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우리는 실제가 아니라 생각 속에서 산다

Buddhastudy 2024. 1. 23. 19:44

 

 

우리는 뇌 속에서 세상을 재구성하여 인식한다.

그것은 전기화학적 작용이다.

오직 밖에 없다는 유식학은 일리가 있다.

마음공부란 세상에 오직 마음 뿐이라는 것을 알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온갖 번뇌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이것 뿐이다.//

 

 

오늘은 우리는 실제가 아니고 생각 속에서 산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실은 실제 그 순간에 체험을 못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을 우리가 모르죠.

태어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잠들고 깨는 순간을 또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잠을 내가 자는 게 아니잖아요.

잠이 와야 자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잠이 드는 순간을 우리가 알 수가 없죠.

이거는 마취되었다가 깨어나는 순간도 똑같습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보면은

자아라고 생각되는 심리적인 내가

탄생하는 순간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보통 내가 할 거야, 내 거야라고 하는 게 한 서너 살 정도 되는데

그때는 말을 배우기 시작한 때고

그전에 자아는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가?

자아는 그때 생겨났는가?

근데 생겨나는 순간도 우리는 기억을 못합니다.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그 해마를 통해서 입력이 안 됐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언어로 입력이 안 된 거는

우리는 기억이 없는 거죠.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 실존적으로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이 없어요.

직접 경험이 없고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는, 지식으로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는 몇 날 며칠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다, 태어났다더라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체험이 아니라 정보로서 아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태어났다고 하니까

나는 태어났구나그것이 굳어지면

나는 태어났다이렇게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태어난 것 같이 생각하다가

태어났다라고 확신하게 되는 그런 과정으로 가게 되죠.

근데 태어남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걸 유추해서 보면

우리가 결국은 체험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죠.

 

죽는 순간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죠.

임사 체험은 안 죽은 거잖아요.

근데 죽는 순간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알 수 없다 이거죠.

 

블랙홀로 치면

사건이 지평선 아래로 꺼져버리면

거기서는 인식 작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도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죽음은 지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현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죠.

 

안다고 하는 것 인식한다고 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있는 것인데

내가 죽는다라고 하는 주관과 객관이 성립하지 않는 영역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해 보면

참으로 중요한 실존적인 순간들은

체험이 아니고 정보 습득으로 내가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면, 곰곰히 생각해보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걸 몰라요.

모른다 하는 것이 정답이죠.

근데 우리는 그 모른다라고 하는 것을

지식이나 신념으로 꽉꽉 채워서

삶은 이런 것이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뭐랄까 믿는다 할까 우긴다 할까

그렇게 해서 이 빈 곳을 메우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메워도 메워도 메워지지가 않는

그런 허무와 불안이라고 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왜 그러느냐?

왜 그걸 자꾸 그 틈을 메우려고 하냐?

모른다고 하는 영역을 우리는 불편해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건 스트레스가 되는 거죠.

그 스트레스의 정의 자체가

예측하지도 못하겠고 통제하지도 못하겠으면

스트레스거든요.

 

그러니까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은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는 더더욱 없으니까

그건 스트레스죠.

그러니까 온갖 상상을 하고 온갖 설명을 해서

그 부분을, 불안의 부분을 메꾸려고 한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 공부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놔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상책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논리적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면

근데 이것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네

하는 데까지는 지성이

지적인 능력이 그걸 알아차리도록 또는 깨닫도록 도와줄 수가 있죠.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중대한 전환점이죠.

왜 그런지 몰라도

그러면 무엇인지 그거는 몰라도

이거는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죠.

 

굉장히 중요한 실존적인 순간들은

우리는 삶에 속해 있지 않다, 속해 있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근데 이 모른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사회생활이나 경제생활 할 때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무지이지 않습니까?

근데 진정한 무지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이 진정한 무지죠.

모르는 것을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내가 모른다라고 하는 것을 아니까

지혜의 시작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우리는 그 실수를 덮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먼 길을 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뭔가 지적으로 몰랐을 때 사는 게 불편해지냐?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두 살짜리 아이들

행동 침대에 올라가고 침대에서 내려가고 하는 행동을 한번 보시면

굉장히 잘하죠.

침착하고 세밀하고 여러 번 트라이언 에러를 반복해서 최저 코스를 찾아내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꼬물꼬물꼬물하면서

발을 뗐다가 디뎠다가 이렇게 하면서

결국 침대에서 내려오고 또 침대로 기어 올라가고 하는 것을 보면

언어가 없는 상태의 아이들도

아주 훌륭한 지성을 가지고 완벽하게 행동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우리는 지금 언어가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고

언어의 무게에 너무 많이 짓눌려 있다

이게 문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뇌라고 하는 것은 시뮬레이션 기계잖아요.

더군다나 그 시뮬레이션을 전기화학적으로 하는 기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늘 예측이나 통제를 위한 그 생각을

회로가 돌아가고 있는데

이게 지나치면 공회전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면 그 과열이 되는 거고

그러면 시켜줘야 되는 것이죠.

 

그 공회전으로 인한 과열 그것이 번뇌 아닙니까?

그래서 이 번뇌는 제일 좋은 것은

번뇌가 생긴 후가 아니라

생기기 전에 공회전을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가장 훌륭한 해결책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뇌가 전기화학적으로 외부의 사물을 형성하는 시뮬레이션하는 기계라고 하면

이 칸트도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뇌 바깥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유식학에서는

유식 오직 식만이 있다 이런 얘기 아닙니까?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물체라고 하는 정보를

뇌에서 뇌 속에서 재구성하는 존재다

이런 의미가 되겠죠.

 

일체 유심조도 똑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가 아니라

우리는 외부의 사물을 내부의 전기화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는

인식만 가능하다 라고 하는 것이 핵심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할 때에

그 인식의 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라고 하는 주장은 타당하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국 결론이 뭡니까?

오직 마음이다 이런 것이죠.

 

현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이 마음이 중요하고

자기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이너월드 내적인 이 세계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보는 자고

내 밖에 현실을 내가 인식하는 그 인식 대상이 있고

이렇게 쪼개서 분열되어서 보지만

실제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나다 라고 하는

파격적인 선언이 가능한 것이죠.

 

왜냐하면 나는 내가 재구성한 세계를

이 말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내 머릿속에 구성된 세계가

내가 파악하고 생활하는 세계의 전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더 멋진 조합, 더 멋진 이미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르게 이야기하면

내가 보는 것이 곧 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내가 이 세상을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만들었다 보다는

나는 이 세상을 나의 뇌 속에서 재구성하는 존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구성하는 이것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행복과 불행, 번뇌와 평화, 평안의 분기점이 된다.

이게 마음 공부를 이거를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우리는 실제를 사는 것이 아니고

생각 속에서 산다 라고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얘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 마음

오직 마음밖에 없다 하는 얘기를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