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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선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가 불자적인 태도가 아닌 거 같은데. 불자가 되기가 좀 글렀어. 어?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깨어있어야 하고 이 순간에 행복해야 돼. 그런데 지금 내가 늙어가지고 나도 스님이 돼야 되겠다. 그런 생각하는 거는 지금 지금에 안 깨어있고, 미래를 그리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건 이미 지금을 놓치고 있지만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다. 이래 볼 수가 있고.
마치 결혼해서 자식들 키우고 사는 게 지금 보면 조금 지쳐보이 거든요.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지금 자기 생활이 힘들면 그건 이미 수행을 놓치고 있는 거요. 그래서 출가하는 것을 이 힘듦에서 도피하려고 하는 어떤 방식으로 찾는다면 그것도 불교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불자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건 굉장히 막연한 얘기에요. 자기 얘기를 하세요. 왜 자기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야 되는지 이유도 없이 그냥 난 부처님 가르침대로 난 살겠습니다. 맹목적이오. 자기 얘기. 자기 지금 뭐가 문제요? 자기가 지금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내가 예를 위해서 마음의 평화를 기도를 위해서 기도 하려고 그럽니다. 기도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물어. 왜 하려고 하는데?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요. 그럼 지금 마음이 불편하다는 얘기니? 예. 불편한 게 뭔지. 얘기를 해야 되요. 왜 불자가 되려고 하는지. 왜 기도를 하는지. 그럼 불자라고 얘기 안 해버리면 아무 문제도 안 되잖아요. 그럼 앞으로 쓸 때 불자라고 안 써버리면 끝나잖아요. 그거 한 줄 썼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현명하지 못한 태도지. 거기만 안 써버리면 끝나지.
무슨 답을 찾는데? 아니 지금 자기가 뭐가 문젠데 올바르게 간다는 게 있잖아. 자기가 지금 올바르게 가고 있으면 또 여기다 어떻게 올바르게 가. 자기 지금 뭘 잘못 가는지를 알아야 올바르게 가는걸. 내가 이렇게 잘못 가고 있는데 올바르게 가려면 어떻게 갑니까? 하면 몰라도 그냥 막연히 올바르게 가려면 어떻게 갑니까? 굉장히 추상적인 질문이오. 그런 걸 망상이라고 그래. 망상 피우고 있는 거요.
부처님 법 배워서 뭐 하려고? 그러니까 지금 뭐가 불편하냐고 묻잖아. 편하자고 한다는 건 불편하니까 편하자고 하는 거 아니오. 지금 자기 불편한 게 뭐냐는 거요? 그러니까 돌파구를 찾고 싶다는 거는 지금 인생의 뭐가 답답한 게 있다는 얘기 아니오. 그 답답함이 뭐가 답답하냐 이 말이오. 누구한테 주로? 누구 만날 때 그렇게 심해요? 마누라하고 만났을 때. 그러니까 자신의 문제인데 그런 답답함이 어떤 경계에 부딪혔을 때 주로 일어나느냐? 마누라하고 대화할 때 일어나느냐? 애들이 말 안 들을 때 일어나느냐? 회사 갔을 때 일어나느냐? 혼자 있을 때 일어나느냐? 주로 어떨 때 답답함이 일어나요?
예. 자기가 어떻게 답답한데? 아니 자기가 공부한다 해도 그건 답변할 수가 없어요. 왜 내 인생도 지금 몰라가서 답답하면서 남의 인생에 그걸 답변해줄 생각을 해요? 그렇게 하니까 답답하지. 아니 그런데 왜 지인 생도 모르면 남의 인생에. 지금 구체적으로 나왔는데. 남이 나한테 뭔가 이거 똑같잖아요. 언니가 엄마 때문에 고민을 얘기하면 그건 언니의 고민 아닙니까? 그죠? 그럼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내 고민이 되면 언니 고민에 내가 말려들어 간 거요. 경계에 끌린거란 말이오.
언니의 고민으로 들어주면 되지. 그냥. 왜 내가 해결해 줘야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거야. 왜 그래 주제넘게 자꾸 간섭하느냐? 남의 인생에. 그 사람의 고민이 “아, 저 사람은 저런 고민이 있구나.” 이렇게 들어주면 되지. 내가 아까 얘기할 때 해결해줍디까? 그냥 들어주고 되물어주고. 자기가 알았다잖아요. 선지식은 지천으로 깔렸어. 내가 눈감고 있으니 안보이지. 예. 그런데 눈뜨는 거는 눈을 떠야 되요? 산에 가야 되요? 어~ 그럼 눈을 떠야 되요? 머리를 깎아야 되요? 하하하.
그럼 자기가 지금 눈부터 먼저 떠야지. 왜 산에 갈 생각부터 먼저하고 머리를 깎을 생각부터 먼저 해요? 지금 머리를 안 깎아 눈이 지금 안 뜨여진다. 산에 안 가서 눈이 안 뜨여진다. 지금 이런 얘기하고 있단 말이오. 지금 눈뜨는 거는 머리 깎는 거 하고 산에 가는 거 하고 아무 관계가 없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기서 재가수행적 관점에서 재가출가를 논할 수가 없어요. 제도적인 종교에 있어서는 사제와 신자라는 계급 신분이 다르지마는, 수행적 관점에서는 다 지금 숨 들어가고 숨 나오고 있고.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재가라고 이름 붙인 수행법이 따로 없어요.
그냥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하면 이걸 해결하는 게 수행이지. 그러니까 수행의 관점에서는 종교적인 어떤 제도종교에서는 가톨릭 같으면 사제가 있고 신자가 있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죠? 불교에서는 스님이 있고 신자가 있고 또 기도를 할 때는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고 복을 비는 사람이 있고 이러지 않습니까? 수행적 관점에서는 그런 거 없어요. 남녀도 없고 승속도 없고 계급도 없고, 이거는 뭐 서울사람 지방사람도 없고. 그래서 육조 혜능대사가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갔을 때 홍인대사가 니 어디서 왔냐? 영남에서요. 영남은 촌이다. 이 말이오.
해남에서 왔다 이러니까 이 순 촌놈이구나. 촌놈이 뭘 깨달아? 이랬단 말이오. 그랬더니 떡 하는 말이 사람에게는 서울사람 촌사람이 있지마는 불성에 무슨 서울사람 촌사람이 있습니까? 이렇게 대답했단 말이오. 알았어요? 이 껍데기는 승속 이 있지마는 마음에 무슨 승속이 있겠냐? 이렇게 딱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야 불교지. 재가수행법 따로 없습니까? 이런 얘기 자체는 이미 본질에서 벗어나 버렸다. 이미 상을 갖고 논한다. 이 얘기요.
상을 버리는 게 불법인데 상을 가지고 논하는데 아무런 답이 안 나오지. 왜? 망상이니까. 그래서 바로 본질로 들어가자. 뭐가 문제냐? 네 소리 해라. 부처님을 위해서 그런 허튼소리 하지 마라. 네 소리. 네가 지금 뭐가 문제냐? 뭐가 궁금하냐? 막연하잖아. 불자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막연하게 얘기하자면 오계 지키고 살아라. 답이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불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라. 그런다고 인생이 바뀌나?
여긴 지금 얘기 딱하니까 고민이 벌써 집에 내려가면 언니 만날 때 태도가 달라지고, 엄마 만날 때 태도가 달라지잖아. 그런데 뭐 도식적인 얘기,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잘 지켜라.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라. 그렇게 얘기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다고 자기가 뭐가 다라져? 인생에? 늘 그 상태에 있지. 불자가 기본적으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게 불자의 태도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오늘은 아까 어떻게 했다? 종교도 초월해서 즉문즉설 하자고 했기 때문에 이런 얘기 하는 거요. 내가 교리 강좌 하는 시간이라면 뭐라고 대답하고 그럴까? 그럴 때. 딱 대답이 정해져 있어. 교리문답 100선에 있는 정답 있잖아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라. 이러면 돼요. 그러니까 오늘 질문에서 핵심은 내가 막연히 살지 말고 나를 조금 더 살펴라. 그래서 진짜 내가 답답하는 게 뭔지를 내 문제를 발견하고 그걸 갖고 나한테 내질러라. 그러면 한 일 점 돌파를 할 수가 있다.
선문답이 이래요. 조그마한 사미가 와가지고 사조 도심대사가 삼조 승천대사를 찾아와서 사미. 어린 스님이었어요. 딱 와서 큰 스님한테 저를 해탈하게 해주십시오. 나를 자유케 해 달라 이 말이오. 얼마나 당돌합니까. 큰 스님이 이렇게 보더니 “사미야.” “예.” “누가 널 잡고 있니?” 이랬어요. “아뇨?” 그러니까. “내 이미 너를 해탈케 했노라.” 으음. 달마대사가 중국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불교 아닌 것으로 불교를 삼고 있단 말이오. 사람들이.
달마대사가 중국에 턱~ 오니까 그 당시에 양나라라고 하는 나라인데 임금이 무제였어요. 양무제. 이 분이 불교를 엄청나게 옹호했어. 그래서 절을 수백 개를 짓고 탑을 수백 개를 세우고 경전을 번역하고 또 인쇄해서 유포하고 스님들을 수천 명 승려학교를 만들고 양성을 하고 교육을 시키고 이랬어요. 그래서 당시에 스님들은 이 양무재를 전륜성왕이다. 호법왕이다. 이렇게 칭송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불교를 위해서 굉장한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도에서 도사가 한 분 왔다. 도인이 한 분 왔다 하니까 당연히 궁중으로 초빙을 한 거요. 그러고 식사대접을 하고 나서 물었어요. 지금 이 양나라에 불교 상황이 어떤지 제가 절을 이렇게 이렇게 몇백 개 짓고 탑도 세우고 경전도 번역하고 스님들도 교육시키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이 정도면 공덕이 얼마만 합니까? 이렇게 물었어. 그러니까 달마대사가 딱 한마디로 “공덕이랄 게 없소.” 이랬어. “무”이랬어. 그러면 이 임금이 듣기 좋을까? 듣기 싫을까? 듣기 싫겠지. 화가 확 올라오지마는 그러나 그래도 도인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되물었어.
속마음이 이런 거요. ‘도대체 니가 누군데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느냐?’ 이 말이지. 그래서 “니 누구냐?” “니가 누고?” 이랬어. 그랬더니 달마대사가 “나도 모르오.” 이랬어. 그러니까 임금이 참다가 폭발을 했어. 칼을 빼서 죽여버리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불심이 그래. 절을 몇백 개나 지은 왕이 지 맘에 안 드니까 칼을 빼서 고승을 죽여버리려는 게 그 사람의 불심이오. 그러니까 옆에 스님들이 말렸어. 그럼 왕의 이미지 나빠진다고. 그러니까 달마대사가 볼 때는 이건 불교요? 불교 아니오? 이건 불교가 아니오.
그래서 양자강을 건너가 즉 양나라를 떠나버렸어. 그래서 소림사에 가서 침묵했단 말이오. 모든 사람이 찾아와서 묻는 게 달마권법 가르쳐달라. 산스크리트어 가르쳐달라. 경전 번역해 달라. 전부 다 얻으러 왔단 말이오. 뭐 하나 얻으려고. 그런데 이건 줄래야 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 법은. 그러니까 얻으러 왔는데 줄 게 없으니까 침묵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은 얻으러 왔으니까 못 얻으니까 갈 거 아니오.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달 기다렸다 가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뭐 있지 않겠느냐고 빙빙 돌다 가는 사람도 있고. 9년을 침묵하니까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다 떨어졌어. 그 가운에 한 사람이 안가고 늘 같이 사는 거요. 일하면 같이 일하고,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고, 밥 먹으면 같이 밥 먹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같이 있는 거요. 그러니까 면벽 9년이다. 이 말은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침묵했다. 그럼 떨거지가 다 떨어지죠. 그런데 한 사람이 안 떨어지고 있으니까 물어봤어. 어느 날. “너는 왜 왔니?” 9년이나 있다가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안심인명의 도를 얻으러 왔습니다.” 마음 편안해지는 도를 얻으러 왔습니다. 이래. 그래. 그 자리에서 바로 딱 되물었어. “네 마음이 어떤데?” “예, 제 마음은 심히 불안합니다.” “그래? 불안한 걸 내놔라. 내 편안하게 해줄게.” 이러는 거요. 이게 어디요? 웬 떡이오? 마음이 불안하다니까. 그것만 내놓으면 뭐 해준다고? 즉시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거요. 그래서 살핀 거요. 내놓으려면 빨리 가서 금강경 뒤져야 됩니까? 인도에 가서 찾아와서 됩니까? 탑 속에 가야 됩니까? 불안한 마음 내놓으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자기를 봐야 되겠죠.
한참 후에 “내놓을래야 내 놓을 게 없습니다.” 그랬어. 그러니까 대사가 하시는 말씀이 “내 이미 너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그럼 여기서 스승이 한 역할이 뭐요?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준 거에요. 그럴 때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하는 것처럼 상을 상인 줄 보다가 상 아닌 줄을 보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라는 거요. 그럼 내가 너 불안한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했도다 해서 편안해진 거요? 이미 내 놔라 할 때 살필 때 자기 스스로 이미 편안해 졌어요? 눈이 안으로 향했을 때 이미. 으음. 이게 불교요. 그런데 여기 무슨 승속 따지고 남자 여자 따지고 불자라고 서니 안 서니 따지고 이런 얘기가 붙을 때가 어디 있어요? 하하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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