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213회 고등학생 아이가 공부를 안해요

Buddhastudy 2012. 12. 25. 05:34

출처 YouTube

 

그러면 애기가 어릴 때는 이렇게 하면 아이한테 도움이 되겠다.’ 라고 좋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잖아요. 어쨌든 그때는 잘한다고, 미워하든 뭐하든 잘한다고 한 거 아니오. 지금 결과로 보니까 잘 못한 거 아니오. 그게 이게 쥐가 쥐약을 먹은 거 하고 같은 거에요. 그때는 살려고 먹었는데 지금 보니까 결과가 나빠져서 배가 아프고 데굴데굴 구른단 말이오. 그러면 여기서 지금 만약에 이게 또 순조롭게 넘어가면 어떨까? 순조롭게 넘어가면 내가 또 이런 미친 짓을 또 하겠죠. 그러니까 과보를 받으셔야 되요.

 

이 잘못에 대한 과보를 진짜 뼈저리게 받아야 앞으로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안 하겠지. 그러니까 남은 일은 뼈저리게 받는 일밖에 없어요. ‘뼈저리게 받겠다.’ 이렇게 딱 마음을 먹어버리면 큰 문제가 안 되지. 지금 또 어떻게 하느냐?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느냐. 또 더 죽이는 일을 하려고 머리를 쓰거든요. 나는 이제 어떻게 해도 아이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니까 놔둬야지 뭐. 기도라는 게 그냥 뭐 기도하면 안 되고 뼈저리게 반성하는 기도를.

 

그러니까 우선 시부모에 대한 참회기도를 해야 되고, 남편에 대해서 참회기도를 해야 되고, 아이에 대해서는 항상 아이가 어떤 행동하고 어떤 일을 하든 아이고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한다.” 그러니까 애를 두둔하라고. 공부 안 하는 걸 두둔하라는 얘기는 아니오. 공부 안 하는 게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두둔할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애가 성적이 떨어지는 게 또 나쁜 짓이에요? 아까 다섯 가지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안 들어가지. 성적이 떨어지면 뭐 남한테 피해 주는 건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한테 이익 주잖아요. 으음.

 

다른 아이에게 이익을 주고, 다른 부모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까? 어릴 때 우리 아이 공부 잘했는데 계속 공부 잘하면 누구 집 애는 어릴 때도 공부 못하고 커서도 공부 못한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데.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공부 잘했는데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성적이 떨어지면 그럼 누군가 누구 집 애는 초등학교에는 성적이 안 좋았는데 고등학교에 성적이 올라간 애가 있겠죠.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거는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여러분이 그런 거 갖고 걱정하고 그런 거 갖고 애를 나무라니까 삶의 방향이 안 잡히는 거요.

 

그러니까 다섯 가지 계율은 오히려 우리 애라고 봐주고, 이 쓸데없는 거 갖고는 애를 야단치고 이러니까 가치가 딱 안 잡히죠. 이 다섯 가지는 엄격하게 다스려야 되고, 엄격하게. 두 번 그런 행동 못하도록, 그러니까 애가 성추행했다. 그러면 경찰에 가서 사정해서 우리 애 좀 빼주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딱 데리고 가서 경찰에 고발해서 처벌을 시켜버려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게 사회를 위해 서에요? 내 애를 위해 서에요? 내 애를 위해서고 사회를 위해 서에요.

 

남의 애를 때렸다. 그러면 가가지고 그걸 무마를 해서 이러면 안 됩니다. 그건 오히려 처벌을 해야 됩니다. 법 위에 정한 한도 안에. 그런데 법 이상 처벌하며 안 돼요. 아무리 잘못해도 그 사람도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라고 해도 국민으로 보호받을 테두리 안에서는 보호를 받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 아이라고 그거를 예외를 만들면 아이가 나빠지는 거요. 그러니까 이거는 딱 엄격하게 해야 할 일이고. 그래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하는 걸 느끼게 인과법을 체험하도록 해줘야 돼요.

 

그런데 공부 안 하는 거는 그거는 대화할 일이지 야단칠 일은 아니다. 누구한테도 피해를 안 주기 때문에. 여기서 딱 피해를 주는 건 한 사람이에요. 엄마. 기분 나빠요. 내 자식이 공부 못 하는 거 그거 기분 나빠. 그러니까 자기 기분이지 이건 아무한테도 피해를 안 줘요. 대화가 필요해. 대화하면서 대학가고 싶니?” “.” “그럼 공부 잘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뇌나?” 하기 싫어도 해야 되겠죠. 이렇게 원리가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지.” “.” “나도 너 만할 때 공부하기 싫었다.” 맞잖아. 그때 공부하고 싶었던 사람 있었으면 손들어봐요. “아이고 엄마도 그랬나?” “그렇다.” “그런데 왜 나보곤 하라 그러느냐?” 그러면 어떻게 할래? 니 앞으로. 대학 갈래?” “.” “난 대학 안 갈래요.” 그럴 때는 괜찮아.” 이렇게 하고. 그러니까 그래도 가고 싶다.” 그러면, “하기 싫어도 해야 된다.”는 원리죠. 그래서 네가 책임을 지도록. 이런 건 대화가 필요한 거지 윽박지를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 왔으면 이 공부라는 게 자발성이 기초가 되죠.

 

놀아도 자기 책임, 공부를 해도 자기 책임인데, 어릴 때 강요해서 생겼으니까 이제는 반발이 생겼고, 무기력해졌어. 하나는 반발, 반발하면 밖에 나가서 엉뚱짓합니다. 아시겠어요? ? 보복해야 되지 않습니까? 보복하는 방법이 뭐요? 집 나간다. 자기를 학대하는 거요. 그냥 사고를 쳐버린다. 술을 먹어버린다. 그러면 그런 거 보면 엄마 가슴 아플까? 안 아플까? 아프겠죠. 여러분들 대게 부부간에 갈등이 심하고 한 대 콱 때려 죽어버리고 싶은데 내 힘은 안 되고, 그럴 때 반대로 오는 게 뭐요? ‘내가 팍 죽어버릴까.’ 이런 생각 안 들어봤어요?

 

내가 죽어버리면 저 인간이 얼마나 후회하고 가슴 아플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자기 학대에요. 자기를 학대해서 부모를 이제 가슴 아프게 하려고 하는 게 이게 인간의 욕구의 자연스러움이오. 불효도 아니고. 저항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는 뭐한다? 34살 때는 저항하는 방식이 밥 안 먹는다. 그러면 엄마 속 타죠. 그럼 밥그릇 들고 따라다니니까 애가 이기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춘기가 돼서 중학생이면 나 밥 안 먹어.” 이런다고 엄마가 거기 놀라요? 안 놀라요? 안 놀래.

 

그러니까 그때는 집 나간다.” 이러는 거요. 그럼 막 찾으러 다니고 난리요. 한번 나가버리면.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뭐요? “집 나간다.” 이래 봐야 별로 신경도 안 써요. 그러니까 마지막 수단, 자식이 부모에게 쓰는 최후의 결투, 뭐요? “죽어버리겠다.” 이거요. 그러면 부모가 이긴 사람 있을까? 없을까? 없어요. 그러니까 부모는 자식하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백전백패하기 때문에. 백전백패요. 못 이겨요. 이 칼을 빼들면. 자기학대의 칼을 딱 빼들면.

 

그런데 나 같은 사람한테 오면 어떠냐? 이런 게 안 통해요. “밥 안 먹어.” 이러면 밥그릇 뺏어버리고, 달라고 애걸복걸할 때까지 안주고 집 나간다 하면 문 잠가 버리고 들어오겠다 해도 안 열어주고.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대들까? 안 대들까? 안 대들지. ? 여지가 없단 말이오. 보니까. 저 여지가 없어. 그런데 엄마한테는 엄마 속에서 태어나서 엄마의 약점을 탁. 이거는 머리를 굴려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이게 완전히 체득이 돼 있어요. 약점이 뭔지가. 그래서 애하고는 싸울 필요가 없다. 진다. 이 말이오. 그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죽일 각오를 하면 이깁니다. 제 말 이해하셨어요? 너무 심하나? “그래 니같은 건 죽어야 된다.” 이런 정도의 각오가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성질이 나면 그런 각오가 생깁니다. 그런데 진짜 죽어버리면 후회합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성질이 아니고 정말 너같이 그렇게 살아서는 너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하등 도움이 안 되겠다. 일찍 죽는 게 니 한테 좋다. 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중에 어느 집 아들 딸 아닌 사람 있어요? 없어요? 없어.

 

그러니까 이런 정도가 되면 아이가 저건 정말 안 되겠다. 적건 죽는 거보다 네 인생의 고통이다. 이렇게 하면 고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그래도 내 아들은 살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안 고쳐지는 거요. 내가 이 말은 고치라고 이런 얘기 하는 거요? 고칠 생각하지 말라는 거요? 하지 말라는 거요. 안 고쳐지기 때문에. 어차피. 대학교수 뭐 아들이라 해도 교수님 말 안 듣고 학교 선생 아들이라도 말 안 듣습니다. 아시겠어요? 열만 더 받지.

 

천하 애들이 다 내 말 듣는데요 인간만 내 말 안 들으니까. 그건 어차피 그래. 원리가 그렇다. 그러니까 이제 그런 원리를 알고 그래서 이 대화가 필요한 거요. 으음. 그런데 이분은 이미 지은 죄가 있는데 아무 벌도 안 받고 이 문제가 해결된다. 스님한테 물어서 해결했다. 그러면 이 버릇이 또 나옵니다. 그래서 혹독하게 벌을 좀 받아야 되요. 그러니까 그걸 각오를 하셔라. 애가 어떻게 하든 다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된다. 그래야 어떤 변화의 실마리가 보일 거다.

 

그러니까 여기서 또 잔머리 굴려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또 어떻게 도움이 안 되겠나. 이런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일어나는 일은 다 받겠다. 네가 학교를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사고를 쳐도 좋고 네가 한 건 다 받겠다. 그러고 앞으로 너보고 이래가 저래라고는 말 안 하겠다. 내 말 안 들어서 말 안 하는 게 아니고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몰라서 그래. 도무지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애가 엄마한테 물어.

 

엄마 나 학교 갈까? 말까?” “아이고, 난 지금까지 내가 너보다 많이 아는 줄 알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내가 잘못했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팽개치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물으면 이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내 의견은 가는 게 좋은 거 같다. 이렇게. 내 의견은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이렇게 드는데, 나도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 ? 부처님이 출가할 때 부모가 반대했어요? 찬성했어요? 반대했지. 부모 말 들었으면 부처가 됐어요? 못됐어요? 못됐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호히로부미 저격하러 갈 때, 독립운동하러 갈 때, 부모가 알았으면 찬성했을까요? 반대했겠어요? 반대했겠지. 이 세상에 성인치고 부모 말 들은 사람 거의 없습니다. 이거 앓으셔야 돼. 부모라는 것은 오직 안전만을 생각합니다. 으음. 부모의 성질이 그래요. 그래서 어릴 때 부모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커서 부모는 성장을 장애 하는 사람이오. 최고의 장애가 부모입니다. 저기 딴 사람이 아니에요. 요즘 애들 지난번에도 동국대가서 강연하는데 부모 때문에 죽겠다는 애들이 7명입디다 15명 질문하는 중에.

 

얼마나 부모가 자식을 지금 괴롭히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부모 얘기 들으면 이렇게 또 자식 때문에 다 죽겠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서로가 죽이고 있어요. 그래서 이걸 갖고 머리 굴리다 보니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원인을 찾은 게 뭐요? ~ 전생에 원수가 부모자식이 된다더라. 그래서 이생에서 보복한다더라.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요. 그건 아니에요. 이생이 이렇다 보니 전생을 그렇게 갖다 붙인 거요.

 

그래서 세 살까지는 무조건 자식을 돌봐라. 직장이고 뭐고 다 버리고. 초등학교까지는 모범이 되라. 그러니까 이렇게 하라 하지 말고 어떻게 해라? 열심히 아이가 공부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늘 공부하고 있어라. 검소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늘 검소하게 살아라. 말 잘 듣기를 원하면 내가 늘 시어머니한테 남편한테 말을 잘 들어라. 항상 , ,” 비단 배같이 하면 , ,” 이렇게 돼요. 왜냐하면, 따라 배우기 물들기 식이니까. 사춘기 때는 제멋대로 하고 싶은 반항이 일어날 시기니까 지켜봐라.

 

내버려두면 안 되고 큰 틀에 다섯 가지 울타리를 쳐놓고 나머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도록. 떨어졌다가 올랐다가 연애했다가 실패했다가. 이렇게 하도록 놔둬라. 그래서 자기가 자기 눈으로 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를 엄마 눈치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 이건 해야 되겠다. 이건 해야 되겠다. 이거는 어쨌다.” 이런 결정이 나도록 자립심을 키우는 시기, 20살이 넘으면 어떤 선택을 하든 내버려 둬라. 정을 끊어라. 한 독립된 인간, 내 아들이란, 나를 떼라. 한 독립된 사람으로 봐라.

 

그러니까 첫째 과보를 받고, 고치려고 하지 마라. “잘 될 거다. 스님 법문 듣고 기도하면 잘 될 거다.” 이런 요행 바라지 말고, 어떤 거든 내가 받아들이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딱 결심이 서야 되요. 그래야 어떤 짓을 해도 누가 편하다? 내가 편하다. 그거 다 수용해 낼, 포용력이 생겨, 그럼 놀아봤자 내 이 큰 틀 안에서 놀기 때문에 큰 사고 안나요. 그리고 두 번째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내가 지난번에 잘못한 거에 대한 깊은 뉘우침이 있어야 된다. 정말 깊은 뉘우침이 있어야 된다. 적당하게 머리 굴리면 안 된다. 하하하.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해하는 수준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얘기 안 해도 돼요. 간단하게 설명해도 남은 이해가 되는데, 본인, 질문자를 위해서 제가 얘기하지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얘기하는 건 아니거든요. 질문자는 이게 굉장히 깊이 각성이 돼야 변화가 옵니다. 안 그러면 조금만 좋아지면 또 기대로 갑니다. 조금만 좋아지면, 앞으로 좋아지면 진짜 무릎 꿇고 기도해야 되고 그 뒤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요행을 바라지 말고 계속 참회해야 새로운 삶이 열린다. 이래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