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사고는 반사작용이다

Buddhastudy 2025. 2. 10. 20:07

 

 

그대는 사념입니다.

그대는 사고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대는 반사작용에 불과합니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I AM THAT 채널의 영적 지식 알아보기 동영상은

제가 공부를 하려고 발췌해 정리해 둔 자료들을

그대로 인용해 쓰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말하고 쓴 것처럼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요한 내용들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물론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심화 학습을 위해 출처는 꼭 밝혀두도록 하겠습니다.

 

사고는 반사작용이라는 제목으로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의 말들을 옮겨보겠습니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이름이 비슷해서

쉽게 착각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이분의 책은 <깨달음은 없다>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다가

그 제목이 너무 도발적이었든지

그다음에는 <그런 깨달음은 없다>로 바뀌었습니다.

이런저런 평을 하지 말고

그대로 들어보는 것이 좋은 분입니다.

 

주요한 내용은 인터뷰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여기서는 질문을 대부분 생략하고

유지가 강조하는 발언들만 발췌하는 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제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가 된 것처럼 진행하니

질문이나 대답의 논리보다는

사고에 대한 존재에 대한 유지의 크리슈나무르티의

직설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

생각이 문제입니다.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고난은 문제가 아니죠.

다만 고뇌에 대한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을 멈추세요.

그런데 그대는 생각을 멈출 수 있습니까?

지금 그대는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고 있죠.

이 또한 생각입니다.

저는 그대에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그대입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거기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세요.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것을 홀로 놔두세요.

그러면 제 스스로 작용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대는 생각을 통해 슬픔과 고뇌를 영속시킵니다.

그대에게 잘못된 점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만 그대는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그대에게 무엇이 있건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용기입니다.

이것이 지성입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것은 장차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의 움직임이 바로 그대입니다.

두 극단 사이의 영역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대는 항상 이쪽 극단에서 저쪽 극단으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것이 사념의 움직임이죠.

그러나 그것은 항상 두 극단 사이에 있어요.

그대는 이런 극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념의 움직임이 왜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이냐고요?

자연스럽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것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대는 부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그대는 이런 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도 없습니다.

 

그대가 바로 사념이고, 그대는 사념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에서 작용하는 이 기계적 구조

즉 사념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가설과 추상적인 개념들을 놓고 토론하는 것은

순전히 시간 낭비입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람이

한가롭게 앉아서 분노에 대해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제가 뭘 어쩌는 게 아니라

누가 와서 물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대는 나를 비난하고 돌을 던지고 싶나요?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죠.

그들은 철벽같은 방어막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능력도 없어요.

그저 상호작용을 통해 반사적으로 행동할 뿐입니다.

 

그대의 관념과 정신작용 모두가 이런 반사작용에 불과합니다.

반사작용이 곧 사고죠.

그대가 저기에서 겪었던 아픔은

실제적 고통이 없는 여기에도 뚜렷하게 반영됩니다.

여기에는 아무 고통도 없는데 말이죠.

 

그대는 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대는 개체가 아니에요.

주변의 외물과 별도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통합적인 흐름은 그대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념은 반사작용입니다.

그들은 이 사념이라는 방어막을 기를 쓰고 사수하려고 하죠.

그러면서 삶의 흐름이 그대의 방어막 안으로 치고 들어올까 봐 두려워합니다.

삶은 둑을 위협하며 거세게 밀려드는 강물과 같습니다.

 

그대의 사고 체계와 심리적 구조 체계에는 한계가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죠.

이것이 제가 무슨 말을 하던 오도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대의 신념 체계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의 결과물이며,

모두가 2차적으로 인용된 것들입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신념 체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그대가 더 할 수 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신념 체계와 환상이 무너지면

그대 또한 무너집니다.

 

나의 말은, 그대의 고통에 대한 반응

질문과 논리적 주장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그 고통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는 말하는 자도 없고

충고하는 자도 없고

고통을 느끼는 자도 없고,

무엇을 경험하는 자도 없습니다.

공을 벽에 던지면 튀어나오는데

이것이 이 상황의 전모입니다.

 

나의 말들은 그대의 질문이 낳은 직접적인 산물일 뿐이죠.

내 쪽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은밀하게 타협할 것도 없고, 팔 물건도 없고, 날을 세울 도끼도 없고

아무것도 증명할 것이 없습니다.

의문 목적, 의식, 신념 체계, 가설들

그대가 벗어나야 할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요?

정말 그래요?

그대가 진정으로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어요?

 

그대가 이렇게 분노를 표현하고

정의감과 관심을 내세워도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저 의례적인 행동일 뿐이죠.

그대는 한가하게 앉아서 입으로만 떠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대는 조금도 분노하고 있지 않아요.

만일 이 순간에 그대가 진정으로 분노했다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그대는 여기에 앉아서 끝도 없이 분노에 대해 떠들고 있죠.

분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떠들지 않아요.

이것이 전부입니다.

 

만일 내 말이 너무 심해서 그대를 절망시킨다면

앞으로는 절대 성자를 찾아가지 마세요.

성스러움을 내세운 비즈니스가 그대에게 도움을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은 순전히 시간 낭비입니다.

 

도덕적, 윤리적 가치는 모두 허구입니다.

실용적인 길을 모색해 온 심리학자들도

이제는 결국 벽에 부딪혀서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 해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심리학자들은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죠.

하지만 해답은 이들로부터 나올 겁니다.

성스러움을 가장한 부패한 전통에서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의 흐름입니다.

진리는 잡을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어요.

또는 그대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대가 잡는 순간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내게 있어서 진리란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확실한 점은 진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루 비지니스는 완전히 넌센스입니다.

이 홀리 비지니스는 타인들의 어리석음과 맹신을 토대로 번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들 또한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토대로 배를 굴립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아요.

 

--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제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글을 크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전해드렸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은 다소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꼴통 수준의 인간도

처음 이분을 접했을 때는

그 거친 말투와 내용에 많이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동지를 만난 느낌도 들었습니다.

진솔한 것이 거칠게 느껴지는 것은 일반적인 에고의 감성입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인간 존재는 결국, 사고 작용의 결과일 뿐이며

사고는 반사 작용이라는 유지의 말은

흘려들을 수 없는 정확한 앎입니다.

 

 

자유의 감정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앞선 원인들을

우리가 순간순간 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샘 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