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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신심명 강의 24강(비사량처 식정난측) - 수행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신통력 신비현상의 이유, 생각은 안돼!

Buddhastudy 2020. 12. 11. 20:34

 

 

사량분별의 생각으로 헤아릴 곳이 아니니

의식과 감정으로는 측량하기 어렵다.

/비사량처라 식정으론 난측이로다./

 

이 자리는 우리 본성은

사량분별, 생각 이런 것으로 헤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이 생각 가지고 모든 걸 해치우려고 하잖아요.

열심히 해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서 그것을 다 이룰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생각으로 뭐든지 다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아까 말한 것처럼 무위법, 떼쓰지 않는데도 되는 그런 법칙은 잘 모르는 것이죠.

 

생각으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으로는 이 본성의 자리에는 이를 수가 없습니다.

생각의 세계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것일 뿐이죠.

 

의식과 감정 이런 것으로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본성은, 삶의 진실은, 삶의 비밀은.

 

그런데 우리는 이 불법이라는 것을 머리로 알려고 애쓰거든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쓴단 말이죠.

그런데 이 자리는 머리로 알거나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인과법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거든요.

A라는 노력을 하면 A`라는 결과가 나오는 거잖아요.

근데 이것은 머리로 이해 가능한 범주 속에서의 인과법의 범주입니다.

 

이 불법은 비인불과라고 그래요.

인과가 아니다.

어떤 원인을 제공해야 결과를 얻는 게 아닌 것이죠.

 

지금 여기 없으면 원인을 제공해서 결과를 얻어야 하잖아요.

그대신 이 자리에 다 있으니까.

불법은 부처는 진리는 이 자리에 이미 있습니다.

이미 획득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까먹었다라고 생각을 가지고 망상을 부리면서

이미 있는 부처를 보면서 부처를 안 보고

자기 생각이 만들어낸 망상의 세계를 보면서

나는 부처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미 부처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요?

어떤 원인을 제공해야 결과를 얻겠어요?

원인을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게 아니란 얘기가 이래서 나오는 얘기에요.

노력을 통해서,노력의 결과 이런 결과가 온다, 이런 게 아닙니다.

불교만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전부 다 노력을 하면 그 결과를 얻습니다.

운동선수는 노력을 하면 운동을 잘하게 되고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죠.

수행을 열심히 하면 수행의 결과를 얻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명상 단체 수행단체에서 얘기하는 수행법이 있어요.

전부 다.

그리고 그 수행법을 얘기하면 그 수행법에서 얘기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분명히 얻습니다, 그 결과는.

왜냐하면 인과법이니까.

원인을 제공하면 결과가 생겨요.

 

내가 신통자재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신통력을 얻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잖아요.

그럼 자기한테 신통이 생길 수 있어요.

 

신통이라는 우리를 더욱 더 어리석게 만들고 무지몽매 가두게 만드는

아주 재미난 중생들이 가지고 놀수 있는 놀잇거리,

그런 어떤 신통자재한 것을 얻게 되죠.

그런데 본인은 깨달음과는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신비적인 것을 상상하면서 수행을 하면요

그 신비로운 경계를 얻습니다.

놀라운 어떤 신비체험을 합니다.

그걸 원했으니까.

 

원하는 대로 얻어져요.

내가 무엇을 원했느냐에 따라서.

 

옆동네에서 예를 들어 내가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을 신기해하면서

내가 기도하다가 나도 방언 기도를 하고 싶어하는 생각을 하면

기도하다가 방언기도를 하게 됩니다.

? 내가 그걸 원했으니까.

 

이 인간의 능력은 위대한 것이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내 원하는 그것이 이루어진다니까요.

희한한 것을 상상하면 그 상상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이 정신세계랑 물질세계는요, 인과법의 세계는

원인을 제공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불법은 이미 우리가 갖춘 것이기 때문에

따로 원인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간절한 발심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래서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몸으로 하거나 수단으로 하거나 방법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죠.

그럼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뭐냐?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방편.

 

중생들이 하도 그걸 좋아하니까

그게 그렇게 좋으면 우선은 그걸 한번 해보자.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분별을 내려놓고 망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범주까지

의식이 가능한 범주까지 일단 한번 가보도록 이끄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방편은 버려야 될 겁니다.

전부 다 버려야 될 겁니다.

 

그러니까 수행을 하지만 수행만 하는 사람은 결코 못 깨닫습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수행을 버려야지만 깨닫는 거죠.

반드시 쥐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의식은 생각은 항상 인과에 따라서 원인에 따른 결과를 추구합니다.

내가 원인을 그만큼 제공했으니까 그에 따른 결과를 추구하지 않겠어요?

그럼 추구하는 방법 3가지만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깨달음이라는 사건이.

 

이것은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으로, 생각으로, 분별로서 체계화시키고 정리해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게

이 불법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멍하게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법문을 듣는게 가장 공부하기 좋은 방법이지

무슨 뭐.. 어려운 교리들 많잖아요, 불교 안에도.

그건 그냥 방편으로만 그냥 이렇게 어깨너머로 공부하면 되지

 

뭐 본격적으로 유식학을 공부하겠다, 뭐 대신기신론을 공부하겠다 하면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하나의 교리를 대승 소승, 뭐 법화 화엄 정토 뭐..

중간 유식에 있는 모든 경전의 교리를 막 아울러서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려고 하면

오히려 공부에 마이너스가 되기가 쉽습니다.

 

그걸 가르치는 교수님들 입장에서라면 어느 정도 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뭐 굳이 뭐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걸 더 교리화 하는 어떤 박제화 하는 그런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