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08회 참선할 때, 눈은 뜨는 것인가 감는 것인가

Buddhastudy 2013. 5. 15. 22:07

출처 YouTube

 

예불을 하거나 경을 독송하라 할 때는 원래 눈을 안 감습니다. 눈을 뜨고 하고, 참선을 할 때는 우리나라 전통, 화두 참선에서는 눈을 감지 않고 눈을 약간 내리깝니다. 그러니까 눈을 약간, 이렇게 딱~ 허리를 똑바로 해서 눈을 약간 내리감으면, 희미하게 내리감으면 코끝이 어때요?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이렇게 딱~ 내리감고. 그러니까 눈을 딱~ 감으면 어떠냐? 졸음이 오고, 눈을 딱~ 뜨면 경계에 자꾸 팔리기 때문에 눈을 밑으로 딱~ 내리 깔아가지고 이렇게 화두를 두는 게 우리 전통 참선법이고.

 

남방불교 비파사나라는 말 많이 들어봤죠? 비파사나 수행에서는 눈을 감습니다. 눈을 실눈을 뜨거나 그러지도 않고 눈을 완전히 감아요. 눈을 딱~ 감습니다. 그래서 눈으로부터 오는 경계를 딱~ 제거시켜버려요. 그럼 우리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90%가 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그래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런 말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단 눈을 딱~ 차단시켜놓고 장소를 조용한 데로 간다는 말은 귀를 막는 거와 같은 얘기요.

 

눈은 자기가 알아서 감으면 되는데, 귀는 그냥 안 감기잖아. 그지? 그러니까 조용한 데로 찾아가. 조용한 데를 가서 눈을 감는다는 거는 대부분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어때요? 일단 차단을 시켜놓고 딱~ 앉아서 집중을 하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이 머리에서 일어나는 지나간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생각이 떠오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졸음이 쏟아지거나 이런 여러 몸의 증상이 나타날 때 비파사나에서는 그거를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졸리면 그 몸의 상태나 어떤 업식에서 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 졸린다. 번뇌가 일어나도 번뇌가 일어나면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다리에 통증이 생겨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통증이 생긴다. 이렇게 보는 거요. 그러면 다리에 통증이 생기면 다리를 펴야 되느냐? 그거는 욕구에 따라가는 거다.

 

그러면 이를 악다물고 참아야 되느냐? 그것은 마음을 억압하는 거다. 그러니까 따라가지도 말고 억압하지도 마라. 그럼 사람이 우린 미쳐 팔딱 뛰는 일이지. 그럼 어떡하란 얘기냐? 그럴 때 다만 통증을 느껴라. 이렇게 말하는 거요. 통증을 통증으로 느껴라. 그것을 좋다 싫다 하지 말고. 그것을 그것으로 봐라. 그것을 그것으로만 봐라. 그걸 좋으니 그걸 나쁘니 이렇게 욕구 분별심도 내지 말고 욕구를 일으키지 마라. 이 말이야. 그것을 그것으로 봐라. 그게 지금 안 되는 거요.

 

이치는 알겠는데 해보면 그것을 그것으로 봐지지가 않아. 통증이 생기면 싫어. 그러니까 다리를 펴든지, 아이고~ 난 죽었으면 죽었지. 성불 안 했으면 안 했지. 이러고는 못살겠다. 하고 일어나든지. 안 그러면 머리에 땀이 팍팍 빼도록 통증을 이를 악다물고 이빨이 부러지도록 참으면서 견뎌보던지. 길이 이게 두 가지란 말이오. 앞에게 쾌락, 뒤에게 고행이오. 부처님이 이 두 개를 버렸다. 그래서 통증을 통증으로만 본다. 이렇게 되면 자기 내부에서 연습이 잘~ 되면 남편이 술을 먹고 와도 그냥 길가다 술 먹는 사람처럼 그것을 뭐로 본다? 그것으로만 보는 거요.

 

12시에 오면 12시에 오는 거로 보지, 늦었다 빨랐다. 이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거요. 그냥 12시에 왔다. 12시에 오니까 니는 늦었다. 이런 생각을 안 일으켜. 12시에 왔다. 술을 먹고 왔다. 그냥 주정을 한다는 건 나쁘다 라는 말이 들어간 거다. 아시겠어요? 취해서 지금 잠꼬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봐지는 거요. 그럼 거기 내가 뭘 도와줄 게 있느냐? 있으면 도와주고. 도와줄 게 없으면 놔놓으면 되고.

 

이렇게 여기에 남의. 그런데 바깥을 사실은, 바깥을 그렇게 보려고 해도 봐지지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먼저 뭘 봐야 된다? 자기 이 느낌 필링을 먼저 알아차려야 되요. 이걸 먼저 조절하고 그다음 바깥에게 되요. 그런데 보통 수행을 자꾸 바깥에 걸 가지고 자꾸 하기 때문에 안 돼. 그래서 자기를 봐야 돼. 자기가 일어나는 거를 싫어하고 좋아하고 하는 일어나는 이걸 보고 싫어함도 좋아함도 일으키지 않는 쪽으로. 일으켰으면 아~ 하고 탁~ 놔 버리는 쪽으로.

 

이렇게 자꾸 공부를 해나가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도저히 이거를 어이 바꾸나. 하는 게 바꿔져. 그건 뭐냐 하면, 마약 중독자나 담배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나 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이걸 어떻게 끊노? 이건 도저히 못 끊는다. 그러지마는 안 피우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거 별거 아니지. 안 하면 되잖아. 그죠? 안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하면 되는데. 그런 거처럼 화 그거, 이걸 어떻게 참노? 이러지만 그거 안내면 돼.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이미 이게 습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담배를 피우면 몸이 나쁘면 안 피우면 되는데, 안 피울 수가 없다. 이래 주장하면 아이고~ 괜히 피우고 싶으니까. 그 소릴 하지. 안 피우면 되지 그거 뭣 때문에 그러냐? 이런 것처럼. 안 낼 수가 없다. 이러지마는, 그 습관이 들어서 그래.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그게 자꾸 반복이 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자꾸 이렇게 합리화시켜서 그래. 그래서 이걸 업이라고 하는 거요. 업이라고 한다.

 

지금 자꾸 짜증내고 자꾸 미워하면 습이 돼. 그래서 그 심보가 계속 담배가 더 많이 피우면 많이 피울수록 누적되듯이 그렇게 돼. 그리고 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게 어디로 내려간다? 자식한테로 이게 다~ 종자가 디스켓이 그냥 막~ 넘어가. 파일이 그냥 팍팍 넘어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