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77. 당당해지자

Buddhastudy 2019. 8. 28. 20:07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는 파탈리푸트라에서 재가자들을 위해서 5가지 재앙이 오는 길, 그리고 5가지 복이 오는 길에 대해서 설법을 하시고

그리고 강가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강가강을 건너기 전에 파탈리푸트라, 그 당시에는 조그마한 마을이었습니다.

이 파탈리푸트라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이 파탈리푸트라가 큰 도시가 될 것이다.”

이 파탈리푸트라는 인도의 4개의 큰 강이 만나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까 교통의 요지고 물자의 집산지죠.

큰 도시가 될 것인데,

 

이 도시는 3가지를 조심해야 된다.

하나는 물을 조심해야 되고, 불을 조심해야 되고, 사람의 불화를 조심해야 된다.

아마 이 도시는 이것 때문에 망할 것이다.”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100년이 지난 뒤에 마가다국은 수도를 왕사성에서 파탈리푸트라고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아쇼카왕의 제국의 수도입니다. 파탈리푸트라가.

그러나 결국은 그 파탈리푸트라는 강가강이 범람을 해서 도시 전~~~ 체가 물바다가 되어서 다시 재건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이 나서 싹 한번 다 타버렸습니다.

그래도 다시 재건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안에 권력투쟁을 해서 결국은 나라가 망하게 되고, 이 도시마저도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파트나라고 해서 인도비하르주의 수도가 되어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파탈리푸트라에서 강가강을 건너셔서 그래서 북쪽으로 가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코티마을에서 사성제를 다시 설하시고, 그리고 라티카마을의 연화의 집에 머무르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 라티카마을의 연화의 집에 머무를 때, 신자들이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마을에 비구스님들도 수행을 하셨고, 비구니스님들도 계셨고, 재가 남자 신도들도 계시고, 재가 여자 신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비구스님은 누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비구니스님은 또 누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재가 남자신도들은 누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재가 여자 신도 중에는 누구누구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그들의 수행정도는 어떠합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쭌 적이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불자들이 비구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할 것 없이 와서 부처님께 수행점검을 받았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때 부처님께서 누구는 어떤 경지에, 즉 그 비구스님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 비구니스님은 아나함과에 도달했다.

그 재가 남자신도는 사다함과에 이르렀다.

그 다음에 그 재가 여자 신도는 수다원과를 얻었다.

이렇게 성문사과에 대해서 그들에 대해서 그들이 이루어진 성자의 경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는 적어도 재가신자 가운데서 아나함, 불환이라고 불리죠.

다시는 이 세상에 윤회해 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목숨이 끊어지면 저 천상계에 났다가 거기서 수행해서 바로 해탈한다.

여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게 뭐요? 불환이라 그래요.

이 불환과를 얻은 아나함과를 얻은 사람만 이 마을에 50명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비구스님들만 수행해서 성자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재가신자들 중에 아나함과에 이른 사람이 50명이나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또 사다함, 소위 일례라 그러죠?

죽어서 천계에 갔다가 이 세상에 한 번 더 윤회했다가 그 다음에 해탈한다고 말하는 이 사다함과에 이른 사람이 90명이나 된다.

 

그리고 수다원, 그러니까 초견성이라고 할 수 있죠.

수다원과에 이른 이 사람은 성인의 유에 들었다. 여기서부터 성인입니다.

수다원과에 든 사람은 500명이나 된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다 법에 귀의해서 정진을 했기 때문에 불자라고 그러면 수다원과는 다 이룹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불자들이 완전히 깨쳐서 아라한과에는 못 이르더라도 수다원과는 다 이뤄야 된다.

 

그래야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 경지에 들 수가 있다.

법의 이치는 깨쳐야 된다.

그것을 다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치는 깨쳐서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경계에 팔리면 팔린 줄을 바로 알아차리는

그런 경지에까지는 우리가 이르러야 된다.

 

이런 기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에 불자라는 것은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법대로 정진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비록 출가한 비구, 비구니 스님뿐만 아니라 재가한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지, 법에 귀의해서 정진하는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계셔서 이렇게 다 검증을 해주시는데, 만약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어때요? 누가 이걸 검증을 해주겠느냐, 이런 문제가 생긴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진리의 거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그 진리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자기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 진리의 거울이 바로 뭐냐?

 

1. 부처님에 대한 귀의입니다.

이 부처님의 귀의가 분명해야 된다.

이것을 말씀하셨어요.

 

2. 법보에 대한 귀의

3. 승보에 대한 귀의

 

제가 경전에 있는 것들을 하나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진리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은 어떤 것이겠는가.

그것은 아난다여, 제일 먼저 성스러운 제자가 붓다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저 세존께서는 이렇게 존경받을 만하니,

바른 깨달음을 얻은 분, 지성과 행동을 갖춘 분, 원만한 분, 세간을 다 아시는 분, 위없는 분, 사람을 잘 다르시는 분, 신들과 인간의 스승, 깨달은 분, 지복한 분이다. 라고 믿어야 된다./

, 이게 여래10호입니다.

은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 세존.

 

이러한 붓다에 대한 인격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된다.

이게 불보에 대한 귀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또한 가르침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품어 세존에 의해 설하신 이 가르침은

1.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

2. 때를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것,

3. 이 장소에서 알 수 있는 것,

4.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

5. 제자로서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인가, 여기 5가지로 얘기해 놨어요.

첫째 부처님의 가르침은 객관적 진리다. 사실 그대로를 가르친 거다.

어떤 허구적인 어떤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밝혀 놓은 거다.

 

두 번째 그 가르침은 먼 미래의 얘기나, 지나간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의 얘기다.

지금 바로 알 수 있다.

지금 그대로 우리가 행하게 되면 바로 체험되고 경험되어지는 거다.

 

세 번째가 여기의 얘기다.

저기의 얘기가 아니라 여기의 얘기다.

 

네 번째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거다.

이 가르침은 위대하다는 게 아니라 깨닫지 못한 이가 이 가르침을 듣고 바로 깨달을 수 있는 가르침이다.

 

다섯 번째는 정말 지혜로운 자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특징이다.

바로 이 좋은 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분명해야 된다.

 

/또 승가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세존과 제자들의 모임은

바른 목적을 향하고,

바른 길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올바르게 목적을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곧 내상 8종류의 사람들이라고 하느니라./

 

, 삼보에 분명히 귀의해서 계정혜 삼학을 닦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사향팔배에 이를 수 있다.

사향사과팔배라고 그래요.

그러면 사향사과팔배가 뭐냐? 성인의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범부중생이 아니고 성인의 류에 든 사람을 4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8가지로 나눈다.

4가지로 나눈 것을 우리가 보통 성문4과라고 그러고,

8종류로 말할 때는 사향팔배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이 4가지가 뭐냐?

수다원: 성인의 류에 들었다.

사다함: 한번만 더 이 세상에 들어온다. 윤회한다. 일례.

아나함: 다시는 이 세상에 윤회하지 않는다. 불환.

아라한: 지금 완전히 깨우쳐서 번뇌가 사라진 자.

 

이것을 성문사과라고 그러거든요.

이 성문사과를 향해 가는 자, 거기에 도달한 자,

그래서 수다원향 수다원과, 사다함향 사다함과, 아나함향 아나함과, 아라한향 아라한과

이것을 8배다 이렇게 불러요.

 

그러니까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게 되면 누구나 다 이 8가지 중에 한 가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수행자는 수다원과에는 이르러야 한다.

선으로 말하면 초견성은 해야 한다.

도로 말하면 견도를 증득해야 한다.

법의 이치는 확연히 꿰뚫어야 한다.

 

이것이 혼미하면 안 된다. 이게 헷갈리면 안 된다.

그러나 이 법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도

우리들의 오랜 업식, 습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경계에 빨려들고 놓치게 되죠.

, 넘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가 넘어졌을 때

넘어진 줄을 알기 때문에 금방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경지가 [수다원]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알았다 하더라도 바로 업식에 끄달려서 3, 5, 10, 20번 반복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계속 연습을 해서 이제는 이번 실수를 제외하고 앞으로 한번만 더 실수를 하게 되면, 경계에 끄달리게 되면 다시는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다.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면 어떠냐?

이것이 바로 [일례] 한 번 더 윤회한다는 말은 한 번 더 경계에 끄달린다. 이런 얘기에요.

 

그다음에 [불환]이라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는, 이번에는 끄달렸지마는 다시는 경계에 끄달리지 않게 된다.

[아라한과]에 이르렀다는 것은 바로 지금부터 경계에 끄달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공부를 우리가 하나하나 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법의 이치를 통달한 것이 바로 견도라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사다함, 아나함으로 점점점점 나아가는 과정을 수도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아라한과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 배울 것이 없다 그래서 무학도다 이렇게 부릅니다.

삼도: 견도, 수도, 무학도 이것을 삼도라고 합니다.

도에는 3가지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부처님께서 재가신자들에게 수행을 점검해주시고, 이 마을에는 또 많은 재가자들이 이렇게 정진을 해서, 성인의 류에 든 사람이 이 경전 기록만 해도 500, 90, 50명 그리고 먼저 죽은 사람들, 누구누구는 어떻다 하는 그런 말씀까지 부처님이 하시는 걸 보면,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에 귀의해서 해탈을 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로 가셨습니다.

어떤 망고 숲에 머무르셨는데, 그 망고 숲이 이 지역의 아주 유명한 기생, 암나빨리의 망고원이었습니다.

이 암나빨리라는 이름을 갖는 기생은 암나는 망고나무라고 그랬죠. 망고나무 아래 버려진 아이라는 뜻이에요.

거기에 버려진 아이인데, 데려다 키웠는데 너무너무 예뻐서 왕들과 장자들이 서로 이 여자를 가져가려고 부인으로 삼거나 첩으로 삼거나 하려고 전쟁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회의를 해서 기생으로 만든 거요.

그러니까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도록.

그러니까 여성이 당시에 어떤 취급을 받았느냐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 아이가 주로 버려지면 어디 버려집니까?

다리 밑에 버려지죠. 그래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이런 얘기가 많은데

인도에서는 뙤약볕이니까 아이를 버리면 주로 그늘에 갖다 버려야 되요.

망고나무아래에 갖다 버렸다. 그래서 암나빨리에요.

 

이번에 아주 유명한 기생인데,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그런데 이 분이 자기 망고나무 아래에 부처님이 계신다하니까 급히 와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너무너무 감동을 해서

부처님, 내일 아침에 공양을 접대하겠습니다.” 하고 초청을 했어요.

부처님이 오케이 하고 승낙을 한 거요.

그래서 공양 준비하려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서 마차를 타고 급하게 달려갔어요. 요즘 말로하면 과속을 한 거요.

 

부처님이 바이샬리에 왔다하니 바이샬리에 리차비족들 즉, 왕족들이 부처님께 인사하러 온 거요.

오다가 서로 마주쳤는데, 기생이 마차를 멈추고 지나가도록 평소 같으면 길을 비켜줘야 되는데, 본체만체하고 그냥 달려버렸어.

그러니 바퀴에 흙이 튈 거 아니오. 흙이 튀어서 왕자들 옷을 다 버리게 된 거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피하다보니 마차가 길옆 진흙탕에 빠졌어.

그러니 불평이 많은 거죠.

 

마차를 세우니까, 신분이 낮으니까 막 욕을 한 거요. 비난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암나빨리가 사과를 한 거요.

뭣 때문에 그렇게 급히 서두르느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내일아침에 부처님을 초대를 하게 되었다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급히 돌아가서 음식 준비를 해야 되니 때문에 내가 왕자님을 제대로 못 봤다고.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

 

이 왕자들이 뭐라고? 부처님을 초대했다고? 아니, 저 여자가 선수를 친거 아니야. 우리가 선수를 뺏긴 게 아니야.

이런 성인이 오면 나라의 왕족들이 체면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들이 먼저 초청하고 이래야 된단 말이오.

우리나라도 외국 귀한 손님이 오면 대통령이나 높은 사람이 먼저 접대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생에게 그러면 그 초대권을 우리에게 달라고 청을 했어요.

그러니까 암나빨리가 거절을 했어.

10만 냥을 줄 테니까 초대권을 달라한 거요.

암나빨리가 죄송합니다. 왕자님들, 이 바이샬리를 다 준다 해도 싫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가게 손님들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기생이 법에 귀의한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 당당한가.

이 바이샬리를 다 준다 해도 싫다는 거요.

부처님께 한 끼 공양 올리는 그것을 위해서.

 

그러니까 왕자들도 어떻게 하겠어요.

왕자들이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법문을 듣고는

법문을 들었으면 이런 걸 다 놓아야 법문을 듣는데, 이 왕자들이 법문을 듣고도 부처님께

내일 아침 식사초대를 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거절을 하셨어요.

 

왜 거절하시냐하니까 이미 선약이 있다는 거요. 암나빨리의 선약이 있다는 거요.

이 초대권을 안 주는 암나빨리도 대단하지만, 기생하고 선약 있다고 왕족들의 청을 안 들어주는 부처님도 굉장하신 분이죠.

 

그러면서 부처님이 좋은 말로 그들을 위로해서 돌려보냈다.

이런데서 우리는 법에 귀의한 자가 어떤 태도인가. 이거에요.

 

우리가 세속에 물들어 있을 때는

돈이 굉장히 귀하고, 사회적 지위가 귀하고, 명예가 굉장히 귀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노예가 되어서 살죠.

 

이 회사 다니다 돈 좀 더 준다면 저 회사로 가지 않습니까.

이 회사 과장하다 저 회사 부장 준다하면 가버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삶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법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그 재물과 지위와 명예라는 것이

물거품 같은 줄을 알게 되면

한밤에 꿈같은 줄을 알게 되면,

도무지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불손하게 대하거나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이든, 천민이든, 평등하게 대하셨죠.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그런 부처님의 태도,

그리고 그 법문을 듣고 깨친 불자,

자가기 부록 신분은 기생이고, 왕자들은 자기 집에 손님이고 그러지만,

법에 대한 것은 물러남이 없다.

 

이런데서 우리가 불법에 귀의하게 되면

재물을 많이 모으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도 이렇게 당당해진다.

 

왕자들 앞에서 이 기생이 이렇게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법문을 듣고 마음의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런데서 우리 불자님들도

정말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