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전에 이어서 오후에도 여래명호품 법문하겠습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니까 그 장소가 금강지, 금강으로 된 땅이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장소를 금강지라고 한다)
금강이 뭐냐?
부증불감 구경청정(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는 본래 궁극적으로 청정한 것)
부증불감_ 그걸 금강이라고 그럽니다. 더 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고,
구경청정_ 항상 청정하고 궁극적으로 청정한 것이 금강이에요
부증불감 구경청정, 딱 깨보니 전체 세계가 부증불감이요, 구경청정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걸 금강이라고 그럽니다.
연화장 사자좌(그대로 청정해 두려움 없는 자리)
그대로 청정한 게 연화장이고,
사자좌_ 무애, 두려움이 없다, 이런 비유거든요.
이 정각 세계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법상을 연화좌라고 하고, 사자좌라고 합니다.
그런데 화엄에서는 이 법상만 연화좌이고, 사자좌가 아니라 온 법계가 연화좌요 사자좌인 거예요.
(화엄의 세계에서는 온 법계가 바로 연화장 사자좌)
기지견고 금강소성(그 땅이 견고하여 금강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땅이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라_ 금강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시작해요, 화엄경이.
여기가 국토청정이거든요. 국토가 청정하고,
그다음에 지정각 세계인데, 그러면 정각을 이룬 그 정각 세계는 어떠하냐?
그 정각세계를 10가지로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는 정각 세계의 총설, 정각을 이룬 전체를 설명하는 게 있어요.
묘오개만(미묘한 깨달음이 모두 만족하다)
오전에 이거 시작하다 말았거든요.
미묘한 깨달음이 실개만족_ 다 만족하다 이거죠.
이것이 구경각, 정각입니다.
묘오개만이라, 묘오한 깨달음이 다 원만하고 만족해요.
(묘한 깨달음이 다 원만하고 만족한 상태가 곧 구경각의 세계)
그러면 80화엄에서는 묘오개만, 이렇게 설명했고
60화엄에서는 뭐라고 그랬냐하면 착할 선, 깨달을 각, 지혜 지, 선각지, 이렇게 3자로 변역을 했어요. 잘 깨달은 지혜. 이게 정각 이거든요.
(선각지_ 잘 깨다른 지혜, 정각)
깨달으면 생각이 없어지고 지혜가 나와요.
이게 참, 희한한 일이요.
꿈에서 깨면 몽식이 없어지고 의식이 나오는 거예요.
꿈에서도 보는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꿈속에서 본다고 그래서 몽식이라고 그래요.
꿈 몽, 의식 식
그런데 꿈에서 딱 깨면 몽식은 없어져요.
그런데 의식이 나와요, 의식.
우리가 평소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런 생각이 나온다 이 말이에요.
꿈꾸는 생각이 아니라 생활하는 생각이 나온단 말이죠.
그렇듯이 정각을 얻으면 의식은 사라지고
(정각을 얻으면 의식(업식, 망념)은 사라지고 지혜가 나타난다)
의식은 분별이니까.
의식은 망념이니까, 의식은 업식이에요.
의식은 자기 경험에 의해서만 압니다, 그걸 업식이라고 그래요.
경험하지 않은 건 몰라요.
그래서 의식은 허망한 생각이라고 그래서, 망념이라고 그러고.
의식은 자꾸 나눈다고 그래서 분별이라고 그러고.
의식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 안다고 그래서 업식이라고 그러는데
이 정각을 얻으면 이런 의식은 싹~ 없어져요.
뭐만 나오느냐? 지혜만 나타나요.
이걸 전식성지라고 그래요, 의식이 바뀌어서 지혜가 이루어졌다.
(전식성지_ 의식이 바뀌어 지혜까 이루어졌다)
그래서 시성정각은 전식성지(비로서 정각을 이루니 의식이 바뀌어 지혜가 이루어졌다)
또 이런 말을 해야 법문하는 사람이 직성이 풀리니까
시성정각, 전식성지_ 생각이 바뀌어서 지혜가 되는 거예요.
그 지혜의 세계를 지정각 세계라 그래요. 지혜로 충만한 정각의 세계
(지적앎의 세계_ 지혜로 충만한 정각의 세계)
그것이 80화엄에서는 첫 번째가 묘오개만이라, 묘한깨달음이 다 만족하다, 이랬고
60화엄에서는 선각지, 잘 깨달은 지혜다, 이렇게 설명을 했어요.
(깨달음에 대해 80화엄경에서는 ‘묘오개만’ 60화엄경 ‘선각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선각이라고도 하고 묘오라고도 하고 정각, 원각_ 둥글 원, 대각_ 큰 대,
이게 깨달음이거든요.
(선각, 묘오, 정각, 원각, 대각)
그러면 그런 깨달은 후에 뭔 일이 벌어졌나?
묘오개만 이행영절(미묘한 깨달음이 모두 만족하여 두 가지 행위가 영원히 끊어졌다)
이행이 영절이라, 두 이, 행할 행
두 가지 행위가 영원히 끊어졌어요.
있다 없다, 보인다 안 보인다, 산다 죽는다, 이렇게 지옥이다 극락이다, 안다 모른다,
이런 이행이 영원히 끊어졌어요.
이행이 영절이요.
그래서 번뇌망념이 그냥 다 끊어진 거예요
번뇌망념이 있으면 못 깨달아요.
어두움이 눈을 가리면 밝은 거 못 보는 거와 똑같아요.
그래서 법성계에서도 파식망상이면 필부득이라.
파식_ 불가, 불가식 망상_ 망상을 쉬지 않으면 이 말이거든요.
반드시 얻지 못해요.
(파식망상필부득_ 망상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얻지 못한다)
망상은 두 가지가 있어요.
범부망상, 삼승망상
(범부망상: 탐진치가 기본인 번뇌 망상,
삼승망상: 망념을 없애려고 하는 수행자(보살, 성문, 연각)의 망상)
범부는 번뇌망상이에요, 탐진치가 기본이기 때문에 계속 구하는 거예요.
번뇌가 근본 번뇌가 6개가 있는데, 탐진치 오만한 거, 의심 악견 6개가 근본 번뇌거든요.
이게 전부 의심하고 잘난 체하고 자기 소견 내고, 화내고, 욕심내고, 뭘 모르는 거에요, 어리석은 거. 이게 아주 근본 망상인데, 범부 번뇌망상이에요.
또 보살성문연각, 이걸 삼승이라고 그러는데
보살 망상도 있고, 성문 망상도 있고, 연각 망상도 있고, 상승.
이건 수행자의 망상이에요.
이 수행자의 망상은 단망망상이라고, 단망, 망을 끊고 진을 구한다,
단망구진 허망한 건 끊어버리고 참된 걸 구해야 한다.
(단망구진: 망념을 끊고 참된 것을 구하다)
이런 생각이 꽉 차있는 것이 수행자의 망상이에요.
단망망상, 망을 끊고자 하는 망상이다. 망을 끊고자 하는 망상이 눈앞을 가리면
뭐든지 끊어서 없애려고만 하지 그 선각지가 안 나오는 거예요.
잘 깨달은 지혜가 안 나와.
그래서 이런 것들 다 쉬고, 문제는 깨달아야 한다. 이거죠.
그래서 이런 망을 끊고자 하는 생각이나, 또 좋은 걸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쏵 녹아지면
그게 식망상이에요, 망상을 쉬는 거예요.
(망념을 끊고자 하는 생각, 좋은 것을 구하조가 하는 생각이 사라지면 선각지가 나타난다)
그냥 안 쉬거든요,
이런 망상을 쉬는 건 딱 한 가지에요.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것, 반조자심, 관행제법, 제법을 딱 보는 거예요.
금강경에서는 마지막에 육류작관이라고 6가지 비유로 세상을 봐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게 육류작관이에요, 6가지 비유로 세상을 보면 그게 관행인데
관행을 하다보면 깨달아요.
(모든 유위법은 꿈, 허깨비,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으니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또 반조하면 깨달아요.
이 생각하고 보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돌아보면 깨치는 거예요.
돌아보는 순간에 범부 번뇌망상도 없어지고, 삼승 단망망상도 없어져서
정각을 얻게 되는 거예요.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제법을 관할 때 모든 망상이 끊어지고 정각을 얻게 된다.)
이건 화엄경이 아니면 못 듣는 소리거든.
이런 말 듣고 잠이 안 오면 성불한 거예요, 바로.
아주 대단한 거예요.
이행이 영절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죽느냐 사느냐 이건 망상이에요.
이걸 바로 보면 무념, 무념 이게 이행이 열절한 거예요,
좋다는 생각, 나쁘다는 생각, 없을 무 생각 념 무념
그래서 진여실상을 바로 보면요, 무념직조,
그래서 조견오온개공, 오온이 다 공함을 조견하면 바로 깨닫는 거지.
작관 조견, 반조_ 내 마음을 돌아본다.
그럼 이행영절이에요, 이행이 다 끊어져 버려요.
꿈도 없고 꿈에서 본 것도 없고.
꿈에서 어떤 것을 봐서도 꿈 깨면 그만이에요.
그러면 이게 뭐냐?
우리가 이 생각으로 무엇을 생각했어도 이 생각 사라지면 그만이에요.
하~ 이게 참 문제인데요, 무엇을 생각해도 생각뿐이에요, 그게,
일체가 유식이라_ 오직 의식뿐이다.
내가 걱정 근심하는데, 걱정 근심하는 자기 생각 뿐인 거예요,
그걸 부처님이 깨달은 거에요,
심해무법이에요_ 마음밖에 법이 없어요.
저 컴컴한데 저기가 귀신이 있을 거다. 귀신 없어요.
없는 거 어떻게 아냐? 불 딱 켜보면 없어요.
불켜기 전에 귀신 있을 거다 이러면 몸이 오그라들고 무서워요.
그러면 귀신이 있는게 아니라 “귀신이 있을 거다”하는 생각뿐인 거예요, 생각이 있을 뿐이에요.
아, 이거이거, 인생이 해야할 일은 이거에요.
자기 생각이 자기를 괴롭히고
자기 생각의 감옥에서 지금 살고 있어요.
나쁜 게 아닌데 내가 나쁘다고 하는 생각이 있을 뿐이에요.
이게 일체가 유식, 오직 의식이다 이거죠.
이게 끊어진게 깨달음이에요.
이행이 영절하고 그다음에
이행영절을 60화엄에서는 무이념이라고 그랬어요.
선각지 무이념, 두 가지 생각이 없다.
(이행영절: 두 가지 행위가 영원히 끊어졌다,
무이념: 두 가지 생각이 없다)
그냥 정각지혜가 있을 뿐이에요, 두 가지 생각이 다 없어져요.
좋다 나쁘다, 있다 없다 이런거 다 없어지는 거예요.
요 두가지 생각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두 가지 생각 때문에.
아프면 그냥 아프다, 요걸로 끝나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아픈게 0.1%밖에 안된다면
“이러다 내가 죽는게 아닌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하지? 억울해서 어찌 죽나?
자기 생각이 만들어낸 괴로움이 이게 그냥 전부 다 인 거예요.
아프면 어떠냐고, 좋지.
그런데 무서워서 괴롭죠, 아파서 괴로운 게 아니에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뭐라고 했다, 그러면 그 말이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면 아들놈이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괘씸한 게 더 괴로운 거죠. 말이 괴로운 거 아니에요.
그럼 손자가 그런 말을 하면 안 괴롭거든.
그런데 말은 손자가 한 말이나 아들이 한 말이나 같은데
그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버지가 느낀단 말이오.
그래서 아들한테는 기대를 많이 하니까 조금만 무슨 소리해도 막 괴로워요.
그래서 말에 괴로움이 있는게 아니라 내 생각에 괴로움이 있다.
아하, 이거 이런 말 함부로 해주는 게 아니에요, 진짜.
ㅎㅎ 절대 이런 말 해주는 게 아니에요.
이걸 몰라서 괴로워하는 거에요.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음을 무서워하는 생각이 무섭다 /이거죠.
죽음이 뭔지 모르고 죽는 거 무서워해요.
또 사는게 뭔지도 모르고 사는 걸 집착해요.
/삶이 집착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내 생각이 삶에 매달리는 거예요./
이런 2가지 생각이 쏵 없어지는 이게 정각이다.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뭐냐?
하나하나 법문하러 온다고 대조해서 이걸 해가지고 왔는데
달무상법 주어불주(형상이 없는 법을 통달하면 부처님이 머문 데에 머물게 된다)
달무상법이라, 무상법을 통달한다.
이 세상에 형상이 있고, 본성이 있는데
형상으로 보면 형상은 모양은 다 다르지만, 그 본성으로 보면 다른 게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형상으로 볼 때는 이슬이 다르고 얼음이 다르고 구름이 다르고 다르지만
그걸 본성으로 보면 다 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형상으로 보면 무슨 사는 모양이 있고, 죽는 모양이 있고 이렇게 되어서 전부다 차별이란 말이죠.
이걸 관상개망이라, 상을 보면 다 허망한 거다.
(관상개망: 형상을 보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중생이 형상밖에 볼 줄 몰라요.
관성개진이라, 그 본성을 보면 다 참된 것이다.
(관성개진: 본성을 보면 다 참된 것이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상에서 본성을 보는 거다.
물이나 비나 이런데 쫓아다니던 사람이
물과 비가 다르지 않다는 본성을 봐버리면
그게 무상법을 통달한다, 형상 없는 본성에 도달한다, 이 말이거든요.
기침하는 거나 법문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ㅎㅎ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법문하다 기침하니까 미안하거든. 그래서 하는 거에요.
이런게 전부다 생각이에요.
누가 미안하다고 했나? 내 스스로 미안하고 스스로 또 해명하고
이게 의식이에요, 이게.
그런데 이걸 본성을 알면 여기에 아무 장애가 없다, 무상법을 통달한다 이거죠.
(달무상법: 형상이 없는 법을 통달하다,
요달성법: 법의 본성을 단 안다.)
60화엄에서는 요달법성이라고 그랬어요. 법성을 요달한다고 안다 이 말이죠.
법에 법상이 있고 법성이 있어요. 법상은 차별세계인데 전부 다 달라요.
법성은 평등세계에요.
법성을 알면 해탈이에요. 근심 걱정 없어요.
우리가 근심 걱정하는 것은 본성을 모르고 형상에 매이니까 그렇다.
부처님이 이거 안 거예요.
물과 얼음이 다르지 않다, 바다와 파도가 다르지 않다, 이게 요달법성이거든요. 법성을 요달한 거다, 이걸 정각세계라 그래요.
(달무상법 주어불주_ 형상이 없는 법을 통달하면 부처님이 머문 데에 머물게 된다)
주어불주_ 부처님의 머무름에 머무른다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바라보는 마음은 같죠.
그런 것처럼 불주가 있어요, 부처님은 어디에 머무는가?
참새가 머무는 데는 어디냐? 사람이 머무는 데는 어디냐?
참새는 방앗간에 머물죠.
사람은 이익에 머물러, ”나한테 뭐가 이익할까?“
딱 한 가지에요, 주생이 머무는 건 이익, 이익 쫓아서 거기에 집착하거든요.
그러면 부처님이 머무는데는 어디인가? 이걸 불주라고 그래요.
정각을 이룬 후에는 부처님이 머무는데 머문다, 이거죠.
그러면 부처님이 머무는 데가 뭐냐?
불주를 지도론이라는 논이 있는데 거기서 나눠요.
성인 성, 머물 주, 성주. 부처 불, 머물 주, 불주 이렇게 나누거든요.
다 불주인데 구분을 해요.
성주불주는 3가지 삼매에 항상 머물러요.
(3가지 삼매: 공삼매_부증불감 불생불멸에 머무는 것
공삼매, 항상 이 우주 만법이 부증불감 불생불멸 여기에 머무는 거예요.
공이라는 것은 부증불감 불생불멸이거든요. 이게 공삼매에 머물러요.
무상삼매, 형상이 없어요. 다 본성은 평등해요. 무상삼매에 머물고
무원삼매, 원하는 게 없어요. 공에 머물고 무상에 머무니까 원할 게 없는 거예요.
원하는 건 전부 분별망상 때문에 원을 하는 거예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근심걱정하고 맨날 아쉬운 소리하고 기고 떨고 하는 걸 요즘 말로 쪽팔린다 그러는데
왜, 쪽팔리겠어요?
쪽팔리지 않으면 중생이 아니에요.
그 쪽팔리는 이유가 뭐겠어요?
마음 속에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원한 거 얻으려고 쪽팔리는 거예요.
원하는 거 없는 사람은 왕이요.
원하는 걸 가지고 사는 사람은 종이요.
종으로 살면 항상 쪽팔리죠. 항상 뭔가 얻어야 하니까.
왕은 얻을 게 없잖아요.
그걸 무원삼매라고 그래요. 무원, 공삼매, 무상삼매, 원하는 것이 업는 무원삼매
이게 성주인데, 불주는 성주불주가 하나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다 원하는 것이 없는데 원하는 것이 딱 하나 있어요.
도중생원, 중생제도하고 잘하는 원은 부처님이 딱 가지고 있어요.
중생제도 하려면 부처님도 쪽팔리는 거예요.
욕도창생불역수라, 옛날 말에 그런 말이 있어요.
창생을 제도하려면 부처님도 근심하더라.
(욕도창생 불역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면 부처님도 근심한다)
근심은 근심인데 이건 부처님 근심이에요,
중생제도하는 근심이지 자기를 위해서 구하는 근심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 불주 불주가 있어요, 성주불주가 있는데
부처님으로서 머무는 것은 같은데 부처님 머묾으로 불주불주이고
성인으로 머무는 것은 성주불주다 이 말이죠.
요거는 항상 나와요.
심력사무애 십팔불공법, 요게 있어요.
요게 전부 중생제도 하는 거예요.
부처님만이 중생제도 하는 10가지 힘이 있어요.
요걸 십력이라 그래요.
(십력,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10가지 지혜의 능력)
또 부처님만이 중생제도하는 4가지 두려움이 없는 게 있어요.
이걸 사무외라고 그래요.
(사무외: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4가지)
또 중생제도하는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18가지 특별한 게 있어요.
이걸 십팔불공법이라고 그래요, 이게 불주에요.
(십팔불공법: 부처님만이 갖고 잇는 18가지 특징)
항상 여기에 머무는 거예요.
늘 평소에는 공에 머물고, 무상에 머물고, 무언에 머물고
늘 중생 제도하는 10가지 힘에 머물고, 중생제도하는 4가지 두려움 없는데 머물고
중생 제도하는 18가지 특별한데 머문다 이거에요. 이게 주어불주에요.
이게 정각세계에요.
중생이 머무는 거 하고 틀리죠, 확실히.
여기서 지정각 세계를 설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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