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2.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1월26일 방송 - 고통스러운 세상 (16:04)

Buddhastudy 2012. 4. 15. 18:56

  출처: 유나방송

.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우리가 윤회하는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윤회하는 세상의 모습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인간세상에서만 봐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굉장히 고통스럽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모습들을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특히나 불교에서 말하는, 사는 세상은 크게 나누면 삼계, 세 가지 어떤 세상. 또는 여섯 가지의 종류. 이렇게 삼계 육도란 말로 보통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욕계라는 것과, 욕계, 색계, 무색계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기도 하고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계. 이렇게 해서 여섯 가지의 종류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욕계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욕계에 악처, 그러니까 굉장히 고통 받는 세상과 선처라고 해서 그 악처에 비해서 행복이 많고 풍족한 이런 세상, 그리고 색계나 무색계는 다 행복이 가득한 세상에 포함됩니다. 그렇게 해서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것을 네 가지로 욕계악처, 욕계선처, 그리고 색계, 무색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 욕계악처에는 여섯 가지 종류의 존재들 중에서 지옥 아귀 축생 수라라고 하는 이 네 종류가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욕계선처라는 곳에는 인간과 천상계. 이렇게 포함이 되고요. 색계나 무색계의 존재들도 일종의 천상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의 큰 그룹으로 나눌 수도 있고요, 또는 여섯 가지 형태의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종류의 여러 가지 존재들에 대해서 오늘은 욕계악처. 라고 하는 고통이 가득한 존재들이 사는 세상, 이 욕계악처에 대해서 주로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욕계악처를 말씀드리기 전에, 이 욕계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곳인가를 먼저 말씀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이 욕계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 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욕계의 특징은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주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먹는 거, 식욕이라고 하는 거, 또 잠자는 거 수면욕, 또 성욕, 또 재산 재물욕, 이런 명예.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그런 것들이 우리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감각적 욕망이 주된, 감각적 욕망으로 인해서 이루어져 있는 그런 세상이 바로 욕계라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욕계에 사는 존재들 중에서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주로 고통이 많은 존재들과 행복과 주로 행복이 많은 존재들. 이런 존재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욕계악처라고 하는 악처라는 말은 고통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존재들은 항상 고통은 많고 행복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존재들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뭐 이거는 여러분들이 아마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을 하는데요. 지옥이라는 말의 원어는 원래 니라야(Niraya). 빨리어로는 니라야(Niraya)라고 그럽니다. 이 니라야(Niraya)라는 말은 니(Ni)라는 말은 없다는 말이고, 라야(raya)라는 말은 행복, 뭐 즐거움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뜻은 한마디로 행복이 없고 즐거움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지옥이라는 곳에는 거의 대부분이 고통만이 있지, 행복은 느끼기가 굉장히 어려운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래서 이 지옥에 태어나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고통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삶을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도 여러분들 우리가 어쩌다가 지나가다 칼에 베어서 손이 이렇게 베어도 굉장히 아픔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지옥에서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옥의 모습에 대해서 天使經천사경이라는 불교 경전에 보면 지옥에 사는 존재들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이 돼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은 얼마나 지옥이라는 곳이 고통을 받는 곳이고 많은 고통이 있는 곳인지를 우리가 유추해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옥에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대지옥이라고 하는 곳과 소지옥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지옥은 아주 고통이 극심한 지옥을 대지옥이라고 하구요. 그 대지옥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지옥들. 그것을 소지옥이라고 합니다. 이 대지옥은 경전에 묘사된 것들을 한번 간단하게 보면, 살펴보면, 계속 이 사람들의 몸을 나무토막 자르듯이 조각조각 자르는 지옥도 있고, 또 쇠를 벌겋게 달구어서 태워 죽이는 그런 지옥도 있고요.

 

온몸을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때문에 사람들의 연민심을 자극하는 그런 큰 비명을 지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이런 지옥을 叫喚地獄규환지옥이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또 이 고통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잠시도 쉴 수 없이, 한순간에 빈틈도 없이, 고통이 일어난다고 해서 이런 지옥을 無間地獄무간지옥. 하나의 사이가 없다. 무간지옥이라고 하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이 무간지옥을 빨리어로는 아비(Avici)지옥이라고 합니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극심한 고통이 있고, 처참한 광경이 있는 곳을 아비규환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죠. 이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아비지옥과 비명소리가 가득한 그런 규환지옥. 쉴 새 없이 고통받는 지옥과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그 소리가 들리는 규환지옥, 이 두 가지가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비규환이라는 말은 대지옥중에 아주 극심한 고통을 가지고 있는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동시에 지칭하는. 그래서 그 정도로 그런 두 가지 지옥을 연상할 정도로 아주 처참한 모습을 우리가 아비규환이라고 보통 이름을 합니다. 이런 말도 다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일반화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악업을 많이 지으면 보통 이런 욕계악처에는 나쁜 짓을 아주 불선한 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이런 악처에 태어납니다. 특히 이런 지옥은 아주 극심한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이곳에 태어납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을 죽이거나 이런 악업을 지은 사람들은 반드시 여기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통을 받다가 아비지옥이나 대지옥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고통을 받다가 자기 업이 다할 때쯤 돼서 이 지옥을 벗어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 아비지옥과 같은 대지옥을 벗어나게 되면, 또 지옥 주변에 있는 소지옥이라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여기는 배설물이 가득한 그런 지옥도 있고요, 아주 뜨거운 잿더미가 가득한 곳에서 빠져서 고통 받기도 하고, 또 가시나무 숲같이 삐쭉삐쭉한 가시에 찔려서 고통을 받기도 하고, 칼날 같은 그런 잎사귀에 온몸이 베어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펄펄 끓는 샘물, 보통 이것을 火蕩地玉화탕지옥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펄펄 끓는 쇳물에 삶겨지는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지옥의 모습인데.

 

대지옥에서 고통 받다가 또 다시 대지옥주위에 있는 소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고, 그렇게 하면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 하면 만약에 우리가 지은 업이 너무나 커서 대지옥과 소지옥을 거치고도 그 악업이 다하지 않는다면 다시 대지옥으로 던져진다고 합니다. 그 대지옥에서 다시 고통을 받고 세월을 보낸 다음에 자신의 악업이 다 하고 나서야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고 그러죠. 천사경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 지옥이란 곳이 정말 무서운 곳이구나. 우리가 이런 윤회를 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지옥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랜 세월을 고통 받고 나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니까, 열심히 수행을 해서 이런 곳을 벗어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지옥의 고통을 잘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고, 극심한 이런 악업, 부모님을 죽인다거나, 남을 해친다거나, 살생을 한다거나, 이런 악업은 짓지 않도록 애를 많이 써야 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보통 사람들이 의문을 좀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지옥에서 이렇게 고통을 받는데 어떻게 사람이 죽지 않느냐? 펄펄 끓는 쇳물에 삶겨진다면 금방 죽어버릴 텐데 어떻게 또 고통을 받고 그렇게 하느냐?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옥에 태어나는 존재들은 그냥 그 업의 힘에 의해서 바로 지옥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가 않습니다. 다시 또 태어나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지옥은 우리가 욕계 세상 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그리고 오랜 세월, 오랜 세월을 고통받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지옥. 특히 부처님 당시에 소지옥에 관련된 아주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 일화는 빠세나디왕이라고 부처님당시에 아주 강력한 강대국 중에 하납니다. 그 당시에 가장 강한 나라가 빠세나디 그중에 하나의 왕이 빠세나디왕입니다. 이 분이 잠을 자는데 어떤 꿈을 꾸었어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리가 왜 일어나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 이곳저곳 현명한 사람들을 찾아 헤매다가 부처님께 가서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이 빠세나디왕이 이 꿈을 꾸기 전에 약간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좀 설명을 드려야 이걸 잘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빠세나디왕이 길을 가는데 어느 이층집에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봤습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그 여인에 대해서 아주 강한 욕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 여인을 내가 꼭 내 여자로 만들어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부하를 시켜서 그 여자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벌써 결혼을 했고 남편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빠세나디왕은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 그래도 자기 욕정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이 남편을 죽이고 자기가 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머리를 썼습니다. 그러는 중에 이렇게 밤에 잠을 자는데 이런 꿈을 꾼 겁니다. 그래서 그 꿈속에 들리는 이야기가 두___, ___소 이렇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한 꿈을 꾸어서 이 빠세나디왕이 두려움에 떨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엉뚱한 답만 가르쳐주고 바른길을 제시를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왕의 왕비가 부처님이 지혜로우신 분이니까 부처님께 가서 이걸 물어봐라. 이렇게 이야기가 된 거죠.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뵙고 지난밤에 이런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듣게 된 이유를 설명을 해 줍니다. 아주 오랜 전생에 어떤 네 명의 젊은이가 있었는데, 이 네 명의 젊은이는 아주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아주 많은 것을 풍족하게 누렸는데. 이렇게 누리다가 술을 마시고, 뭐 여러 가지 재미를 봤지만, 아무리 재미를 봐도 그것이 만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나중엔 결국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남편이 있는 여자들, 그러니까 유부녀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으로. 그렇게 해서 많은 유부녀들을 농락하고 그렇게 평생을 자기네들이 가진 재산으로 향락만 누리다가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