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08회] 어떻게 하면 힘들 때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Buddhastudy 2019. 6. 27. 20:47


 

저는 지금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인데 연구를 하다 보니까 시간이라는 게 한정돼 있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오전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고 하다 보면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도 없다 보니까 그거를 제대로 해소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원래 이루려던 꿈같은 목적이 뭐였는지 요즘은 생각이 안날 때도 있고

'과연 내가 이걸 진짜 원해서 했나?' 이럴 때 이렇게 목적이 정말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거를 끝까지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또 있거든요? 그리고 또 중간중간에 또 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늘 또 다시 열심히 해야지하는 마음은 갖게 되긴 해요

하지만 너무 바쁘고 그럴 때는 또다시 너무 힘드니까 아 이거를 포기할까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 때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제가 살 수 있을까요?//

 

 

그런 길은 없어요.

그런데 그런 길은 없어요.

그런 길이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솔직하게 얘기하면 학문할 준비가 안 된 사람에 속합니다.

학문이 자기한테

한마디로 말하면 체질에 안 맞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학문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자기가 물었으니 난 대답 했을 뿐이야.

자기가 아니면 그만이지.

왜 내가 그런 말을 할까?

 

자기는 어떤 학문 자체의 관심보다는 사회적인 인정, 박사학위가 더 관심이 있는 거요.

 

아니지. 그것을 따야 내가 취직도 잘 된다든지, 사회적인 뭐도 얻는다든지, 돈을 번다든지,

아까 의사가 돈 버는 게 중심이듯이, 학위가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가 공부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거요.

 

그런데 공부 자체가 목적이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잖아.

이렇게 해보고 안 되면 저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안 되면 이렇게 해보고,

오늘 해서 안 되면 내일하고, 내일 해서 안 되면 모래하고 연구를 하는 거니까.

 

왜 스트레스를 받아?

안되면 반납하면 되는 거고.

자기 나온 수준만큼 써서 내면 되지.

 

여러분들이 논문을 쓰는 게 어렵다고 그러잖아요.

그 어려운 건 맞아.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뭘까?

내 실력보다 잘 쓸려니 스트레스를 받는 거 아니오.

내 실력이 80밖에 안되는데 150점짜리 논문을 쓰려니까

원고가 안 나가는 거 아니오.

 

내가 아는 만큼만 쓰면 되잖아. 아는 만큼만.

아는 만큼만 써서 제출했는데,

불합격이다그러면 공부가 부족한 거 아니오.

그러면 다시 더하면 되잖아.

그래서 통과되면 학위가 따지는 거고,

통과 안 되면 학위를 안 따면 되는 거지.

 

운전면허증을, 내가 운전을 정말 할 수 있을만한 실력이 되었을 때 면허증을 줘야 되요?

그냥 실력도 안 되는 데 면허증을 주는 게 좋아요?

10번 떨어지더라도 실력이 될 때 면허증을 줘야 누가 안전하다? 내 생명이 안전하잖아.

 

만약에 실력도 안 되는데 뒷돈주고 면허증 땄다하면 누구 생명이 위험합니까?

내 생명이 위험하고, 사고 나면 다른 사람도 죽잖아.

 

그러면 의사 자격을 시험 쳤는데, 34번 떨어졌다.

떨어져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그걸 통과를 못한 사람이 실력이 못한 사람이 의사가 되면 다른 사람 생명에 위해가 되잖아.

그러니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돼.

아직 내가 실력이 안 되구나. 내가 조금 더 남의 생명을 만지는 사람이니까, 내가 조금 더 기술을 연마해야 되겠구나.’

 

돈 버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단박에 따면 좋아하는 거요.

그래서 남에게 위해가 되든지 말든지 내 돈만 벌면 되니까.

 

여러분들이 학문을 할 때,

그 프로젝트를 받아 연구를 해보니까

기한에 쫓겨서 연구가 제대로 깊이 안 되고, 형식적으로 된다하면 다음부터 안 받아야 되거든요.

 

저도 예를 들어 해외 지원사업을 많이 하는데, 프로젝트를 받기 때문에 1년 안에 끝내야 되요.

그런데 우리는 해외사업을 할 때 원칙이 어떠냐?

그냥 무상으로 지어주는 게 아니에요.

 

학교를 짓는다고 그러면,

그럼 주민들이 땅을 내놔야 돼.

지역 관청이 기술자를 제공해야 돼.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해야 돼.

그럼 우리는 뭘 제공해야 되느냐? 모든 재료를 다 제공하는 거요.

 

그러면 대충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우리가 70이고, 지역주민이 한 10, 관청이 10, 교육부 10.

이렇게 지역이 30% 우리가 70%를 하는 거요.

 

그래서 조인투게더, 같이 협력해서 짓는다.

지어주는 게 아니고, 같이 짓는다. 이런 정신으로 한단 말이오.

 

그러면 먼저 주민들이 학교 지어 달라. 관청에서 지어 달라 그러면

너희 이거 할래? 땅 낼래? 와서 노동할래?

하려면 주민들이 다 사인을 해라.

그러면 평균 한 집에 몇 가구다. 노동력이 얼마필요하다.

그러면 한 가구에 열흘간 노동을 해야 된다.

 

그럼 동네사람들이 굉장히 열악하다.

그러면 푸드 일하는 날 뭐는 준다? 돈은 안 주지만 식량은 배급해 주겠다.

뭐 이런 식으로 합의를 본단 말이오.

 

그런데 하다가 보면 이 사람들이 마을에 바빠서 노동을 제공 못하겠다든지

관청에서 자기 예산이 없어서 기술자 경비를 못 내겠다든지, 이런 문제가 생기잖아.

그러면 10개 프로젝트하면 한 절반이 이런 일이 생겨.

 

그러면 기한 안에 못 끝내면 어때요? 돈을 돌려줘야 돼.

그러면 우리가 을이 되는 거요.

기한 안에 끝내야 되니까 우리가 노동자 사서, 우리가 기술자사서 지어버리면 되잖아. 그죠?

그러면 이 정신이 훼손된다는 거요.

 

그러면 건물지어 주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요.

나는 건물 지어주는 게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하는 훈련을 시키는 게 목적이란 말이오.

건물 지어주는 것보다도.

그럼 건물만 지어주는 격이잖아요.

 

그러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 이거는 우리의 원칙을 지키기가 어렵구나.

그래서 프로그램을 안 받는단 말이오.

그러면 옆에서는 왜 주는 돈을 안 받냐?’ 이래요.

 

그런데 학교를 몇 개 짓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걸 나는 더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이런 돈은 안 받겠다.

이렇게 된단 말이오.

 

자기도 이왕지 연구하는 거 주문 받아서 연구하고 어차피 내는 원고니까 써주면 된다.

이럴 때는 받아쓰면 되는데,

몇 번 해보니까 이거는 완전히 돈 받은 거 그거 처리하는데 급급해서 내 연구에 도움이 안 된다. 이건 돈 벌이에 불과하다.

그러면 안해야 되는 거요.

자기가 결정을 해야 되는 거지.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다. 한두 번 스트레스를 받아요.

왜냐하면 그 기한에 쫓기니까.

 

그러나 , 이거는 내 학문의 원칙에 안 맞다.’ 이렇게 하면 안 받아야 되고.

돈을 받았으면 그거는 학문연구가 아니고 돈 벌이지 뭐.

말은 학문연구라 하더라도 뭐에 들어간다고? 돈 벌이에 들어간 단 말이오.

 

그런데 자기가 돈 벌이를 하면서 학문 연구라고 하니까 앞뒤 모순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나도 아까 얘기했지만,

주민들에게 학교도 지어주고 주민들에게 교육도 시켜주고 이런 거거든요.

 

내가 해봤어. 내가 학교를 딱 지었어.

주민들이 볼 때 이건 자기 학교에요? 아니에요? 아니요.

애들 학교 오라고 그러면 절반은 오고 절반은 안 와요.

그럼 계속 아이들 데리러 다녀야 돼.

학교 맨날 부서지면 고쳐야 되요.

 

그 동네 주민들을 모아서 학교 짓는데 참여시키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참여했다 그러면 이 학교는 누구 학교다? 동네 학교에요.

? 자기들이 지었잖아.

그러면 자기가 거기 열흘이나 일해 놓고 애들 보낼까? 안 보낼까?

자기가 안 보내려면 거기 와서 일할 필요가 없잖아.

그러니까 애들 데리러 다닐 필요가 없어.

 

두 번째 자기들이 노동해서 지은 학교이니까, 학교 관리 잘할까? 안 할까?

잘해요.

출발은 굉장히 어려운데, 사후관리가 되는 거요. 이거는. 사후관리가.

다음에도 학교 어디가 고장 나면 고쳐 달라가 아니라,

재료 좀 주세요. 시멘트 좀 주세요. 어디가 깨졌습니다.”

나무좀 주세요. 어디가 물이 셉니다.” 이렇게 되는 거요.

페인트 좀 주세요. 페인트가 낡았습니다.” 이렇게 된단 말이오. 관계가.

 

그러니까 그런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는 거요.

그러면 성과가 덜 나지.

갯수로 따지면 돈 받아서 지으면 10개 지어줄 건데, 3개밖에 못 짓는다.

그런데 그 10개 지어주면 나는 뭐하냐는 거요.

10개 지어줘서 10개 지었다고 광고 내는 그게 누구한테 좋으냐는 거요.

결국 내 선전하기 위해서 아니냐. 지속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거요.

 

그런 관점에 내가 내 예를 들어서 하는 것처럼,

자기가 돈 벌이면 돈 벌이라고 생각해야지, 그걸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돈 벌이로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고,

학문 연구를 한다 하면 성격에 맞는 것만 자기가 취사선택해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기간을 2년짜리로 받는다든지, 받을 때.

2년짜리 이건 내 학문연구와 겹치는 거다.

이건 돈이 좀 작아도 학문연구에 도움이 된다하면 받는 거고, 1년짜리, 수익이 많다 그러면 이건 돈 벌이로 한다. 이렇게 자기가 관점을 정리하면 되지.

그걸 섞으니까 지금 어려운 거요.

 

그러니까 논문을 그냥 자기 재주껏 써서 내면 되는데

항상 우리가 첫 페이지 써보면 나도 알지만, 첫 페이지가 잘 써져요? 안 써져요?

첫 페이지 쓰는 게 어렵습니다. 10장 버리고.

 

첫 페이지만 넘어가면 둘째 페이지부터는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글 쓸 때, 첫 페이지를 두 번 안 읽습니다.

어차피 첫 페이지는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에.

10페이지쯤 넘어가면 그다음부터 글이 잘 돼.

다 써놓고 다시 돌아와서 앞에 10페이지를 고치면 되요.

 

앞에 10페이지를 제대로 써서 뒤에 넘어가려면 6개월간 첫 페이지를 못 쓰서 시간 다 보내는 거요.

관점을 그렇게 한 번 가져보면 어떨까?

그리고 학문 연구라고 그러면, 자기가 결과에 너무 연연하잖아.

실험을 한다, 실험을 해서 10번 실패하든, 20번 실패하든, 그 결과가 나오는 게 중요하지, 결과가 빨리 나오는 문제는 아니잖아.

그건 실패하기 싫다는 거 아니오.

그건 욕심이오.

 

중요한 게 아니고, 욕심 버리는 건 하등 중요한 거 아니야.

안 버리면 뭐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받기 싫으면 버리면 되고

이런 거지 중요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도 좋다하면 욕심으로 하면 되고

이 스트레스는 실험 결과가 나나와서 관청에서 뭘 줘서, 프로젝트라서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내 능력과 상황사이에서 내가 나를 과대평가 하는 거요.

결과를 좋게 내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지금 스트레스가 오는 거요.

 

생각해볼 거 없어요.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면

안 받겠다하면 욕심을 버리면 되고

욕심을 버리기 싫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된다 이 말이오.

 

자기가 지금 그 중에 논문 쓰는데 뭐가 문제인데?

좀 솔직하게,

 

나는 좋은 논문 쓰고 싶고, 짧은 시간에 쓰고 싶고

그런데 짧은 시간에 안 써지고, 내가 원하는 만큼 논문이 안 써지는 거 아니오.

그래서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짧은 시간에 쓰고 싶지.

좋은 논문을 쓰고 싶지.

 

모든 학생은 다 서울대 가고 싶고, 모든 운동선수는 다 1등하고 싶지.

그건 뭐, 그게 나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래서 우리가 다 지금 스트레스 받고 사는 거요.

 

그런데 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안 받느냐를 가르치는 게 내 직업이잖아.

그러니까 스트레스 받는 이유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받는다.

이것만 얘기해 주는 거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려면 그렇게 살면 되고

안 받으려면 욕심을 내려놓으면 되는 거요.

 

욕심을 안 내는 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데 조금 길어지는데, 잘하고 싶은 건 나도 그래요.

 

나도 오늘 강의 잘하고 싶을까? 안 하고 싶을까?

잘하고 싶어.

그런데 잘하고 싶다고 잘해지는 건 아니잖아.

 

잘하고 싶으면 잘해져야 된다 하는데 안 잘해지니까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야.

잘하고 싶은 거는 괜찮아.

그냥 최선을 다하면 돼.

그런데 잘했나, 안 했나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청중이 결정하지.

논문을 잘 썼나, 안 썼나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교수든 다른 사람이 결정하지.

그건 그들에게 맡기면 돼.

그래서 늘 얘기하지. 최선을 다할 뿐이야.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 한다고 관계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어.

내가 좋아하는데 상대도 날 좋아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데 상대도 날 안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걸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건 내가 결정할 수가 없다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너가 나를 좋아하는 건, 그건 너의 권리이지 내 권리가 아니야.

너의 선택이지 내 선택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나 좋아하라.

이건 독재 아니야.

이게 지금 여러분들 연애나 모든 인간관계에서 지금 스트레스죠.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 관계없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누구 문제다?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 사람의 권리다. 이걸 인정해주면

누굴 좋아했다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내가 누굴 좋아했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여러분은 설악산 좋아한다고 스트레스 받나?

바다 좋아한다고 스트레스 받나?

안 받잖아.

부처님 하느님 좋아해도 스트레스 안 받잖아.

 

산이 나를 좋아해야 된다.

바다가 나를 좋아해야 된다는

조건을 안 붙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거요.

그러니 오래 좋아할 수 있는 거요.

 

인간관계는 오래 좋아 못해.

금방 배신감을 느껴.

이유는?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나 좋아하라는 요구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요.

내가 이렇게 하면 성과가 나야 된다는 요구가 있다는 거요.

내가 이렇게 강의해주면 여러분들은 나한테 환호해야 된다는 요구가 있으면

박수 적게 치면 나갈 때 섭섭한 거요. 아시겠습니까?

?

내가 돈도 안 받고 해주는데, 이것들이

이렇게 생각하니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들어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젊은 애들이, 청년들이 이렇게 와서 스님 얘기 들어주는 거 이거 쉬운 일이요? 어려운 일이오? 어려운 일이오.

내가 길거리 가서 만원씩 준다 해도 올까? 안 올까? 안 와.

 

그러니까 기대가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거요.

스트레스 갖는 원인만 내가 설명하는 거요.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요.

 

스트레스를 받으려면 기대를 하지 말라는 거요.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면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거요.

 

최선을 다하는 거요.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불합격 나면 불합격 나는 대로 받아들이는 거요.

잘하고 싶지만 이 경우는 안 되는 거요.

 

하하하.

--

 

물론 지금 말은 이렇게 쉽지만 어려울까? 쉬울까?

어려워요.

그러니까 그거는 내가 노력하는 거는 내 자유이지만

결과는 내 원하는 만큼 될 수가 없는 거요.

 

그걸 알면 뭘 덜 받는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거요.

 

여기서 핵심은

되나, 안 되나가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