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민은
인생에 목표가 없고, 삶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20대 때 저의 목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바람에
환경적으로나 심리적으로 10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원하는 학교를 졸업했고,
취업도 될 때까지 지원해서
제가 원하던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 취업하고 나서는 매우 기뻤는데
그것도 잠시였고,
몇 년 전부터는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이게 다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전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자꾸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일을 하며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돌아서는 순간에
다시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자니 딱히 원하는 것이 없어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한다 해도
또다시 실패해서 괴로움이 생길까 봐 겁이 납니다.
어떻게 해야 괴롭지도 공허하지도 않게 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몇 살이에요?
월급 받아서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결혼은 했습니까?
못 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결혼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속된 말로 눈이 높은 거네요.
특별한 인생의 목표가 없다는 사람이 눈이 높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질문자 나름대로 목표가 있으니까, 눈이 높은 것입니다.
...
그렇게 너무 따지면 결혼을 못 합니다.
인물만 보든지, 돈만 보든지, 마음만 보든지, 어느 한 가지만 딱 찍어야 해요.
‘바람을 피우든, 돈을 못 벌어오든, 인물만 잘났으면 됐다’라고 하거나,
‘인물이 못나고 성질이 더러워도 돈만 많으면 된다’라고 하거나
이렇게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되고, 인물이 못나도 좋으니
나만 쳐다보고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 된다’라고 해도 됩니다.
이렇게 입장을 분명히 가져야 짝을 구하기 쉽습니다.
인물도 괜찮고, 돈도 어느 정도는 벌고, 성격도 괜찮으면서
나만 쳐다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조건은
소박한 요구가 아닙니다.
컴퓨터에 이런 조건을 입력하고
지구상의 80억 인구를 넣어서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요?
제로가 딱 나와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질문자가 말한 조건의 사람을 찾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예를 들어
저는 음식에 대해 까다로운 게 하나 있어요.
‘밥을 좀 잘 지어 달라’는 거예요.
반찬을 잘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밥만 좀 잘해주면 좋겠어요.
그럼 어떤 밥이 잘 된 밥일까요?
밥을 지을 때 쌀이 햅쌀이면 물을 조금 적게 부어야 하고,
묵은쌀이면 물을 조금 많이 부어야 합니다.
햅쌀은 30분 이내로 불리거나 씻어서 바로 밥을 지어야 합니다.
묵은쌀은 한 시간 이상 불려서 밥을 해야 좋습니다.
그리고 밥이 다 되면 바로 먹는 게 아니라
10분에서 20분 정도 놔두었다가 뚜껑을 열어야 해요.
그러면 숟가락을 가지고 밥을 살살 휘저을 때
촤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밥이 고슬고슬하게 지어집니다.
그렇게 밥을 잘 지으면 맨밥만 먹어도 고소합니다.
반찬은 대충 김치만 있어도 돼요.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스님, 열 가지 반찬을 하는 것보다
밥 하나 잘 짓기가 더 어렵습니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저는 음식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에요.
‘반찬은 아무거나 줘도 된다. 밥만 좀 잘해주면 된다.’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찬 열 가지 달라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주문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 관점이 다릅니다.
질문자의 관점에서 결혼 상대자라면
성격이 괜찮아야 하고, 바람도 피우면 안 될 겁니다.
돈도 어느 정도는 벌어야 하고
인물도 어디 같이 나가면 ‘남편 인물 좋네’ 하는 소리는 들어야 하는 거죠.
키가 나보다 작아서도 안 되죠.
나랑 같거나 조금 더 큰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조건은 소박한 게 아니에요.
그런 것을 모두 갖춘 사람을 찾을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러면 혼자 살 수밖에 없어요.
질문자는 인생의 목표가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게 벌써 엄청난 목표예요. (웃음)
사람들은 종종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없는 게 아니에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그러고는 자기가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런 사람을 가만히 보면 생각이 엄청나게 많아요.
질문자는 지금 주어진 조건이 괜찮은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목표를 높게 갖는 겁니다.
목표가 너무 멀리 있으니, 마음이 공허해지는 겁니다.
질문자는 한 3년간 진짜로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앞으로 3년은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공허하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저 ‘아침에 눈 떠서 직장 가면 됐다.’,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월급 받으니 됐다.’,
‘밥 먹으니 됐다.’,
‘그 외에는 다 필요 없는 거다.’,
‘일은 되면 하고 안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한가하게 살아보세요.
이렇게 3년 동안 1,000일 기도를 하면
저절로 생기가 돌게 됩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6개월 정도 장애인들한테 가서 봉사하든지
부탄이나 인도 같은 오지에 가서
몇 개월 봉사하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돌아올 때는 자기 긍정성이 굉장히 높아져 있을 거예요.
한국에 사는 여러분의 삶의 조건은
외국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부러운 조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생기가 별로 없어요.
베트남 청년들을 만나면
눈이 반짝반짝하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매우 쾌활합니다.
지난번에 제가 방문했던 동티모르는
진짜 살기 어려운 환경인데도
그곳 젊은이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곳은 자기가 조금만 노력해도 사는 게 나아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공부만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학벌이 낫습니다.
조금만 일을 해도 남보다 재주가 나은 사람이 돼요.
다들 가난하고 못 배우고 못 사는 형편이라서
개인의 노력으로 삶이 향상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습니다.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뭔가 될 수 있어요.
제가 만난 분은
산에 물웅덩이를 파서 작은 상수도 물줄기를 하나 낸 것만으로도
그 성취감으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만족하는 거예요.
결과가 바로 나오니까요.
반면에 한국 젊은이들은
사는 게 좀 막막하지요.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월급받아서 자기 힘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데모를 조금 한다고 나라가 바뀌지도 않아요.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에는
시위하고 감옥에 가더라도 어쨌든 민주화를 성취했고
노력하면 경제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한국 경제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개인의 힘으로 성취할 만한 게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내가 뭘 한다고 바뀔 게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다 눈은 높아져서 결혼할 때 아파트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갖춰야 할 조건이 옛날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월급받는 것을 계산해 보면
30년을 안 쓰고 모아도 아파트 한 채를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겁니다.
겨우 한다는 것이 복권이나 주식으로
순식간에 뻥튀기해서 폼 나게 살아보자는 꿈을 꿉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사는 게 막막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은 사는 조건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하면
10배는 더 좋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여러분들이
자기 성취를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많지 않을 뿐이에요.
여러분들은 자꾸 남들과 비교합니다.
텔레비전에는 늘 좋은 아파트에 미남미녀들만 나옵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만 못하고,
사는 집도 그 집보다 못하고,
학벌도 재주도 못나 보입니다.
그러니까 기죽을 일밖에 없어요.
한 사람하고만 비교하는 것도 아니에요.
100만 사람 중의 제일 인물 좋은 사람, 제일 말 잘하는 사람, 제일 재주 많은 사람을 보면서
늘 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에
내가 나은 게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내가 나은 점을 찾기가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 마음이 답답하고 손에 잡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 여러분에게
가난한 지역에 가서 봉사를 해보라고 하고,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 일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거기 가서 있어 보면
자신이 지금 얼마나 건강한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재산인지
자각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귀함을 자각해야 합니다.
스님이 백번 말해도 소용없어요.
‘네가 본래 부처다.’,
‘스스로 이미 훌륭하다는 것을 자각해라’ 하고 말해봤자
귀에 안 들어옵니다.
자기가 실제로 경험을 해봐야
‘아, 내가 소중한 존재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습니다.
자각을 해야 생기가 돌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여행을 간다고 해도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보다
오히려 어려운 나라를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그런 오지 여행을 통해
자신을 내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진짜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질문자는
지금 희망이나 목표가 없어서 공허한 게 아닙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질문자는 벌써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면서
엄청난 설계를 하고 있어요.
자기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막막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보세요.
직장에서 떨어져 나가 보면
직장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하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늙어 보면 젊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요.
그런데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좋은 줄을 모릅니다.
이미 가진 것은 당연시하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겁니다.
조금 한가하게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
지금 건강하다는 것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의 내면이 허전하지 않고 이미 충만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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