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수행하는 동안에 멍한 상태로 정진을 하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절할 때 그냥 멍한 상태로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예를 들면 기도문이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라는 기도문이라고 하면 또는 ‘예하고 숙이겠습니다.’ 라는 기도문이라고 하면 절을 하면서 ‘예 하고 숙이겠습니다.’ ‘예 하고 숙이겠습니다.’ 이럴 때 어제 하루의 생활 중에 ‘예’하고 숙이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거야. 아~ 내가 그때 ‘예’하고 숙이지 않았구나. 남편이 뭐라고 그럴 때, “아~ 예.” 이렇게 대답 안하고, “아니야.” 이렇게 내가 대답을 했구나. 또 내가 옳다는 거를 내가 세웠구나.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이 말이나, “예”하고 숙이겠습니다. 이 말이나 사실은 뜻이 같습니다. 남편이 부처님이라면 무조건 “예” 해야죠. 부처님한테 “부처님 그거 아니에요.” 이럴 수는 없잖아. 그죠? 부처님이 말씀을 하시면 “아~ 예.” “아~ 예. 그러겠습니다.” 이래 되잖아요.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이 말은 남편의 말에 대해서 내가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얘기요. 부처님 말씀을 내가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죠. 받아들였다고 해서 내가 부처님 말씀대로 다 행할 수는 있어요? 없어요? 없죠. 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부처님 죄송합니다.” 하고 참회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남편의 말씀에 내가 “예”하고 숙이든지, 남편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예”하고 받아들였다고 해서, 내가 그걸 100% 다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어쩌면 못하는 게 더 많아요. 그럼 못하는데 뭣 때문에 “예” 합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때는 할 마음을 냈기 때문에 “예” 하는 거요. 해보니까 안 된단 말이오. 그건 또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를 하면 된단 말이오. 이렇게 하루하루 해나가면 이제는 대화하는 중에 “여보 그거 아니야.” 이렇게 한 즉시 금방 “아~ 아니야.” “예 하겠습니다.” 이렇게 탁 돌아가 진단 말이오.
또 더하게 되면, 아니라는 말은 목구멍에 탁 나오다가 ‘오~ 내 기도문이 숙이는 거지.’ 이러면서 “아~ 예,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다. 그러면 순간순간 기도가 되는 거요. 이거를 우리가 하루는 넘기지 않는다는 거요. 하루는. 지금은 어떠냐? “아니야.” 이게 10년, 20년 30년 간단 말이오. “너 문제야.” 이게. 그러기 때문에 내 가슴이 답답한 거요. 그래서 지나간 거는 참회해서 뉘우치고, 지나간 그 습관 때문에 알아도 계속 순간적으로 “아니야.”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그런 사로잡힌 상태가 하루는 넘지 않도록 한다.
아침에 기도할 때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서 ‘아 그것도 내가 고집했구나.’ ‘아 그것도 내가 기도문을 놓쳤구나.’ 이렇게. 그러고 적는 거는 간단하단 말이오. ‘아 어제 제가 남편이 뭐라고 할 때 내가 “아니야,” 했는데, 기도를 하면서 어~ 내가 기도문을 놓쳤다는 거를 발견했다. 그 놓쳤다는 거를 발견하는 순간 답답한 마음이 시원해졌다.’ 요렇게 쓰면 된단 말이오. 그게 어떻게 매일 똑같을 수가 있어요. 난 매일 똑같다는 거는 이해가 안 돼요. 매일 똑같을 수 있는 거는 멍청할 때만 똑같을 수 있어요.
멍청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거는 어제도 멍청했고, 오늘도 멍청했고, 내일도 멍청하고. 그래서 똑같을 수는 있어요. 그러면 막~ 억지로 생각을 해내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절을 하면서 기도문을 딱~ 집중하다 보면 기도문과 연관되어져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단 말이오. 하나 떠오를 수도 있고, 다섯 가지 떠오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설령 안 떠오른다면 어떻게 쓴다? ‘오늘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요. 그럼 내일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어때요? ‘오늘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어제 거하고 오늘 거하고 똑같지 않으냐? 똑같든 안 똑같든 그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100일이 똑같다 해도 문제가 안 돼요. 어제 걸 보고 빼긴 게 아니고 오늘 기도를 하는 중에 내가 무념무상이었다. 아무런 번뇌가 없었다. 그러면 뭐 ‘아무런 번뇌가 없었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요.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고. 그러면 스님이 딱 읽어보면 ‘아 이보살 수행이 다 됐구나.’ 이렇게 될 수 있겠지. 그래서 멍청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이게 아니에요. 정말 자기가 정진하는 중에 아무런 번뇌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아무런 번뇌도 없었다. 그게 소감이잖아. 그렇게 쓰면 돼요.
그런데 그런 뭔가 깨우침이나 뉘우침이 있으면 ‘아~ 이런 깨우침이 있었다.’ 이렇게 쓰면 돼요. 의도적으로 쓰려고 용쓸 필요는 없어요.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이거는 자기가 지금 자기 상태가 점검이 안 된다는 얘기에요. 멍청하다는 얘기에요. 아니면 부처든지. 둘 중의 하나요. 아마 이분은 부처님이겠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