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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스파르타 리산드로스 vs 아테네 알키비아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 10

Buddhastudy 2023. 10. 4. 19:56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제국은 광대한 오리엔트 지역을 통합한 후

서쪽 끝자락에 있는 그리스 세계를 침공.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스 세계의 도시국가들인 폴리스들은

서로 힘을 합쳐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고군분투 하였으며

그 결과 아테네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아테네는

가장 강력한 패권을 가진 폴리스가 되어

그리스 세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려 했고

이에 맞서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저항하며

그리스 세계에서는 폴리스들끼리 서로 싸움을 벌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전개됩니다.

 

기원전 431년부터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돌아가며

유리한 승기를 잡는 반복이 이어졌으나

전쟁 중기인 시칠리아 원정에서 아테네는

전력의 대부분을 잃게 됩니다.

 

이때, 페르시아 제국의 대그리스 정책은

당시 강력했던 아테네 함대를 견제하는 방법으로

다른 폴리스들을 지원하며 실리를 챙기는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을 무렵의 아테네는

시칠리아 전투에서 대패를 겪으며

5년 치 국가 예산을 탕진하였고

아테네의 동맹국들은 점차 델로스 동맹을 빠져나와 반란을 일으키며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만큼

약소국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강한 국가들을 향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기원전 411. 아테네의 국내 상황은

기존의 민주정과 이를 전복시키고자 했던

과두정과의 마찰이 격화되어

정치 체제는 혼란을 겪으며 바뀌어 갔고

재정문제도 심각해지며 도시국가 자체가

점점 파멸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 위기상황에서 아테네는

자신들의 최후의 힘을 동원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불리한 입장을 뒤집고자 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중해의 모든 폴리스가

아테네의 눈치를 볼 정도로 강력했던 아테네였지만

아테네 내부에서는 그간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전쟁 영웅들이

국내 정치 싸움에서 밀리면서 사형이나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오래전 페르시아를 상대로

마라톤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밀티아데스도

페르시아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었던 테미스토클레스도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알키비아데스도

아테네 시민들의 질책을 받아

감옥에 갇히거나 국가에서 추방을 당하였던 겁니다.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로 망명한 후

아테네 민회에서는 대안책으로 다른 장수들을 전장에 보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험 많은 장수들이 대다수 전사하게 됩니다.

 

이에 군사력이 약해진 아테네는

이전에 사형시키려고 했던 알키비아데스를 다시 불러들였고

남은 전쟁 기간 동안 아테네를 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비도스 해전에서 승리에 기여하고

이어 키지코스 해전에서는 소수의 함대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육군까지 몰아내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알키비아데스의 활약으로 인해 아테네는

키지코스 부근의 반란국을 제압해 식량수송로를 수복하였고

이오니아 일대를 남하하면서

아테네 해상 제국의 판도를 거의 되살려 놓게 됩니다.

 

시칠리아 원정 이후, 한참 동안 힘을 잃어가던 아테네에게

키지코스 해전의 대승리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스파르타는 이쯤에서 잠시 평화협정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아테네는 이를 거절합니다.

 

키지코스 해전이 일어난지 3년 뒤, 기원전 407

스파르타는 리산드로스를 해군 사령관에 임명하여

함대의 재건을 맡기게 됩니다.

리산드로스가 등장하면서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과는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게 됩니다.

 

리산드로스는 스파르타의 함대를 끌어모아

에게해를 건너 에페수스로 향하였고

그는 이 지역의 페르시아 사트라프와 키로스 왕자의 마음을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오랫동안 명성을 자랑해온 아테네 함대가

눈에 거슬렸던 페르시아로서는

이참에 스파르타를 지원해줌으로써

아테네를 박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리산드로스는 아낌없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얼마 전 아테네에게 패배했던 해군력의 회복도 말끔히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전 406, 알키비아데스가 이끄는 아테네 함대와 스파르타 함대가

노티움 해전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알키비아데스는 키지코스 해전 때처럼

소수의 함대로 스파르타를 유인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알키비아데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테네 해군은 리산드로스의 벼락같은 공격으로 인해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살아남아 아테네로 돌아갔지만

아테네인들은 패배의 모든 책임을

알키비아데스에게 있다고 결론 지으며 그를 추방합니다.

 

이후, 알키비아데스는 추방당한 몸으로도

뒤이어 벌어지는 전투들에서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추천했지만

아테네 장군들은 더더욱 그의 말을 거절하였고

결국 아테네는 연이은 패배를 겪게 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전장에서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평소 인간관계에서 적이 많아

결국 기원전 405년 페르시아의 땅인

프리기아 지방에서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는 리산드로스의 시도였을 수도 있으며

혹은 아테네인들이 모든 전투 패배의 책임은

알키비아데스 탓이라고 여겨 암살했다고도 추정하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는 노티움 해전에서 대승을 이끌었고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알키비아데스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리산드로스는 더 이상 해군을 지휘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스파르타 제도상 해군 사령관은

1년 밖에 지휘를 할 수 없었고

재임도 불가했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

후임으로는 칼리크라티다스가 스파르타군을 지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리산드로스는 연임을 할 수 없는

제도에 화가 난 나머지, 페르시아로부터 받은 군자금을

돌려주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칼리크라티다스는

170척 규모의 대함대를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당시 아테네의 새로운 지휘관은

코논 이라는 장군으로, 70척의 함대가 있었는데

스파르타는 압도적인 전력차이로

코논의 70척 함대를 격파하여

아테네 함대를 미텔레네 항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야말로, 아테네 해군은

더 이상 재건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지만

이때의 아테네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또 다시 110척의 배를 급조하게 됩니다.

 

아테네는 부족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신전 지붕의 금박을 모두 벗겨냈으며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신상들의 금박도 모두 벗겨냈습니다.

 

그리고 신상 자체가 금이나 은이라면

모조리 녹여 주화로 제조해 예산을 만들었고

이 돈으로 병력을 충당시켰습니다.

 

어떻게든 돈은 마련했지만, 군인모집을 위해

그간 전투경험이 거의 없었던 농부나 노예들을 끌어 모았는데

노예들에게는 노잡이로 전투에 승리하면

아테네 자유 시민권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한 달 만에 신전과 신성을 뜯어가며 재원을 마련하고

동시에 군사적 경험이 전무한 노예들까지 동원하여 만든 아테네의 해군은

금세 대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숫자면에서는 스파르타군과 싸울만했으나

스파르타 함대는 최근까지도

전투경험으로 무장한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여기다 아테네 함대의 취약점은

그 누구도 지휘관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간 아테네에서는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아테네 시민들이 이전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패배의 책임을 지휘관에게 물어

사형이나 추방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테네는 110척의 함대와

사모스 섬의 지원함대까지 포함해

155척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기원전 406.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스파르타의 칼리크라타디스와 만나게 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10번째 이야기로

전쟁의 후반부인 노티움 해전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알키비아데스 사후에 아테네는 급속하게 무너졌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재정과 인력을 끌어모아

다시 한 번 대함대를 편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아테네의 함대는

다시 한 번 스파르타와 맞붙게 됩니다.

 

다음 세계사 영상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11번째 이야기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