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평화시장
정경미: 이런데서 일했다는 거네
임형빈: 난 앉아있기도 힘든데, 이게 말이 되나...
다락방 작업장
10대 20대 ‘시다’(보조 노동자)
하루 노동시간 14시간 이상
시급 5원
당시 짜장면 값 50원
--
‘어머니’
“엄마 안녕 잘 지내지?”
“어머니요? 하하하, 그냥 애잔함, 그리움 이런 거죠.”
“엄마 안녕, 잘 지내지? 아, 이러니까 왜 울컥하지?”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평화시장 노동자들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준 사람
“쪽잠 주무시고, 또 새벽에 밥을 해서
그걸 머리에 이고 아침 먹이려 가셨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어머니가 밥만 주신 게 아니야.”
“응?”
옷도 세상도 자동차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사장은 점심값으로 200원을 쓰는데
“여공은 하루 세끼 50원을 쓴다.
빵과 휴식을 달라.”
1970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노조
[청계피복 노조] 설립
평화시장 노동자 교육을 위한
[노동교실] 개소
“오 이게 어머니가 쓰신 일기장인가 봐.”
‘근로자 권익을 해치는 악덕기업주는
엄벌에 처한다고 말할 때
메마른 당에 단비를 쏟는 것 같이’
“어머니도 겨우 15살에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셨데.
하루 14시간씩 주먹밥만 드시면서”
“아들도 어머니처럼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거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런 아들을 잃었으니까”
“아드님이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지 알아?”
‘엄마... 배가 고파요...’
아들을 잃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나는 노동자의 어머니라 하면 좋았지
듣기 싫지는 않았어.
노동자의 어머니니까
노동자의 어머니라 카지 뭐라 하겠노.
힘내라!
...
하나가 되세요.
19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의 분신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의 빛이었다.
-신영복
이소선
(1929.12.30~2011.9.3)
정경미, 윤형빈
이소선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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