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이 편찮으시다니까 어려우시겠다 싶은데, 아무 연관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픈 거는 어머니가 아픈 거고, 내가 아픈 거는 내가 아픈 거고. 우연히 또 같이 그렇게 아프면 같이 아픈 거지. 그러면 병원에 가보면 환자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럼 이 환자들이 왜 이렇게 다 한곳에서 아플까? 이게 무슨 상호연관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거와 같다, 이 말이오.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마음 조금 잘 못썼다고, 그렇게 뭐 금방 누가 있어서 보복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누구 보복하나? 부처님이 보복할까? 그럼 부처님이 자비롭지 못한 분이죠.
우린 자꾸 뭐 조금 내가 잘못해서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아~ 이게 벌 받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보를 받는다, 이러죠. 그러면 내가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내가 몸이 아프다, 이게 과보가 아니고. 내가 몸을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니까, 내가 지금 마음이 편치가 못하죠. ‘아~ 이거 혹시 내가 마음을 잘 못써서 이런 일이 생기나?’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잖아. 그죠? 이 마음이 불편한 건, 내가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함이 생긴단 말이오.
내가 이렇게 마음을 잘 못쓰지 않았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도 내가 마음이 불편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죠. 그러니까 인연을 지은 과보라는 것은, 내가 너 한대 때렸으니까 너가 나를 한 대 때린다, 이런 논리가 아니고, 내가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생길 때 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 라는 과보가 생긴다는 거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안 살자고 했더니, 다음에 내가 누구하고 살면 그 사람이 요번에는 나하고 안 살겠다, 이런 과보가 생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건 보복의 논리란 말이오. 이해하시겠죠?
이것은 옛날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보복의 논리가 권선징악적으로 나타나서 오늘 우리들에게 준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보복이 있으니까 조심해라. 그래서 나쁜 짓 하지마라. 이런데서 생긴 거란 말이오. 그러나 그것은 과학성은 없어요. 윤리성만 있지. 훈계다, 이 말이오.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학성을 갖고 있는 거란 말이오. 과학성을 갖고 있는데 윤리성을 포함하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 그러면 저 사람이 나쁜 결과를 받는 건 당연하다. 저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 나쁜 과보를 받더라도 부처님은 어떻게 한다? 그 사람을 보살펴 줘라, 이게 불법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시어머니를 내가 약간 미워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길 때 어때요? 내가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얘기요. 그럼 이 후회는 왜 생기느냐? 내가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내가 어떤 일에도 마음을 바르게 쓰고, 최선을 다하면, 어떤 일이 생겨도 후회가 안 생긴다. 죄의식이 안 생긴다, 마음에. 그러니까 본인의 마음에 지금 죄의식이 생기는 거는 본인이 마음을 잘 못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그게 뭐다? 마음을 잘 못쓴 인연을 지으면, 아시겠어요? 죄의식이 생긴다, 하는 과보가 생긴다.
이 죄의식을 갖는 거는 고통 아닙니까? 그죠? 그러니까 사건이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만 관계가 있다. 이런 얘기요. 어머니가 아픈 거하고 내가 아픈 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서 내가 잘 못썼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생기는걸 보고, 내가 죄의식을 갖게 됐다. 이게 인연과보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스님이 사건은 관계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나 내가 아~ 나쁜 마음을 쓰는 거는 안 되겠다, 하는 걸 깨우쳐야 돼. 이럴 때. 나쁜 마음을 쓰면 결국은 누가 불편해진다? 내가 불편해 진다. 이걸 통해서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쁜 마음은 쓰지 말아야 되겠구나. 그게 나한테 화가 미친다. 이렇게 하나의 교훈으로 삼고. 그 다음에 몸이 아픈 것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게 첫째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도 특별한 차도가 없다 하면 수행을 해야 되요. 수행은 어떠냐? 몸이 낫는 걸 목표로 하면 안 돼. 앞에서 얘기한데로 눈이 하나가 안보이면 그 눈 하나 나으려고 온통 병원에 다니게 되는데, 이게 더 이상 병으로서 눈 하나를 치료할 수 없다 할 때, 그래도 무슨 기적이 있어서 이걸 치료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게 종교가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럴 때는 관점을 바꿔서 어떻게 본다? 나머지 하나가 성한 것만 해도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렇게 보는 게 주어진 조건의 관점을 바꾸므로 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요. 이해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치료를 받는 거는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고, 치료가 안 돼도 불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 말이오. 수행을 하는 사람은. 제 말 다 알았어요? 응. 그러니까 다리가 조금 아프고, 무릎이 좀 안 좋고, 허리가 좀 안 좋아도, 그래도 아직 휠체어 탈 신세는 됐어요? 안됐어요? 안됐지. 그럼 그 사람하고 비교해서는 아직도 몸이 쓸 만해요? 안 해요? 쓸 만하지.
눈이 안 보인다. 눈 밝은 사람에 비해서는 문제지만은, 그래도 이 정도는 안경 끼면 어때요? 조절이 되잖아요. 그죠? 그럼 안경 끼면 조절이 되는 정도면, 참 괜찮다.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만약에 눈이 안보여도 평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물을 못 본 사람에 비해서, 70평생 잘 살고 늙어가면서 한 10년 안 보이는 거는 어때요? 볼 거 다 봤어요? 안 봤어요? 그동안에. 다 봤지. 볼 거 다 봤어. 조금 불편하지만은 그래도 눈이 안보여도 이렇게 귀라도 들려서 부처님 법문 듣고 수행할 수 있어서 참 좋구나.
이제 분별심을. 안보이니까 눈으로 보고 분별심 내는 거는 일으켜요? 안 일으켜요? 육근 중에 한 개는 해결했어요? 안했어요? 해결했지. 아직 듣는 거 하고, 냄새하고, 맛보고 하고는 해결 못했지만은, 눈 문제는 내가 제일 어려운건데 저절로 해결이 됐으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울고불고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도 감사할 일이다. 이런 애기거든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공부는, 치료는 병원에 가서 받고,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만한 건강을 유지하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 감사를 제가 표현하는 방법으로 틈나는 데로 몸 성할 때까지, 몸이 그래도 움직일 때까지 뭐한다? 봉사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되. 그러면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뭐다? 기뻐지는 거요. 그런데 마음이 늘 기뻐지면 몸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부정적으로 작용할까? 예.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까 몸 아픈 것에 집착해서 신경 쓰고, 우울하면 몸에 긍정적이 될까? 부정적이 될까? 부정적이 됩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요.
아, 몸 아픈 거는, 수행은 신경 안 쓰구나, 이게 아니라. 몸 아픈 것에 신경 쓰면 몸이 더 아프다. 낫는데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치료를 할 때 집착하지 말고 치료는 하되, 오히려 그나마 이만큼 된 것만 해도 어때요? 다행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몸에도 도움이 된다. 우린 늘 욕심을 내서 어때요? 도리어 자기의 처지를 나쁘게 만든다, 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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