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진단에 의해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수술 전날 창가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아마 나를 데려가려나 보다.
삶의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작 죽음에 대한 공포는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 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보름 만에 태어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 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대하소설 <토지> 1편 서문 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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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그러니까 일제시대에 태어난 박경리 선생님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하셨데요.
그런데 그만 전쟁 중에 남편을
그 얼마 후엔 아들마저 잃으셨더라구요.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은 물결 같은 것이거든요.”
-1994년 10월. <토지> 완간 기념 소감
“전쟁 미망인만 나올 것 같으면
작품이 여하하게 윤색되었건 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편견이 딱하더구만요”
-1966년 <Q씨에게> 中 박경리
남성중심의 문학계에서 선생님의 소설을 미망인의 글쓰기라고 폄하하기도 했다는데요
생의 고통들을 꾹꾹 누르시다가 끝내 한 번씩은 창자가 끊어질 듯 우셨다고 해요.
“또 제가 여류작가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일할 때는 하나의 작가가 존재하지
여성, 남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인의 눈을 가진 작가’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20권 완간
‘한국 근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맥’
세계 7개국 번역 출간
구한말부터 광복까지
한 가문의 몰락과 재기,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대하소설 <토지>
대하소설 토지는
일제 국권침탈 이후
갖은 만행 그리고 독립운동, 해방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
박경리 선생님은
버티고, 살아내고, 저항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냈습니다.
<토지>
집필기간 26년
원고지 3만 1200장
등장인물 700여 명
일본이 내 강산을 범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고초도 없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동물적 탐욕은
그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들의
운명을 바꾸어 왔는가.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
‘일제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총괄적인 대항서사’
‘어둠을 견디는 아픔과 설움.
그리고 참음의 길을 보여준 이야기 뭉치다’
“한국인의
통속 민주주의에 실망합니다.”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와
그런데 1990년
일본 어느 평론가가 나를 반일작가라면서
자기네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갔으면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 빈정 된 일이 있습니다.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죠.
그러나 진정 일본에게서 배울 것이나
가져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일본 문화의 본질은 죽음과 폭력이지
결코 삶과 생명이 아닙니다.
-1994년 <작가세계> 中 박경리
일본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다.
-작가 박경리
박경리
(1926.10.28~2008.5.5)
김선영
박경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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