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북툰의 가상 스튜디오입니다.
네, 오늘은 이 스튜디오에 과학자 한 분을 모시고
여러분들과 과학에 대한 얘기를 한번 나눠볼까 합니다.
북툰 스튜디오에 모실 과학자는 바로 칼 세이건입니다.
칼 세이건은 천문학자이면서 대중과 소통 하기를 좋아하셨던 분이니
초대손님으로 알맞을 듯 합니다.
칼 세이건이 남긴 말들을 간추려서 시간순으로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초대손님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까요?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는
우주와 관련된 전시에 푹 빠진 소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별을 더 알고 싶어 했던 소년은
어머니가 끊어 주신 도서관 회원증으로
매일 오후면 도서관에서 전문학 책을 읽었습니다.
칼 세이건의 인생에서 평생의 관심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960년, 칼 세이건은 마침내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직설적이고 단정적이었습니다.
1977년에는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의 골든 디스크 제작 프로젝트를 맡았으며,
1980년에는 PBS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함께 나온 책 <코스모스>는 무려 70주 동안이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칼 세이건은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자이면서도
일생동안 600편 이상의 논문과 기사를 발표한 열정적인 학자였습니다.
말년에는 환경 보호와 핵무기 감축 활동에 영향력을 발휘했고
사이비과학과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1979
“안녕하세요 박사님, 북툰 스튜디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국의 시청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네, 박사님께서는 최근 야심찬 TV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내년 봄에 방영될 예정이라던데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아마 <코스모스>가 될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에는 멋진 특수 효과가 많이 나올 겁니다.
가상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신나게 한 바퀴 도는 장면도 있고,
살아 있는 세포 속으로 들어가보는 장면도 있습니다.
특수효과 때문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다큐멘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사님은 정말 과학을 쉽게 전달하는 일에 열심이십니다.
특히 시나 명언, 예술작품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시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책 <코스믹 커넥션>에서는 T.S.엘리엇의 시를 인용하셨습니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탐험의 끝에서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장소를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안다 라는 말을 강조 하셨는데요,
어떤 점을 강조하시려 한 건가요?”
“인류는 수백만 년 전 어느 초원에서 작은 무리로 시작한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동물을 사냥했고, 아이를 낳았고,
지적으로 점점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신화입니다.
신화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죠.
세상이 우주의 알에서 깨어났다거나
신들의 결혼으로 만들어졌다거나
어떤 강력한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거나 하는 상상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을 얻으려면 신화의 지평선 너머로 심오한 질문을 끝없이 던져야 했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무엇이고 인간의 기원은 무엇일까?
지구와 태양계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은하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얻으려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이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과학이 최종적인 답을 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과학으로 많은 답에 근접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최종적으로 답을 구하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여정은 언제까지나 인류의 운명이 될 겁니다.”
“프로이트는 아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처음 보는 순간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비유네요.
인간은 방금 거울을 발명했고 이제야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1
“천문학자이신 박사님은 우주를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십니까?”
“놀라움입니다.
우주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되었다는 것
그런 우주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관점에서 경외감은 아닙니다.”
“종교적인 관점을 언급하셨는데
서구의 기독교에서는 우주의 정교함이 창조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게 우리의 우주론 모델에서 창조주를 가정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다음 질문은 그 신은 누가 만들었지?가 되겠죠.
이때 신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고 대답한다면 마찬가지로 우주도 늘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왜 안 됩니까?
창조주 가설은 우리의 우주론 모델을 물리 법칙과 분리시킬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신은 하얀 턱수염을 기른 노인이 아니라 우주를 묘사하는 모든 물리 법칙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신 이야기가 나오니까 시청자 전화가 빗발칩니다.
그럼 시청자 한 분과 전화 연결을 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사는 ㅎ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ㅎ님,
서울에 사시는데 저희처럼 경상도 억양을 쓰시네요.
1인 3역의 한계라 할 수 있죠.”
“저는 성서적 창조주의를 믿는 사람인데요
과학자이신 박사님은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의견대립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자든 불신자이든 그들의 의견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때는
어느 쪽이든 불편합니다.
과학자들 중에도 천국과 지옥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당신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믿음’이라고 답한다면,
저는 그에게 과학의 증거주의를 잊은 것이라고 말해 주겠습니다.
반대로 그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면 저는 당연히 주의깊게 살펴볼 겁니다.”
“박사님은 마치 종교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를 부인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는 윤리와 도덕을 다룹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에게 연민을 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종교이죠.
저는 그런 종교를 진심으로 지지합니다.
종교가 문제가 되는 건 과학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는 경우입니다.
성서에 묘사된 과학은 기원전 600년 경,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배웠던 것들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로마 가톨릭, 개혁파 유대교, 대부분의 주류 개신교들은 인간이 다른 생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생각
지구의 나이가 46억 년이라는 생각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어려움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 생각을 전혀 곤란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곤란하게 느끼는 쪽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주의 창조주가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속기사에게 불러준 내용이고
그 속에 시적 은유는 전혀 없다고 믿는 근본주의자들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잘못된 근거에서 잘못된 과학을 따른다고 보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자 누가 더 겸손합니까?
열린 마음으로 자연을 공부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이 책의 내용은 무조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 책을 썼던 사람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까?”
“박사님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전통적인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호기심과 지성은 분명 그 신이 주신 것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천 년 전의 신화에 머물러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억누른다면
이는 신이 주신 선물을 오히려 푸대접하는 꼴이지 않을까요?”
“이러다가 밤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님.
이쯤에서 잠시 광고를 듣고 오겠습니다.
광고 뒤에는 보이저호 얘기를 한번 나눠볼까요?”
--1992
“보이저호가 태양계 끝에서 지구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먼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초상은 보통 사람들에게 무척 감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사건을 좀 다르게 받아들일까요?”
“과학자들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 시대의 열정과 편견에 사로잡힙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은 과학자들이나 보통 사람들이나 똑같이 느낀다고 봅니다.”
“지구 사진을 찍도록 하는데 박사님의 공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보이저호가 태양계의 제일 바깥 행상을 지나친 뒤 우리는 카메라를 거꾸로 돌려서 지구를 찍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사진에 과학적 데이터는 별로 없을 게 분명했습니다.
대륙도 구름도 바다도 안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일단 사진을 찍고 보니 뭐랄까
지구가 너무나도 취약하고 작게 보였습니다.
저기 저것이 바로 우리 세상이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사람들이 모두 저 티끌 위에서 삶을 살아갔다.
저는 그 사진을 보고 서늘하고 짜릿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그 사진은 관점을 넓혀주고 의식을 일깨워 주는 경험이었습니다.
흔히 천문학을 가리켜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고 품성을 다져주는 학문이라고 말하는데
그 사진이 딱 그런 사례입니다.”
--1996
“박사님, 최근 투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골수형성이상이라는 병인데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하나뿐인 여동생의 조직이 제 조직과 완벽하게 맞아서 이식을 받았거든요.
그것도 행운이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으로 목숨을 건지신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과학기술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백신을 거부하고 비과학적인 치료법에 기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현재 지구 인구의 대부분이 굶어죽지 않고 병들어 죽지 않는게 과학기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과학도 실수를 저지를까요?”
“최고의 과학자들도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실수, 잘못된 추측, 타당하지 않은 결론은 과학의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그 실수 덕분에 반증이 나오고 보완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분야가 발전하는 거죠.”
“그렇군요.
과학이 인간의 다른 활동 분야
예를 들어 정치나 종교에 비해 뛰어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과학의 아름다운 점은 그 속에 오류를 수정하는 장치가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활동들과 달리 과학에서는 제일 존경받는 지도자의 주장을 반증하는 사람에게 제일 큰 보상이 돌아갑니다.
아이작 뉴턴의 법칙을 반증한 사람이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니겠습니까.
뉴턴은 어마어마하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는데 그런 뉴턴이 틀렸다는 것을
최소한 어떤 영역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반면 정치나 종교는 그 반대입니다.
특히 종교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빈약합니다.
창시자의 말, 설교자의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단적인 종파나 사이비과학은 그런 무비판적인 시스템을악용한 사례라 할 수 있겠군요.
아무튼 이단이나 사이비과학이 왜 위험할까요?”
“사이비 과학, 미신, 근본주의적 광신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현대에 들어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사회를 만들었지만
그 속에 무지가 팽배한 사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무지가 권력이나 이익 집단과 결탁하 면 우리 사회는 위험해집니다.
이럴 때 과학적 사고방식은 헛소리 감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과학의 핵심은 비판, 토론, 개방적인 탐구,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태도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판단을 미루려는 태도
비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무지와 광신에 회의적인 질문을 계속 던진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해 질 겁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시간이네요.
마지막으로 좀 가벼운 주제를 얘기해볼까요?
최근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영화입니까?”
“제 소설 <컨택트>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외계의 전파 메시지를 받아서 그 외계인과 접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고 지금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극장에 언제 걸릴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빨라도 내년 말은 되어야 할 겁니다.”
“그 영화를 통해서도 과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약간의 경이로움, 그리고 약간의 과학적 기법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대형 화면은 천문학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기 알맞은 도구죠.
우리가 품었던 생각들이 큰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어서보고 싶어 못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빨리 보고 싶네요.
오늘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박사님.”
“저도 즐거웠습니다. 북툰님.”
안타깝게도 칼 세이건은
끝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칼 세이건
1934~1996
--쿠키영상
“박사님, 광고가 나가는 동안 우리끼리 사적인 대화를 좀 나눠볼까요?”
“그러죠,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북툰이 도대체 뭡니까?”
“박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21세기에는 유튜브라는 개인 미디어 방송이 유행합니다.
북툰은 유튜브에서 과학책을 소개하는 과학 채널입니다.”
“오 과학책,
그러고 보니 제 책을 소개한 영상도 꽤 있네요.
그런데.. 마지막 영상이 4개월 전인데 원래 이렇게 띄엄띄엄 영상을 올리나요?”
“아, 아닙니다.
그동안 개인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그럼 영상 다시 만드실 건가요?”
“네”
“그럼 빨리 인터뷰 마치고 영상이나 만들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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