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환자가 사망할 때 느끼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2024.10.12.)

Buddhastudy 2024. 10. 16. 20:03

 

 

저는 20여 년 간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금은 요양 병원을 운영한 지 6년이 된 내과 의사입니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을 썼습니다.

첫 환자가 사망했을 때

보호자 앞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벌써 3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환자가 사망을 하면 마음이 상당히 힘듭니다.

제가 내과 의사이다 보니까

앞으로도 환자가 계속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엉엉 울면서도 벌써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 썼잖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냥 울면서 쓰면 돼요.

 

만약 질문자가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조언할 수 있겠지만,

이미 30년 가까이 해왔잖아요.

또 슬프다고 해서 의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울면서도 계속 사망 진단서를 써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울면서 쓰면 됩니다.

결혼은 했어요?

 

그래요.

울면서 결혼도 했고 울면서 아이도 낳았고 다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울면서 그냥 해나가면 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만큼 별일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찰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아프죠.

질문자가 기계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겠어요.

마음 아픈 정도가 심해서 의사를 그만 두었다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울면서도 사망 진단서를 몇 만 장을 써온 사람에게

제가 더 해줄 말이 뭐가 있겠어요?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예요.

 

울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저한테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너 잘했다고 한마디 해주세요

이런 질문으로 들려요.

 

그래서 제가 잘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별 문제가 없어요.

 

...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안 힘들겠어요?

그럴 때도 아무렇지 않고 싶다는 건 욕심이에요.

같이 지내던 반려동물이 죽어도 그렇게들 슬퍼하는데

돌보던 환자가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아무렇지 않겠어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의사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요.

 

환자가 돌아가실 때 마음이 안 좋은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런 감정도 느끼기 싫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조인간이면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사람이 죽었을 때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질문자의 직업상

죽는 사람을 많이 접하는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들도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다 보니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면서

상주들이 운다고 해서 스님도 덩달아 매일 울면

그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가족에게는 그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슬픔에 빠지곤 하지만,

스님들한테는 매일 같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슬픈 감정에 너무 빠지면 그 일을 하기가 힘듭니다.

 

질문자처럼 의사인 경우에도

특히 종합병원에 있으면

거의 매일 같이 사람이 죽는 걸 접하게 될 거예요.

종합병원처럼 큰 병원에 있으면

누가 죽어도 죽게 되잖아요.

 

하루 진찰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3년 진찰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그렇게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럴 때마다 목놓아서 운다면 의사를 하기가 힘듭니다.

 

사람이 죽는 건 늘 힘든 일이지만

질문자의 직업상 매일 죽는 사람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아파야 병원을 찾아오는데,

아픈 사람이 모두가 다 나을 수는 없잖아요.

그중 낫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한 거예요.

 

특히 질문자처럼

요양 병원에 있으면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주로 오니까

죽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요양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1년 후에 죽을지, 3년 후에 죽을지의 문제만 남았지,

대부분 70대와 80대 노인들이기 때문에

질문자보다 대부분 먼저 죽게 될 사람들이에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음이 안 좋은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죽음을 접해야 하는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매일 같이 울면

그 직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환자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픈 건 질문자가

환자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를 살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살리는 거예요.

그러나 죽지 않게 할 순 없잖아요.

오늘 죽을 수도 있는 걸 내일까지 살리거나

한 달 안에 죽을 수 있는 걸 석 달을 살게 하는 게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안 죽게 하는 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안 죽게 할 수가 있어요?

그저 환자들의 삶을 조금 연장하는 것이 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질문자는 울며불며한다고 하지만

잘 살아갈 사람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데,

이왕 물었으니까 제가 더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의사는 사람을 안 죽도록 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죽을 사람을 내일까지 살리고

한 달 후에 죽을 사람을 석 달 후에 죽도록 하고

1년 안에 죽을 사람을 2년 안에 죽도록 연장하는 게 의사의 일입니다.

질문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