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보다는 고민하는 것이 좋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믿고 맡기는 것이 좋다.
믿고 맡기는 것은
1. 잘될 거라는 믿음(신이 내게 계획한 선의를 믿음)
2.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3.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현상이 그 본성이 비어있음을 통찰하여 번뇌를 종식시키는
깨달음에서 오는 믿음의 세 가지가 있다.
사건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사건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양보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다.//
오늘은 걱정, 고민, 그리고 통찰이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려움에 부딪힐 수가 있죠.
그래서 실패하거나 어떤 좌절, 그다음에 어떤 재난을 겪거나
그 결과로 상실을 하게 되는 이런 경우에는
역경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그럴 때 우리는 당연히 걱정을 하게 되죠.
근심 걱정을 하게 되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민하는 게 좋죠.
걱정은 최악을 상상하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그런 거라면
고민은 적어도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이니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죠.
물론 그렇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되는 거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마는.
그런데 그 고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그 고민을 넘어서서 어떻게 보면은 전체적으로 믿고 맡기는 거
그것이 또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거, 고민하는 거, 믿고 맡기는 거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오늘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믿고 맡기는 거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한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보험, 재산, 관계 이런 데서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잘될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잘 된다는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에는 원만하게 잘 끝날 거다’라고 하는 믿음
의심하지 않는 믿음 같은 겁니다.
왜냐하면 이거는
신이라든지, 우주라든지
우리에게 삶을 불어넣어 준 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우리에게 베푼 어떤 선의, 그리고 좋은 계획
이런 것들을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 끝에 낙이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것이 지금의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갈 힘을 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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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이게 잘 될 수도 있지만
잘 못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자기가 생각할 때는 기도에 응답을 못 받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내가 생각하는 잘 되고 못되고라고 하는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그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또 진화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하는 심리학 용어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큰 사건을 겪고 나서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배우고 진화해서 성장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그거는 뭐가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느냐?
사건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이것이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라고 하는 믿음
그것이 그 사람을 진화시켰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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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믿고 맡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불교적인 통찰인데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우리 눈에는 ‘이건 좋은 거야’ ‘이건 나쁜 거야’ ‘이건 성공이야’ ‘이건 실패야’ ‘이건 얻었고 이건 잃었어’ 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죠.
그런데 본질을 보면
이런 것들은 그 정체성이라고 하는, 그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라고 하는 통찰,
그것에서 오는 안도감, 믿음 이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게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뻔한 얘기입니다.
우리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지요.
그러니까 무아라고 하면 그 본질의 특성이 비어 있음이라고 하면
일단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겠죠.
‘이건 이거야’ ‘저건 저거야’ 라고 하는 데서 많은 번뇌가 생겨나는데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 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그러므로 이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그렇게 말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냥 그것이 그런 채로 있다’ 이렇게 인식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의 판단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의 특징은 이런 것이죠.
그 밤하늘에 불꽃놀이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그 폭죽이 터질 때 그 불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순식간에 그 폭죽이 꺼지고 나면
다시 밤하늘은 깜깜해지죠.
그러니까 지나고 나면 이게 또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물을 ‘야 이건 있는 거야’ ‘아니야 그건 없는 거야’
이렇게 현상으로 보지도 않고
본질만 고집하지도 않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관점으로 사물을 보면
그것이 무상한 것이죠.
항상 그런 형태가 아니고
형태를 바꾸거나 바꾸어진다 하는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덧없는 현상을 보고
우리의 마음은 왜 그렇게 고통을 받느냐라고 하는 것은
현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세 번째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실이나 사건이
그 자체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죠.
그냥 그건 사실일 뿐이죠.
문제는 그것에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가 또 쪼그라들었다가
이렇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게 ‘사실은 그냥 말이 없는데
내 마음이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나에게 작은 관찰과 관찰에 따른 통찰이 생기는 것이죠.
‘이게 내 마음에 왔다갔다가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무수한 사건들이 주는 정서적인 휘둘림에 맞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지혜가 쌓이고
그 지혜가 그 본성이 비어 있다라고 하는 무아를 실감하게 되면
이때 무아라는 것은 내가 없다가 아니라
만물의 본성이 텅 비어 있다
규정하기가 어렵구나
항상 그러한 뭔가 본질이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의 믿음이죠.
왜냐하면 세상은 다 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뭐 좋은 일이 있어도
조금 덜 흥분하게 되고
나쁜 일이 있어도 객관적으로 나쁜 일이 있어도 덜 위축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내 감정의 기복이 너무 이렇게 되지 않고
굼실거리면서 웨이브가 파동이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심리적으로 훨씬 가볍고
우아하게 내 앞에 다가오는 뭐 좋거나 나쁘거나 그게 뭐든지 간에
사건들을, 현상들을 건너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달라지는 것은 사건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아니면 나는 철학적 입장을 정리했다 하더라도
사건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그 사건이 미치는 영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배가 고프면 몸이 상한다’
이런 것들이 달라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대하는 마음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러니까 무아에 맡긴다 하는 것은 뭡니까?
상처받을 자아가 궁극적으로 있는 것 같지 않다.
없는 것 같다라고 하는 통찰에 그 바탕을 두고 일어나는 믿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또 그 논리가 있고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미리 나쁜 일을 우리가 방지할 수도 없고
또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그걸 다다닥 이렇게 해결할 수 없을 수도 있죠.
왜냐하면 잘 고민해서 잘 해결하면 또 되는 거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있죠.
그러나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런 사건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건 오로지 나의 결정의 몫이거든요.
이 몫을 자기가 못 찾아 먹으면
인생에서 끌려가는,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이 몫을 찾아 먹으면
어찌 됐건 인생은 자기가 주관하는 자기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나의 태도
그것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내 삶을 다른 삶과 다르게 만들고
진정한 의미의 내 삶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뭐가 일이 잘 안 될 때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민하는 것이 좋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믿고 맡기는 것이 좋은데
믿고 맡기는 것에도 세 가지
첫 번째는 신의 선의를 믿는다.
두 번째는 어떠한 경우에도 배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믿는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의 무아라고 하는 본질을 통찰하고
에너지를 보존한다 라고 하는
이 세 가지 믿고 맡김에 대해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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