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1)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한가?

Buddhastudy 2021. 8. 30. 18:52

 

 

 

 

질문_27세 졸업반 대학생입니다.

저도 모르게 외모, 학벌, 연봉, 기업 레벨 등 서열을 매겨 남을 무시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자신이 싫고 괴롭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이 사회에 나가서 점점 더 서열을 나누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남을 무시, 차별하며 다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혼란스러운 건 세상인가? 자신인가?

 

본인이 지금 세상이 혼란스럽다이렇게 얘기했는데

그 문제는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혼란스러운 적이 없습니다.

세상은 늘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이 틀이 지금의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아무런 혼란이 없고

내가 과거의 틀이나 어떤 관념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이 내가 바라보는 그 각도에서 이해가 안 되면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질문하는 학생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틀로 자기 그 틀에다가 세상을 끼워 맞추려니까 안 맞으니까

세상이 좀 복잡하다, 세상이 혼란스럽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 같습니다.

 

옛날에도 지금도

기성세대가 볼 때는 젊은이들이 늘 불안하고 저렇게 해서 세상을 살아가나?

쟤들이 어른이 되면 세상이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또 젊은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고 이렇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자기의 틀로, 자기가 경험한 그 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 학업 순위가 서열로, 서열이 새로운 신분으로

우리 질문자가 학교 다닐 때 주로 공부를 잘하나 못하나 갖고 등수를 매겼다.

그런 속에서 익숙하게 자라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떻게 될까요?

저게 양반이냐? 상놈이냐?

이 신분 계급을 갖고 논하는 그런 사회,

또 남녀 차별을 갖고 논하는 사회.

 

여자로 태어나면 아예 어떤 세상에 나가서 자기를 실현한다, 도전한다,

이런 건 생각을 못 해봐요,

비로 양반집 딸이라 하더라도. 공주라 하더라도

여성으로 태어나면 아예 그건 어릴 때부터 접어야 한다.

만약 그런 행동을 하면

여자가이러면서 어릴 때부터 억제한다.

 

또 애가 태어나는게 자기가 양반으로 태어나는지 상놈으로 태어나는지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태어나보니까 계급이 낮다.

그러면 자기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가 어렵다.

조금만 그렇게 하면

종이 어니 자기 신분도 모르고.” 이렇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성차별, 신분 차별이 좋은 것이 아니다. 해서

태어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고, 자기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야 한다.

이게 소위 자본주의 사회이고, 또 민주주의 사회, 자유주의 사회인데

그러면 현대 사회는 정말 자기 능력을 갖추고 자유롭게 결정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도 새로운 계급 질서를 만듭니다.

그 계급 질서를 언제 만드느냐?

바로 학교 다닐 때 만든다.

 

영어를 잘한다, 수학을 잘한다, 몇 가지로 등수를 매겨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나중에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연봉을 1년에 수십억을 벌어도

내가 번 거다, 내가 잘해서 번 거다, 이걸 정당화시키고

그다음에 공부를 못하고 그래서 직장에 제대로 취직을 못 하고 이러면

못하는 것이 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

마치 학교가 새로운 계급 질서를 만드는, 신분 질서를 만드는 것과 똑같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요즘 우리가 볼 때, 이렇게 새로운 신분 질서를 만드는 거 아니냐?

그런 신분 질서는 옛날에는 신분으로 만들었고

어떤 성차별로 만들었고, 인종으로 만들었고.

 

 

개인이 갖는 그런 능력으로 새로운 차등을 만드는 사회에 젖어있다.

 

이 사회에 살 때는 그게 너무 당연한 것 같은 거요.

그러나 우리가 신분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는게,

또 봉건 사회에서는 여성을 차별하는 게 너무 그 사회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고 당연한 것 같지만

지금 우리가볼 때는 그건 매우 부당하다.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 능력으로 차별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

어제 그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재집권했는데

거기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습니까.

그럼 제가 아프간에 가서 한 4년간 봉사활동, 난민을 돕고 이런 시골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종교 때문이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회가 아직 봉건적 조건에 놓여있다.

기독교도 그 사회에 봉건적 사회에 놓여있을 때는 여성을 차별했고

불교도 봉건적 조건에 있을 때는 성차별을 했고

그 중동이라는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은 아직도 봉건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마침 무슬림 종교가 있기 때문에 성차별이 이루어지는 거고

그 사회가 이미 민주화된 사회라 그러면

, 시민사회로 바뀌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성차별로부터 자유로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보고

무슬림이 여성차별한다.”

 

그러면 우리가 한 300~40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유교도 성차별 했고, 불교도 성차별 했고, 기독교도 성차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차별은 그 사회의 문제인데

 

현대사회에서 차별이라는 인식 없이 실제로 차별을 받고 있는게 뭐냐?

능력에 따라서 차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극치를 이루는 게 어느거다?

신자유주의에요.

 

똑똑한 1명이 만명을 먹여 살린다.

이런 신념이죠.

그래서 지금도 자기가 뭘 계발을 했거나, 자기가 똑똑하면

연봉을 몇백억씩 받아도 그건 정당하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에 봉건적인 신분사회에 살면, 그 사람이 왕족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귀족이기 때문에 몇백억을 재산을 소유해도, 정당하다, 이와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 사회가 또 바뀌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잘못된 거다,

또 이렇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재능을, 그것이 주어진 조건에서

재능이 있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맞아져서 그 돈이 한쪽으로 몰린 거라면

자기가 쓰는 것은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게 어쩌면 정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차별을 당연시하느나 현실에서 살다보면

우리는 아버지가 왕이라면 아들이 왕되는 그런 봉건왕조에서

누구도 왕이 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왕은 왕의 아들이라야 왕이 되니까.

즉 권력이 세습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부당하다 해서 권력세습은 부정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버지가 가진 돈을 아들이 가진다고 하는 부의 세습은 아무도 지금 그걸 문제 안 삼잖아요.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이기는 하지만 무슨 사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세습은 당연하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회에 놓여있다.

 

제가 이렇게 조금 길게 얘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의 세습이 되는, 입시를 하는데, 약간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 들어갔다,

이런 것은 엄청나게 문제로 삼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마한 돈이 자기가 노력 안하고, 아들에게 세습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를 안 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권력세습을 반대하는 민주사회인 대신에

재물 세습은 합법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이런식으로 교육, 훈련, 세뇌되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

태어날 때 남자라고 특혜를 받고

태어날 때 얼굴이 희다고 특혜를 받고

태어날 때 아버지가 양반이라고 특혜를 받는 게 부당하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태어날 때 얼굴이 잘생겼다고 특혜를 받고 있잖아요.

아주 재능은 없는데 얼굴이 잘생겼다고 특혜를 받는

이런 것도 다 태어남에 의해서 특혜가 주어는 거죠.

 

그런 것들이 우리는 몇 가지는 문제 삼고

나머지는 아직도 봉건시대처럼

, 그건 당연하다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기가 자랐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평가하고

자기도 거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는 게

진실은 아니지만, 현실이다, 그것이.

진실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그러면 자기도 조선 시대에 양반으로 태어나서 또는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는 꼼짝도 못 하게 하고, 남자는 여러 여자를 거느려도 되는 거를 만들어서

거기에 여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질투한다, 해서

아주 도덕적으로 나쁘다, 이래서 단죄를 하는 이런 것처럼

지금 이 사회에서는 우리자 잘 몰라요.

 

그게 이미 정당화 되어있기 때문에.

태어나서 그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한 걸음씩 나아갈 뿐

그래서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돌아가고

자기가 그것을 정당화하는데

자기가 그걸 보고 아니라고 만약에 생각한다면

자기가 그 길을 안 가면 돼요.

 

대신에 세상을 거스르기 때문에 좀 힘들어요.

물에 떠내려가면 힘이 안 드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거스르면 물살을 받으니까 힘들잖아요.

그것처럼 세상을 거스르면 힘이 드는 거요.

 

대다수가 거스려고 생각하다 힘이 드니까 다 포기하죠.

우리의 즐거움도 욕망 때문에 생기지만, 괴로움도 다 욕망 때문에 생기는데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을 내려놔라.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마라.

 

그런데 세상이 다 욕망을 추정하는데

내가 욕망을 내려놓으면

세상을 거스르는 게 되니까,

세상에서 뒤처진 사람 같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이렇게 느끼죠.

 

그런데 그럴 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아야

자유와 행복으로 갈 수 있다.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다음 사회,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한 시대, 100200년 이렇게 보면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천년, 2천년 역사를 내다보면

그 시대를 우리는 자꾸 변화시켜 나가고 있죠.

 

우리가 말한 사회적 정의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존재가 원래 다 그곳으로 존중받는 평등한 존재인데

우리는 이런 식으로 불평등한, 남녀가 불평등하고 인종이 불평등하고

이렇게 불평등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 불평등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 현실로부터

원래 존재의 실상인 평등의 세계로 한발 한ㄴ발 나아가는 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거예요./

 

학생이 정말 자기가 정의를 생각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남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들은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그렇게밖에 살아본 적이 없고

부모도 그렇게 살았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고, 친구도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살아갈 수가 없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 시대를 초월해서

이것이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 하면

거기서 벗어나는 그런 길을 가야 하는데

그걸 남탓하고 있다면 제가 볼때는 좀 어리석지 않으냐.

 

다시 말하면 자기가 양반으로 태어나서 상놈을 무시하고 양반 짓거리 다 하면서

다른 사람이 상놈을 무시하고 여자를 무시한다고 나쁘다고 비판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자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세상을 보고 너무 혼란스럽다 그러지 말고

나쁘다 그러지 마라.

그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사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살든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면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