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김설진, 안창호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9. 25. 20:42


시간이 흐르고

기억은 흐려져도

역사를 잊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는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기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으니

도산 안창호

 

 

대한민국 독립운동

결정적 순간마다 그 사람, 안 창호가 있었습니다.

 

/1907년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조직..

1909년 미주항일단체 통합 대한인국민회 설립

1913년 홍사단 조직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 역임/

 

안창호가 가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학교가 생기고

그가 행동하면 돈이 모이고 독립운동가들이 성장했습니다.

 

안창호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고 지쳐가는 이들을 일으켜 세운

독립운동가들의 스승이자 지도자였습니다.

 

낙심마오.

나는 국난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고

나는 민족 문제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그대들도 낙심마오.’

 

그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 배후로 일제에 체포되고 만 두산 안창호

 

직업이 무엇이냐?”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지는 날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언제나 반듯하고 기품이 있었던 안창호

혹독한 심문.

두 차례에 걸친 감옥생활로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도산 안창호의 옥중 투쟁을

김설진의 현대 무용으로 기록/

 

그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피골상접이었다.

거의 저승의 시민을 보는 듯하였다.

앙상한 얼굴에..

-함께 체포된 장이욱의 회고

 

1937년 서대문형무소

30여년 생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던 사람...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도산 안창호

 

19371224일 신병으로 보석 출감

1938310일 순국

 

진정한 애국심은 그 말보다

실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안창호

(1878.11.9.~1938.3.10.)

 

무용가 김설진

안창호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