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5세 여성이고 제 아들은 32세입니다.
아이가 중1 때 이혼을 했습니다.
중1 때부터 지속적으로 왕따와 괴롭힘을 당했고
저와 다르고 생활 패턴이 다르고 그래서 같이 생활하는 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아이의 병명은 ‘경계성 성격 장애와 조울증’
저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걱정만 했습니다.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아이는 저를 증오하고 원망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입원시키라고 하는데 아이는 싫다고 합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제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옛날에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그건 지나간 옛날얘기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걸 살펴야 하거든요.
굳이 옛날을 따진다면
“애가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이혼을 해서 문제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면 미국 같은데서는 대부분의 가정이 이혼가정인데
다 문제겠어요?
오히려 아이가 어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었다면
이 아이가 뱃속에 있거나 3살 4살 어릴 때 부부갈등이 심해서
자기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가운데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아이의 정신적인 그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자아를 형성하는 기본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는 이렇게밖에 될 수 없다.
그런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걸 뭐, 자기가 지금 뉘우친다고 후회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 될 거는 아니라는 거예요.
어쨌든 원인 제공한 것은 맞다.
그다음에 그렇게 약한 고리로 태어났으면
그걸 환자라고 생각하고 잘 보살펴야 하는데, 돌봐야 하는데
자기는 건강한 아이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증상이 결국은 발병을 하게 되었다.
발병할 조건은 어릴 때 생겼고
발병한 것은 그 이후에 발병해서 의사가 얘기하는 그런 진단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애를 나무랄 일은 그만둬야 한다.
왜?
어쩌면 원인 제공이 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왜?
자기 인생, 자기가 수준이 그거밖에 안 되는데,
그걸 특별히 애를 못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게 아니고
내 살기 힘들어서 몸부림치다 보니 애가 이렇게 된 거지
내가 뭐, 나쁜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걸 꼭 자기 잘못이라고 또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자기의 그런 잘못된 삶이
결혼생활이나 엄마로서의 역할이 부족했기 때문에 병이 난 건
애를 나무랄 일이 아니고 자기가 반성해야 할 일이고
그렇다고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중요한데,
첫 번째는 입원을 시키는 게 제일 좋다.
현재는 상담치료 정도해서는 어느 정도...
치유는 어렵습니다, 완치는.
그러나 어떤 극한 상황을 피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힘들어서 강제입원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의사가 입원을 요청한다면
그것은 입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애가 안 하겠다 하면 의사하고 의논해봐야죠.
나는 입원을 시킬 의향이 있는데, 아이가 안 하겠다고 할 때
합법적인 조치가 있느냐?
입원시킬 무슨 방법이 있느냐?
그랬을 때, 의사가 이 정보면 강제 입원을 시킬 수 있다 하면
강제 입원이라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애가 저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되느냐?
아니에요.
가서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 그건 금방 안정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의사의 소견이 어떠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의사도 자기 소견은 입원을 시키면 좋겠는데
현재 법적으로 이런 경우에 본인이 싫다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다 하면
그것 또한 미련을 갖지 말고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기다리면 병이 더 악화되어서
강제 입원을 시킬 수 있는 그런 상횡이 되든지
좋아져서 굳이 입원을 안해도 되든지
그건 시간이 지나면 양쪽, 어느 쪽으로 이동하게 돼요.
그래서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기가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요.
이런 아이도 행복할 권리도 있고
이런 아이를 둔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 관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아이를 뒀기 때문에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인생이 피곤한 거고
이런 아이를 둔 부모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남도 누가 보살펴야 할 아이가 있다면
우리가 어떤 기관을 설립해서 이런 아이를 돕든지, 하잖아요.
그런데 남도 아니고 내 자식이니까
자식이라는 개념이 아니고
이것은 도움이 필요하니까 도와야 한다.
그러면 방을 제공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이외의 간섭은 안해야 해요.
뭘 먹든지, 무슨 짓을 하든지 일체 간섭을 안해야 한다.
돈을 줄 수 있으면 주고 줄 수 없으면 안 준다.
싫어서 안 준다 이런 건 안 돼요.
줄 형편이 되면 주고 줄 형편이 안 되면 안 주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주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주고
그런 관점에서 딱 원칙을 정해서 식사제공, 빨래해주고, 방청소는 신경 쓰지 말고
자기 방은 자기가 청소하도록 하고
하든 안하든 간섭하지 말라는 거예요.
도움을 요청하면 해주고
그렇게 두고 나는 내 인생을 산다.
내 인생을 사는 데까지 즐긴다.
관점을 이렇게 딱 분명히 가져야 행복하지
이 아이가 치료되면 이 아이에게 묶이면
이 아이의 노예가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 관점을 딱 가지고 가다가
악화되면 입원을 하면 되고
또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약간 좋아질 수 있으면 뭐 그렇게 같이 살면 돼요.
“네가 돈을 벌어라, 어디를 다녀라, 네가 이렇게 해라”
이 생각을 놔야 해요.
그냥 나는 한 사람의 환자를 약간 돕는다.
“내 생활하면서 먹는 밥에 밥 주고, 세탁할 때 약간 해주고, 있는 방 준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자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힘들다고 내치고 도망가지 말고
그럼 아이가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원망이 생겨요.
간섭을 하면 엄청난 저항감이 생기는 것에요.
내 인생을, 이 아이에게 걸지 말고
이 아이는 그냥 내가 조금 과거에 인연이 있으니 보살핀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금부터 자기 인생을 살라는 거예요.
그러나 치료 문제는 내가 관여하지 말고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하고
전문의나 레지던트나 이런 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그 정도만 해도 이 아이 수준에서는 충분하니까
아이가 좋아 안 하면 몰라도 아이가 좋아하면 그대로 놔두면 돼요.
내가 볼 때, 그 정도 관점을 딱 가지면 큰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아니고 이 아이에게 집착을 하면
자기는 죽을 때까지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자식 잘못 만나서 고생하다가
원망 속에서 한 생을 마치게 된다.
그렇게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거지.
그렇게 안 살려면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안 하고
나는 내 인생 살고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좋겠다 싶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만 더 얘기해 보세요.
...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힘들면 같이 못 살죠.
자기는 포기해야 해요.
그러니까 집을 버리고 자기는 저 어디 외국에 가서 살든지
딴 데 가서 살다가
한 10년 후에 한 번 와봐요.
살아있으면 보고, 죽었으면 그만이고
관점을 그렇게 가지셔야 해요.
지금 내가 얘기하잖아.
그걸 못 보면 자기는 불행하게 살고
그건 관여하지 말라는 거예요.
낮에 자든, 밤에 일어나든, 직장을 가든 안가든
용돈은 왜 돈을 그렇게 쓰냐 그렇게 말하지 말고
내가 줄 수 있으면 주고 필요없다 싶으면 안 주면 되지
나무라면 안 됩니다, 이런 애는.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돼요.
그렇게 딱 자기중심을 잡아야 살 수 있지
안 그러면 어렵습니다.
자기 지금 질문하는 거로 봐서는
부처님이 와도 해결 못 하는 문제에요.
아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문제에요. 자기 문제.
별문제 아니에요.
자기가 관심만 딱 이렇게 가지면.
한 아이를, 한 사람을 도움이 필요해서 밥을 잘 못 먹고, 잠잘 데가 없고, 빨래할 데가 없으니까, 방도 있고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비용도 조금 들 수 있다.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 외에는 완전히 관심을 딱 끊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자기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여기에 연연하지 말고, 병원비 조금 대주고.
그런데 돈을 안 주면 되지
돈을 벌라든지, 왜 많이 쓰냐라든지
이렇게 하면 정신질환자는 치료를 못 합니다.
“돈 없다” 이러면 되지.
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아이를 가진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을 살 거냐?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요.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거냐는 관점의 즉문즉설이지
내가 남편을 어떻게 하고, 부모를 어떻게 하느냐의 즉문즉설이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 내가 어떤 인생을 살거냐?
이게 우리의 관심사다, 이거예요.
이 문제에 대해서 혹시
추가 질문을 하거나 소감을 말하거나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은 얘기해 주세요.
네, 없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스님이 냉정해 보이죠.
그런데 행복하려면 냉정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따뜻해야 하고
크면 냉정해야 합니다.
겨울에는 아이가 방에 있으면 불을 때 주어야 하고
겨울에는 많이 때줘야 하고
봄이 되면 조금 때줘야 하고 여름에는 안 때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겨울에 많이 땔 때는 내 귀찮다고 안 때고 아이를 추위에 떨게 하고
뒤늦게 반성을 해서 여름에는 많이 때 주는 것에요.
그래서 한번은 추위에 떨게 하고
한번은 때 죽도록 하고
이렇게 거꾸로 산다, 이런 얘기에요.
지금 어릴 때의 사랑은 줘야하는데 안 줬고
지금은 딱 내 할 일만 하고 간섭을 끊어야 하는데
뒤늦게 관심을 가지고 간섭을 하고, 이렇게 해서
내 노력과 결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건 겨울에 땅 갈고 씨를 뿌려놓고 싹 안 튼다고 난리이고
여름에는 놀고
이런 거과 같다.
때에 맞춰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를 지나버렸으면 포기해야 합니다. ㅎㅎ
봄에 내가 씨를 못 뿌렸으면 포기해야지
그렇다고 가을에 씨뿌리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처럼 어릴 때 못한 것은 지나간 일이에요, 이미.
그렇게 못 한 거는
그렇다고 애를 나무라면 안 되고
“미안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되지
그렇다고 성인이 되었는데 지금 따뜻하게 한다?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항상 어떤 거든 때가 있어요.
그때 뭘 할 거냐?
지나면 그건 끝이에요. 잘했든 못했든.
지금 할 일이 뭐냐 하는 거예요.
지금 뭘 해야 할 거냐?
이걸 해야 하는데
지금 할 일은 안하고 딴 생각하고 그러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늘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 자식 때문에 못 살겠다, 부모 때문에 못 살겠다, 이렇게 해요 ㅎㅎ
이런 남편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이런 자식과 이런 부모와
경제 형편이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하고
시골이라는 조건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거냐?
추울 때 나는 어떻게 살거냐?
더울 때 어떻게 살거냐?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거냐?
항상 나라야 해요.
이럴 때 나는 괴로워하며 사는 게 좋으냐? 원망하며 사는 게 좋으냐? 웃으며 사는 게 좋으냐?
이렇게 가야 해요.
돈을 빌려줘서 괴롭다 그러면
돈도 빌려주고 인생도 망치는 거예요.
받을 수 있으면 받고, 완전히 못 받는 게 확실하면 포기하고 살아야죠.
미련을 갖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거지.
아하.. 그런데 잘 안 돼요, 이게.
이게 되면 우리가 다 웃으며 살 수 있겠죠.
왜?
살아온 습관 때문에.
술이 몸에 나쁜 줄 알고 못 끊고, 알코올 중독자면 못 끊고
담배가 나쁜 줄 알면서 중독자는 못 끊듯이
여러분이 살아온 업식, 습관을 못 끊어서 그냥
길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그 습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분 다음 질문은... 부모겠죠.
자식이 이래서 못 살겠다, 부모가 이래서 못 살겠다, 이런 얘기겠죠.
부모도 그런 관점에서, 자식도 그런 관점에서 부모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
어려운 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라는 게 어려워요? 신경 소절하는 게 어렵죠.
어차피 나혼자 있어도 밥먹으니까 그냥 밥먹을 때 숟가락 하나 더 챙기면 되고
어차피 빨래할 때
어차피 청소할 때,
따로 해주는 것도 신경쓸 필요 없어요.
시간 되면 해주고 안되면 재로 갖다 놓고 네가 해 먹으라고
..
자기가 뭐 그게 울 일도 아니고,
명상할 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명상하기 힘들다는 것과 똑같고
담배 끊어라 그러니까
담배 안피우는 게 힘들다 그래요.
담배 안 피우는 게 뭐가 힘들어요? 돈도 안 들고 아무것도 안 들지.
그런데도 담배 안 피우는 게 힘든 사람이 있다니까.
그게 어떤 사람이오?
중독된 사람이오.
습관성인 사람은 그게 힘든 거예요.
다른 사람은 하나도 힘든게 아니다.
자기처럼 자식에 집착된 사람은 안하는게 힘든 거예요, 안 하는 게.
자기가 그게 마치
알코올 중독 같은 자식에 대한 중독이다, 이걸 알아야 해요.
나한테도 안 좋고, 자식한테도 안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얘기하지 말고
탁 끊고, 집에서 도망갈 이유도 없고, 자기 집인데 왜 도망을 가요.
딱 끊고, 그냥 기본 해주고
내가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줄 수 있으면 주고, 형편이 안 되면 야단치지 말고 주지 마라 그러잖아요.
음식을 해줘야 한다, 부담 갖지 말라는 거예요.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안 해주면 재료만 사다 놓고..
내 인생을 즐기라는 거예요, 내 인생을.
내 인생을 즐겨야 아이 인생이 행복해진다.
왜냐하면
자기가 애 키울 때, 자기가 인상 쓰고 괴롭게 살았기 때문에 애가 저렇게 된 건데
지금도 눈물 흘리고 괴롭기 때문에
애가 자기하고 같이 살아서 좋은 것을 본 받을 수 없어요.
자기가 인생을 즐겁고 편하게 살아야 아이가 그걸 배운다.
처음엔 저항이 있겠죠.
“나는 이런데 엄마는 뭐가 즐겁다고 그러냐?”
그래도 뭐 어떻게 할 거요?
너 괴롭다고 나도 괴롭게 사는 게 좋으냐?
엄마가 좋아 보이면 너도 즐겁게 살아라.
이게 탁 집착이 끊어져야 말도 편해진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십중팔구 그렇게 살 거 같네요.
악담인지 모르지만.
수준이 그렇게밖에 안 되니까.
중독성이 아주 심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중독이 되도 그건 중독이 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알코올 중독이라도 오늘 끊을 수 있고
자기가 결심하면
아무리 중독이 들어도 담배도 끊을 수 있는 것처럼
이것도 내가 이렇게 사는게 바보스러운 짓이다, 하는 걸
딱 자각을 하면
딱 놔버리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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