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이원일, 정정화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

Buddhastudy 2019. 6. 11. 20:54


고국을 떠나 27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목숨마저 내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시절

 

부엌에 드나드는 아낙네의 처지는 또 달랐다.

일정한 직업도, 땅 한 뼘도 가지지 못한 상해에서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

포도청 같은 목구멍이었다.

-정정하, ‘장강일기

 

일제를 넘어 가난한 살림과 사투하며 독립을 향해 나아간 그분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었습니다.

 

26년간 상해 독립운동가들 끼니를 챙겨 온

후동 어머니, 수당 정정화 선생.

 

가까스로 주먹덩이 밥을 면할 정도였다.

배추로 만드는 반찬이 제일 값이 쌌기 때문에

늘 소금에 고춧가루 범벅을 해서 절여 놓았다가 꺼내 먹곤 했다.”

-정정하, ‘장강일기

 

버려진 배추를 주워 김치를 담굴 정도로 지독히 가난했던 인정의 삶

거의 모든 돈이 독립자금으로 들어오다 보니까

다들 제대로 된 식사도 어려우셨던 거예요.

그러다 이분이 자발적으로 어떤 인물을 요청을 하죠.

 

엉뚱한 소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친정에 가서 돈을 얻어 와도 될까요?”

국내는 사지와 다를 바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임시정부 신규식과의 대화

 

그것은 일제의 눈을 피해 상해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총 6번의 잠입 중 일경에 체포된 적도 있었습니다.

 

곱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독립운동은 나 같은 놈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독립운동가 이세창

 

일제의 거센 탄압에 8년간 중국각지를 떠돌아야 했던 가장 힘든 시절에도 그녀는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의 임종을 지키고, 그들의 남은 가족들을 살들이 보살핍니다.

 

그리고 임정의 살림을 이끄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 또 하나의 독립운동

아이들에게 모국의 기억을 전해주어야 한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그날 당신의 한 끼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정화 (1900.8.3.~1991.11.2)

 

이원일,

정정화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