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00회 자격지심 극복법

Buddhastudy 2012. 12. 18. 22:25

출처: BTN

 

.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뭐다? 작은 것도 아니듯이. 우리들의 존재는 훌륭한 것도 아니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전국에서 1등 하는 학생만 50명을 뽑아놓으면 그래서 한 반을 편성하면 꽁지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 1등 하는 학생만 50명 모아놓으면 꽁지 나올까? 안 나올까? 꽁지 나오겠죠? 그러면 전국에 꽁지 하는 애만 뽑아서 50명을 만들어 놓으면 1등이 나올까? 안 나올까? 1등이 나오겠죠?

 

그러니까 이 상대적 평가라는 것은 이 그릇과 똑같다. 그냥 그 인연 따라 크다고 불리기도 하고 그 인연 따라 작다고 불린다. 전국에 꽁지들만 모아가지고 한 반을 편성해서 1등 했다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고. 전국에 1등 하는 학생만 모아서 그 반에서 꽁지 됐다고 열등하다고 할 것도 없다. 각각의 존재는 존재 그대로 완성된 거에요. 그러니까 본인이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본인의 의식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요.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 본인이 우등한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우등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죠. 이것은 환상이다. 이런 얘기요.

 

이런 환상에 휩싸여서 우리가 살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요. 그래서 교만해지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아. 너희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교만하다 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자기가 우등하다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라. 두 번째 비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해라.”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교만과 당당히 비슷하고 겸손과 비굴히 비슷한 게 아니라. 교만과 비굴히 같이 가는 거요. 즉 교만하고 비굴한 것, 즉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은 함께 움직이는 짝입니다.

 

내가 만약에 돈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가치관이 있다 하면 나보다 돈 많은 사람 만나면 내가 어떻게 됩니까? 비굴해집니다. 나보다 돈 적게 가진 사람 만나면 내가 뭐해집니까? 거만해집니다. 그런데 내가 돈에 대해서 가치를 안 두면 그 사람이 나보다 돈이 많아도 비굴해지지 않고 그 사람이 나보다 돈이 적어도 교만해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뭔가 우리가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는 대학을 다니는데도 지금 열등의식이 있고, 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 관둬버렸는데도 어때요?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잖아. 그죠? 그러니까 자기도 대학을 안 갔으면 이런 의식이 없을 텐데. 도로 물려버리면 돼요. 그래서 앞으로 저기 어디 원서를 낼 때 고졸이다. 이렇게 쓰면 아예 대학을 안 가니까 어느 대학 간 게 없잖아. 그러면 대학에 대한 열등의식인가? 그러니까 이건 의식이지 존재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첫째.

 

그러니까 근본을 꿰뚫어버리면 벗어날 수 있는데, 지금 학생이 근본을 꿰뚫기는 어려울 거고, 그다음 두 번째,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지금 사회는 아직도 학벌이 온전하고 또 거기에 스펙이 중요시 여겨집니다. 이거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20, 30, 50년이 지났다. 미래의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학벌이나 스펙이 중요하게 작용할까요? 그때도 남아있을 건 남아있을 거요. 그러나 지금보다는 훨씬 적다. 그럼 무엇을 미래사회는 중요시할까? 실력을 중요시합니다. 실력을.

 

실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느냐? 이것이 중요시된다. 갈수록. 이런 얘기요. 예를 든다면 여러분들이 베트남에서 한국에 이민을 왔어요. 노동자들이 지금 한국에 왔어. 사이공대 출신도 오고 하노이대 출신도 하고 무슨 뭐 중간에 조그마한 지방대학 출신도 왔는데.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건축공사장에서 막노동할 때, 그 사람 어느 대학교 나왔다는 걸 중요시 여깁니까? 안 여깁니까? 그 사람 실력을 중요시 여겨요? 어느 대학 나온 걸 중요시 여겨요? 실력을 중요시 여기지 어느 대학 나온 걸 중요시 안 여깁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이 이 넓은 세상에 나가면 내가 서울대 나왔느냐? 고대 나왔느냐? 이건 별로 중요시 안 됩니다. 실제 내가 능력이 어떠냐? 이게 중요시돼. 지금 실력이 부족하면 실력을 쌓아야지 지방대 나왔기 때문에 문제는 아니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거를 자기 실력 없음을, 자꾸 지방대 나온 것으로 핑계를 대고 지방대 나온 뒤쪽으로 숨는 것은 비겁하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실력으로 대응을 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은 실력을 안 보고 학벌로 보는 거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거는 지난 세기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 미래에는 실력을 본다. 이런 얘기요. 내가 북한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북한 문제에 있어서 전문가들을 가르치는 수준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담심리전공을 하지 않았는데 상담심리문제는 전문가 교수들 모아놓고 제가 자기들 하다 못 푼 문제 내가 해결해 주잖아요. 그러고 내가 과학을 좋아했는데 과학을 해서 내가 의도하지 않게 승려가 됐는데.

 

스님이 돼서 종교인이 됐는데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종교인이 됐으니까 과학을 포기하고 종교를 한 게 아니라. 과학적 안목을 가지고 종교를 봤기 때문에 종교 안에 있는 90%의 허황된 얘기를 걷어내 버리고, 거기에 진실한 것만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과학자가 종교를 한 거는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종교를 진실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여러분과 이런 대화를 하는 거 아니오. 어떤 형식을 떠나서. 불교 안에 어떤 종파도 아니고, 불교와 기독교라는 것도 넘고, 불교와 과학도 넘어서서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다.

 

그럼 이게 어디 대학 가서 배운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한테 배운 게 아니에요. 결국은 탐구. 자기가 스스로 탐구하는 거다. 통찰력이라고 하는 지혜는 첫째 자발적으로 자기가 자발적으로 이게 뭐지?’ 하고 의심을 낼 때 가능합니다. 남이 주어지는 지식을 쌓아서는 지혜는 안 생깁니다. 통찰력은. 통찰력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이거 왜 이러지?” “이게 왜 이래?” 하고 자발적으로 출발해야 된다.

 

두 번째는 굉장히 연구를 해야 된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창조성이 있다는 거요.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거요. 그러고 그것을 굉장히 몰두를 해야 됩니다. 집중이 돼야 됩니다. 마치 볼록렌즈가 햇볕을 모으면 불을 태우듯이. 그렇게 집중을 하면 세 번째 어떤 순간에 전체의 전모를 파악하는, 한눈에 확~ 알아버리는 그런 통찰력이 생긴다. 이걸 지혜라 그래요. 그러니까 선에서 화두 할 때, 화두를 참구한다.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사구가 있고 활구가 있어요.

 

死句사구라는 것은 아무리 탐구해도 깨치지 못하는 게 死句사구고. 活句활구라는 것은 그것을 탐구하면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죽은 씨앗은 심어도 싹이 안 트고, 살아있는 씨앗만이 싹이 트는 거와 같다. 그러면 죽은 씨앗은 남의 것을 갖고 하는 게 죽은 씨앗이고, 자기 문제를 갖고 하는 게 活句활구, 살아있는 씨앗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서울에 올라와서 그냥 무슨 스펙이니 뭐 학벌이니 이런 거 논하지 말고, 정말 자기가 뭘 하려고 한다면, 그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어야 되고.

 

그 탐구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기 실력이 쌓아져야 자기가 한 분야에 일각연이 있다. 노가다를 하면 노가다에 일각연이 있고, 음식을 만들면 요리에 일각연이 있고, 농사를 지으면 농사에 일각연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즉 전문가가 될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줄 서서 스펙 쌓아서 만약에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도 대기업에 들어가서 자기가 하는 일은 돈 받고 자기 몸을 파는 노예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에게 더 많은 돈벌이를 시켜주고 자기 지식을 팔아서 그러니까 이건 자기 몸을 파는 매매춘이랑 비슷한 거요. 자기 노동을 팔고 돈 몇 푼 받고 평생 매여 사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좋은 건가? 이건 좀 생각해 봐야 되요. 그러니 자기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거냐? 하는데 제일 중요한 거는 스무 살이 넘으면 성년이라 그러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성년의 특징은 뭐냐?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진다. 이게 성년의 특징입니다.

 

즉 입벌이를 해야 된다.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돼. 그런데 여기 지금 학생들이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을 안 지고 살고 있어. 이러면 절대로 수행자라면 대도인은 될 수가 없고 사회에 큰 일꾼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사회 부속품은 될지언정. 제일 중요한 거는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져야 된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럼 서울에 와서 지금 이렇게 사는데 부모가 보내준 돈을 갖고 살아요? 자기가 벌어서 살아요?

 

그러면 그건 룸펜이오. 룸펜. 룸펜에 속한다. 룸펜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된다. 만약에 여러분이 집에 있으면서 자기 생존을 자기가 책임지는 방법은 집에, 내가 사는 집에 하루에 몇 시간 3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돼요. 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딱 들어가는, 졸업하는 날부터, 딱 내가 집에 내가 3시간 취직하면 돼요. 그러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침밥 딱 해가지고, 파출부로 취직을 해서 반찬 차려 놓고 어머니 아버지 깨워서 식사하십시오.” 하고 다 드시면, 설거지 딱 해서 놔놓고 학교 오고.

 

저녁에 가서 저녁 차려드리고 잠자리 봐 드리고. 시간이 조금 하루에 3시간 못하고 2시간 반밖에 못 했다. 하면 주말에 시간 조금 더 내가지고 세탁기 돌려서 해드리고. 요렇게 자기가 자기 집에 취직해도 요것도 자기 생존을 책임지는 거요. 꼭 돈거래가 오고 가야 책임지는 거는 아니다. 그러면 엄마가 볼 때 아이고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다 컸구나.” 요게 성인으로서 내가 대우를 받는 거란 말이오.

 

요렇게 자기 삶이 독립돼야 된다. 그리고 학자금은 내가 독립을 못 하면 차용을 해서 차용증서를 쓰고 내가 언제까지 갚겠다. 요렇게 해야 독립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서울에 올라와서 지금 이렇게 있으면서 부모가 보내주는 돈을 가지고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빈둥빈둥 돌아다니면 그건 룸펜이지 그건 절대로 젊은이다운 태도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든지 들어가서 식당이든 어디든지 들어가서 3시간 정도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해가지고 3시간이든 4시간 해서 하숙비하고 자기 생활비를 책임을 져야 된다.

 

집에서 받지 말고. 그 나머지 시간 갖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진짜 내가 공부를 해야 되는 공부면, 이런 피곤한 속에서도 졸리는 눈을 비벼가면서 공부를 하게 되면 공부의 학습효과가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그건 자발적. 정말 내가 필요해서 하는 공부니까. 그런데 부모가 대주는 돈에 돌아다니면서 하는 공부는 그건 자발적인 게 아니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학습효과가 없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을 공부해도 이 마음속에 진짜 살아있는 지식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이 말이오. 그런 데서 삶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아름답게 바꾸려고 할 때도 책임의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불평만 하지 책임의식이 없다면 그건 미성년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자세로 딱 생활에 임해야 자기 길이 열린다. 더 할 말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