜, 김익상

다나카 기이치 대장 저격시도 (1920)

 

일제의 심장부를 노리는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조선의용대의 맹활약

 

일제 강점기 23번의 폭탄 의거와 요인 암살의 배후/

 

그 뒤엔 언제나 그가 있었습니다.

 

/의열단 의백

조선민족혁명당 의장

조선의용대 대장

광복 부사령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문위원, 군무부장

 

우리는 왜 그를 기억하지 못할까./

 

광복의 기쁨에 온 나라가 단꿈을 꾸던 그때의 일입니다.

 

1947, 대한민국 서울

일제에게도 단 한번 붙잡힌 적이 없던 그에게

광복을 맞은 조국이 가한 취조와 고문

 

노덕술 (일본명: 마쓰우라 히로)

대한민국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일제강점기의 고등계 형사·친일파

 

노덕술 너!”

빨갱이 두목 새끼가

말 해, 이 새끼야

 

약산은 45년도에 광복을 맞고 3년 만에 월북을 택하거든요.

월북 이후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거의 지워진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는데 앞장섰던 친일파 노덕술은

광복이후에 훈장을 3번이나 받거든요.

제가 독립운동가라면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닐까 싶어요.

 

/월북 이후 남과 북 모두가 지워버린 항일 무장 투쟁가

약산 김원봉 (1898 ~ 1958)

 

약산 김원봉 (조선의용대 홍보영상 ())

우리의 피 끓는 젊은 동무를 모집해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참으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의 동아 국가를 건설합시다.”

 

신하균

김원봉을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