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인류는
한 사람의 자아가 존재한다면
당연하게도 하나인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의문의 시작은
과학자들이 동물의 뇌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1970년대였습니다.
과학자들은 개구리에게 움직임을 감지하는 별도의 메커니즘이
적어도 2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시스템은 개구리가
파리처럼 작고 빠른 대상을 향해 혀를 뻗는 동작을 지휘하고
다른 시스템은 커다란 대상을 감지했을 때
펄쩍 뛰어오르라는 명령을 다리에 내립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시스템 모두
의식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회로에 각인된 자동 반응 프로그램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뇌도 이와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의 뇌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시스템이 각각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뇌 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뇌는 마치 민주주의 시스템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뇌는 서로 분야가 겹치는 여러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의견을 제시하며 경쟁한다는 것이죠.
뇌 안에 여러 파벌들은 항상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라는
단 하나의 출력 채널을 차지하려고 경쟁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생각이나 하나의 행동만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과 언쟁하기, 자신을 욕하기, 자신과 싸워 이기기 같은
기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습니다.
당신 앞에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있으면
당신은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집니다.
뇌의 일부는 ‘당분’이라는 풍부한 에너지원을 갈망하게 진화한 반면
다른 부분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이나 불룩 튀어나온 뱃살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합니다.
케이크를 원하는 마음과
케이크를 포기하는 의지력을 발휘하고 애쓰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이 두 파벌 중 어느 쪽이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게 될지는
투표 결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면에 여럿이 있기 때문에
생물은 갈등에 빠집니다.
컴퓨터나 AI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갈등입니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이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의식의 표면 아래서 움직이는 반면
다른 하나는 느리고 인지적이고 의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시스템은
자동적, 암묵적, 체험적, 직관적, 전체론적, 반응적, 충동적인 감정이라고 표현했고,
두 번째 시스템은
인지적, 체계적, 외연적, 분석적 규칙 기반, 성찰적인 이성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우리의 자아의식 시스템을
둘로 나눈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00년대 후반에는 뇌가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 경쟁하고
역할을 각자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한 뇌전증 치료를 위해
두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수술이 있었는데
이 수술을 받았던 사람에게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쪽 반구에만 정보를 전달하는 실험을 하면
그 반구만 정보를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반구에 서로 다른 학습을 시키면
그 환자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뇌가 분리된 환자들은
양손에 각각 펜을 쥐고
동시에 한 손은 원을, 다른 손은 삼각형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뇌로는 연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좌뇌와 우뇌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알려지게 되면서
좌뇌형 혹은 우뇌형 인간이라는 속설이 퍼지게 되었지만
이는 현대에 들어서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습니다.
자아가 둘 이상으로 나뉜 것으로 보는 이론들도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 유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본능적인 이득, 현실적인 자아, 비판적인 초자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 신경과학자 폴 매클리는
뇌가 행동에 관여하는 파충류의 뇌
감정에 관여하는 변연계,
고등한 이성적 사고에 동원되는 신피질
이렇게 3층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이론들은 현대에 들어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뇌가 서로 경쟁하는 하위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핵심은
살아남았습니다.
현대의 뇌 과학자들은
뇌 안은 수많은 소형 하위 시스템으로 가득하다고 봅니다.
여러 뇌 신경세포들로 구성된 뇌의 여러 영역들은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하나의 영역이
반드시 하나의 역할과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기억은 평범한 상황에서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뇌의 해마라는 영역에서 굳어지는데
자동차 사고라든가 강도 사건 같은 무서운 상황에서는
편도체라는 영역이 별도의 독립적인 기억 트랙에 기억을 저장합니다.
사건별로 기억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기억이 여럿이라는 뜻입니다.
성격이 다른 두 기자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메모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시스템이 둘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둘 이상의 여러 파벌이 나서서
모두 정보를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그 정보를 들려주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시스템들은 멀티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배내측전전두피질이라고 불리는 영역은
기억, 감정, 지각, 의사결정, 통증, 도덕적 판단, 상상, 언어, 공감 등
다른 수많은 업무에도 관여합니다.
전반적으로 신경세포들은
주 업무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업무도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신경세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경세포가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감정을 일으킬 때도
당신은 같은 감정이라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매번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새롭게 조합을 합니다.
그러니 어떤 하나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
하나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인 것입니다.
같은 기억이나 감정이라고 생각되고 느껴질지라도 말이죠.
사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자아가 여럿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그조차도 포함하여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 있는 술을 모두 치우는 것이나
내일 운동하러 가기로 스스로 약속해야만
초콜릿 케이크를 먹겠다는 것
누가 누구와 협상을 벌이는 것일까?
둘 다 모두 ‘나’라는 자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하나의 자아가 아닌
여러 자아가 존재하는 방식
즉 뇌의 신경세포들이 하나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닌
여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진화했을까요?
이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물계의 역동적인 시스템인 것이죠.
예를 들어
뇌의 일부가 손상되어
그 주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다른 시스템들에 의해 그 역할이 수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사고로 어느 정당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다른 정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사회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작은 단위의 뇌 손상이 일어나도
임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후 부검에서 알츠하이머병이 뇌를 잔뜩 헤집어 놓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정상적으로 뇌가 기능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시스템들이 대신 기능과 역할을 해줬던 것이죠.
전반적인 뇌와 신경세포들의 특징을 봤을 때
우리의 신체와 감각들을 관리하고 경험과 기억, 감정 등의 정신적 기능을 맡은
수많은 하위 시스템들이
각자의 역할과 기능들을 하고 있고
그중에서 여러 통합된 자아의식들이 경쟁을 벌이고
민주주의 시스템처럼 어느 대표자가 선출되는 것이
현재의 자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우리의 자아는 하나일까요?
아니면 여럿일까요?
그도 아니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뉴마인드·드러내야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마인드]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의식,무의식,정신,영혼에 관한 뇌과학 (0) | 2024.12.03 |
---|---|
[뉴마인드] 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I 뇌과학적 숙면법 불면증 해결법 (0) | 2024.11.19 |
[뉴마인드] 심리학자들이 밝힌 동기부여 원칙 [언세이프 씽킹] 조나 삭스 I 심리학 자기계발 (0) | 2024.11.05 |
[뉴마인드] 학계를 뒤흔든 새로운 혁명적 이론이 나왔다! [브레인 에너지] 크리스토퍼 M. 팔머 I 정신의학 I 뇌과학 (0) | 2024.10.28 |
[뉴마인드] 뇌는 유전자의 OOO이다 I 유전자와 뇌의 관계 (0) | 2024.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