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38. 우주적 관점에서부터 인간적 관점까지의 윤리

Buddhastudy 2023. 8. 28. 20:01

 

 

스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보니 살인 폭행 사기 등

상대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것을 몹시 경계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유의지 같은 것이 또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는 생각도 자꾸 드는데//

 

 

, 뭐 지구가 만약에 혜성 충돌이 돼가 사라진다고 해서

우주적 관점에서 뭐 아무 일도 아니에요.

티끌 하나 사라진 것에 불과하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이

이 우주 속에서는 끊임없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태양이 하나 생기고 사라지는 것도

우주에서는 일상적으로 있는 불꽃놀이 같이 있는 일인데

지구가 뭐 하나 생겨나고 사라지는 게 그게 무슨 큰 일이겠느냐.

 

지구가 있는데 거기에 뭐 사람이 전멸하느냐 안 하느냐는

지구 역사에서 보면 별거 아니죠.

수많은 종이 생겨나고 멸종을 해왔지 않습니까?

 

이렇게 이제 큰 눈으로 볼 때는 인생이 별거 아니다

이런 눈을 가져야 돼요.

인생이 별거 아닌데 왜 남을 죽이려 그래요?

 

아니 아니 인생이 별거 아니기 때문에

죽여서까지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

훔쳐서까지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

성폭행까지 해가면서 즐길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게 인생이 별거 아닌데

티끌 같은 존재인데.

오히려 이런 관점을 가져야지

 

인생이 별거 아니니까 까짓것 뭐

사는 데까지 뺏어라도 살고, 죽이고도 살고, 성폭행해서라도 즐기자.

이렇게 생각하면 그 정신이 약간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보여져요.

 

이 자연의 생물을 한번 보세요.

자연의 생물은 예를 들면

돼지라고 하면 돼지가 자기 음식을 먹고 있는데

다른 동물이 와서 같이 먹자하면 쫓아냅니다.

양보 안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다 먹고 났을 때 다른 생물이 먹는 거는 관여 안 합니다.

이게 자연 생태계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도 먹을 것이 없어서 먹겠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 안 주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자연생태계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적 관점에서 볼 때는 그건 자연적인 현상이에요.

 

반대로 내가 먹고 남는 음식을

창고에 넣어놓고 옆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양식을 창고에 넣어놓고, 자기 먹고 남은 음식을 넣어놓고

남을 굶겨 죽이거나 굶주리게 만든다면

이것도 자연계에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자연계를 기준으로, 자연계를 제로베이스라 그러면

자연에도 없는 짓을 하면 악이라 그러고

자연에도 없는 좋은 일을 하면 선이라 그래요.

 

내가 배가 고픈데도 배고픈 사람과 나눠 먹으면

이건 자연계에 없는 일이거든요.

그럼 이걸 선이라 그러고.

내가 배부른데도 내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한테 안 주면

이거는 짐승도 안 하는 짓이기 때문에

악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이 선악은

이 생명체, 생명작용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정신 작용 때문에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 정신작용으로 인해서

다른 동물보다 더 좋은 능력도 있지만은

다른 동물보다 더 나쁜 행위도 하고 있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고 성인이 볼 때는

적어도 짐승보다 못한 행위는 하지 마라.

이 금기를 정해주고

가능하면 짐승보다 나은 길로 가라.

이게 이제 권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은 권하고, 권선

악은 멈춘다, 지악 또는 징악

이렇게 딱 멈춰라, 이런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짐승만큼 짐승처럼 살면

이거는 그냥 생물로서의 인간의 존재예요.

근데 이 정신 작용 때문에 짐승도 안 하는 행위를 하는 거는 멈추라는 거예요.

그는 자연도 해치고, 사람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정신 작용으로 인해서

자연계에서 안 하는 좋은 일을 하는 거는

가능하면 권장한다.

그렇게 하면 너도 좋고, 다른 사람도 좋고, 자연에도 좋다 이런 얘기죠.

 

 

산사태가 났다.

그러면 자연으로 놔놓으면 한 20년 있으면 복구가 됩니다.

근데 사람들이 축대를 쌓고 나무를 심으면 한 5년 만에 복귀가 되겠죠.

이것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거에 들어간다.

권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그런 데서 오늘 우리가 환경 파괴를 하는 것은

결국은 자연 짐승들도 하지 않는 짓을 하기 때문에

이게 자연도 해치고, 우리도 해치기 때문에 그런 거는 멈춰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는 거죠.

 

그래서 이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그러니까 어부가 먹고 살기 위해서 고기를 잡는 거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사람이 재미로 낚시를 한다.

그러면 이건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잖아요.

 

자기 즐기는 거를 왜 남의 목숨을 갖고 자기 즐거움을 갖습니까?

이거는 정신적 현상이지 자연적인 거는 아니라는 거죠.

그런 데서 좀 구분을 할 줄 알아야 된다.

 

만약에 식인종이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러면 그렇게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거에 비해서는 비판을 받지만

그거는 자연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념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슨 이익을 다투면서

전쟁을 해서 수십만 수백만을 죽인다?

이건 자연에는 없는 현상이에요.

이런 거는 우리가 멈춰야 할 일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사람이니까

자연에서 없는, 짐승보다 못한 짓은 멈춰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가 인류로서 이 발달 된 정신력에 의해서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건 권장 사항이지 안 한다고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인들이 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이렇게 잘못 훈련된, 잘못 형성된 까르마라는 거죠.

그러니까 꼭 그 행위가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건 좀 토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만약에 어떤 도둑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그 주위 사람들하고 따라서 늘 도둑질을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도둑질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을 거 아니겠어요.

왜냐하면 그러고 살았으니까.

 

우리가 어릴 때 아버지가 사냥꾼인데

아이가 사냥하는 아버지 따라서 늘 사냥을 하면

그 토끼나 노루나 뭘 죽이는 걸 나쁘다는 생각이 전혀 없을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어떤 집단에서 아이가 자라서

사람을 사냥하는 집단에서 애가 태어나 자랐다면

그 아이는 그게 정당한 줄 알 거 아니겠어요.

그럴 때는 그 개인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이거는 이해가 돼요.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 거는 아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

왜냐하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이렇게 공유할 때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해가 되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이 거기에 저항을 하면 자기도 죽임을 당할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거는 화를 자초하는 행위다

이렇게 볼 수가 있죠.

 

오늘날 우리가 자연을 사냥하는 거는

그동안에 자연 상태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간이 자연의 생물을 이렇게 채취했을 때는

자연의 보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파괴하는 정도로 가니까

지금 환경 위기라고 해서

지금 생존의 위험이 도래하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타인에게 계속 손해를 끼치거나 해치면

그 사람도 가만히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 되면 나한테 해가 돌아온다는

이걸 이제 과보라 그러죠.

 

그러면 결과적으로 계산해 보면 손해라는 거예요.

우리 에너지를 서로 해치는 쪽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래서 해치는 행위를 최소화하고 함부로 해치지 마라.

그다음에 이게 직접 이제 생명을 해치는 거를 최소화하라는 거죠.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계율은

직접 해치지는 않아도 그 사람이 먹고 살려면 기본적인 생존

먹이하고, 숨 쉬는 거하고, 물하고 이런 거는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생필품은 있어야 그 사람이 사는데 그걸 뺏어버리면 어때요?

그 사람 죽게 되잖아요.

그래서 생존에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훔치거나 뺏는 것은

그 사람을 죽게 만들기 때문에 안 된다.

이게 두 번째 가치관이고요.

 

-직접 죽이는 행위를 하지 마라.

-두 번째 생존권을 뺏어서 간접적으로 죽이는 행위를 하지 마라.

-그다음에 육체는 안 죽이지만 정신적으로 죽이는 고통을 주지 마라.

이게 이제 여성 같은 경우에 강제로

여성이 아니라도 요즘 남성도 마찬가지

강제로 성폭행을 해서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런 괴로움을 주는 행위는 하지 마라.

이렇게 순서가 돼 있는 거예요.

 

...

 

네 그런데 이제 너무

부모가 자식을 돌봐야 된다는 효라든지

이런 거는 이제 권장 사항은 될 수 있지만

그걸 안 한다고 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생태계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것은

새끼를 돌보는 생태적인 거거든요.

그걸 안 하면 악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나 노인을 돌보는 거는 자연계에 없잖아요.

그걸 하면 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안 한다고 악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윤리·도덕이

어떤 특정한 종교나 특정한 문화 집단에서 형성이 된 거는

서로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자연의 원리, 생태원리라는 걸 기초에 깔고

그 위에 인간 윤리를 건설해야 되는데

옛날의 윤리는 주로 인간들끼리만 관계를 갖고 윤리를 만들었다.

또는 지배자의 이익만 갖고 만들었다.

남성 중심으로만 만들었다.

 

그래서 성차별 문제가 생기고, 인종차별 문제, 계급 차별 문제가 생기는데

오늘날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가능하면 차별을 두지 않는 쪽으로

보편성에 기초하고 윤리를 만드는데

이것만 갖고는 환경 문제가 해결이 안 되죠.

 

자연생태계에 바탕을 둔

그러니까 생태 윤리에 기초를 한 인간 윤리를 마련해야 되는데

불교는 비교적 생태적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살인하지 마라고 안 하고

살생하지 마라이렇게 말을 하는 거거든요.

 

여기 무조건 벌레도 한 마리 죽이지 마라가 아니라

앞에 함부로죽이지 마라. 죽이는 것을 삼가하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게 극단적으로 절대로죽이면 안 된다.

이게 이제 자이나교죠.

그래서 농사를 안 짓죠.

농사를 지으면 벌레를 죽이기 때문에

물론 어부도 안 하고, 목축도 안 하고

꼭 장사만 하는 거예요.

그건 극단적인 주장이고.

 

불교는 농사도 짓고, 어부도 해도 돼요.

그러나 항상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마라하는 원칙을 지켜야 된다는 거예요.

 

 

--

, 어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고

우리 젊은이가 생각하듯이 그런 생각도 할 수가 있다.

무조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은

우리가 내 관점만 가지고 얘기하면 타인과의 갈등이 생기죠.

우리 종교만 갖고 얘기하면 타 종교하고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같이 두고 보는 보편성을 가져야 된다.

이 보편성 위에 특수성이라는 것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진로를 잡을 때

우리 민족만 생각하면 주위와의 갈등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인류 보편성 위에서

그러나 우리 민족의 일부 특수성을 인정을 해야 된다.

 

왜냐하면 특수성을 인정 안 하면 아이덴티티가 없어져요.

자기 정체성이 없어진다, 이런 얘기예요.

 

종교인이라면 종교적 보편성 위에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보편성 위에

내 종교, 또는 내 신앙, 또는 내 사상의 특수성을 가져야 된다.

그래야 자기 아이덴티티가 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런 관점을 우리가 좀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인류는

그동안에 너무 사람 중심만 생각했는데

자연까지 고려한 보편성 위에

또 결과적으로는 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게 누구를 위해서예요?

인간을 위해서고 나를 위해서예요.

 

우리가 남을 배려하자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인 동시에 나를 위해서예요.

남을 배려하는 게 장기적으로 나한테 이롭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자는 거고

자연 생태계를 고려하자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인류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내나 남편에 대해서 배려를 하자 하는 거는

그렇게 배려할 때 그게 나한테 이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쁘다고 불교는 타인의 행동을 말하지 않고

어리석다이렇게 말하죠.

자기의 이익을 자기가 해치는 자를

어리석은 자다이렇게 표현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