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Buddhastudy 2023. 10. 17. 19:35

 

 

 

학번, 분번, 주민등록 번호는 식별부호다.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그 중심에 이름이 있다.

이것을 나라고 생가하는 자아 관념이

감정의 주체가 되어서 기뻐하고 슬퍼한다.

쓰임이 다하면 학번과 군번을 잊는 것처럼

이름도 그처럼 잘 쓰고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것에서 괴로움이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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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약간의 역설적인 부분이 있는데요.

보통 불행한 사람은 하루 종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잘 기억을 못해요.

그냥 지나고 나서 그때가 좋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많이 집착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면

불행해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각종 식별 부호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 들어가면 몇 학년 몇 반. 몇 번 이렇게 번호가 부여되죠.

학번이라고 하잖아요. 초중고 대학까지 학번이 있습니다.

그 학번으로 우리는 모든 행정적인 절차를 밟고, 자기 자신임을 확인하죠.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군번이라고 하는 게 있죠.

군번줄이 주어지죠.

학번, 군번, 그다음에 평생 사용할 주민등록번호, 운전면허증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사실은

내가 아니고 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식별하기 위해서 부여한 식별 부호잖아요.

실제가 아니라 식별하기 위한 부호잖아요.

그것을 우리는 동일시한다, Identify 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Identity는 아니고 Identify 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갖다 붙인 겁니다, 나한테.

 

그래서 이 동일시의 끝판왕이 이름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이 이름에다가

처음에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 누구야 누구야

저도 우리 아이들한테 그랬고

누구야 누구야’ ‘너는 누구다’ ‘너는 누구다’ ‘이름이 뭐니?’

우리 누구누구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대통령

이렇게 해서 자기 이름을 가지고

여기에 모든 자기에 대한 이미지가 덧붙여집니다.

이미지가 막 쌓이고

그다음에 그 자아라고 이름 붙여진 불리어지는 그것이 소망을 가지죠.

이렇게 되고 싶다’ ‘이것을 가지고 싶다이런 소망들도 잔뜩 갖다 붙입니다.

그래서 그 자아 이미지가 뚱뚱해지죠.

 

그리고 그 한자의 라고 하는 것은, ‘라고 하는 것은 손 자에 창 자거든요.

그러니까 뭡니까?

손에 창을 들고, 자기 자신의 이미지, 자기 자신의 소망들을

지켜내는 혹은 확장하는

그런 것이 자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식별 부호에 불과한데

여기에 지나친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상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학번하고 군번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졸업하면 그 학번 필요 없으니까 잊어버리죠.

군번도 군대 갔다 와서 군번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히 무슨 트라우마가 있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군번도 까먹습니다.

왜냐하면 도구였으니까, 필요에 의해서 편리한 도구였으니까, 실체가 아니었으니까

까먹어도 되는 겁니다, 까먹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름과 주민번호는 평생 쓰는 거니까

사실은 살아있는 동안에 까먹을 필요는 없죠.

문제는 그것보다 더 한다는 겁니다.

까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실체감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진짜 나인 것처럼 생각해서 애착한다는 것이죠.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 아바타 같은 건데

그 아바타가 나인 것처럼 그렇게 집착함으로써 괴로움이 일어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문제인 거죠.

 

그래서 그것의 어떤 관념화된 것이 나다, 자아다, 에고다 하는

관념적인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라고 하는 관념도, 어떻게 보면 끝판왕이죠.

 

그래서 핵심적인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게 실체가 아닌데 이것을 실체라고 생각하고

그 마음 아파하고, 기뻐하고 하는 주체인 것처럼 작동한다는 겁니다.

 

고통은 몸이 느끼는 거지만

괴로움이라고 하는 심리적인 상태는 마음이 느끼는 건데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한테는 에고, 자아, 나라고 하는 관념인 것이죠.

 

많은 신비주의자들 또는 영적 수행자들 그리고 깨달은 사람들이

깨닫는다는 말 자체가 그러는데

꿈에서 깬다이런 거잖아요.

꿈에서 깨어난 자이렇게 말하는데

인생을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꿈에 비유하죠.

그 꿈에 비유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라는 의미가 아니죠.

정반대로 꿈에서 깨라는 얘기죠.

 

그래서 깨어난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났다는 말하고

제대한 이후에 군번을 잊어버렸다, 잊었다라고 하는 말하고

정확하게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의미는

실체가 아닌 것 때문에 고통받지 말아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주민번호 그다음에 나의 이름, 인감, 도장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매우 유용한 도구고

주소지로 정확하게 배달되어 와야 하니까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근데 유용하지만 도구다, 하는 것이죠.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지나치게 상처받거나 괴로워한다라고 하면

이것은 망상이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이렇게 어리석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이것이 무명이다. 근본적인 무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유용한 도구고, 실체가 아니고, 잘 쓰고 어떻게 됩니까?

반납해야 하는 것이죠.

반납할 곳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버리면 되는 것이죠.

 

살아있는 도중에 이것을 깨닫고 그렇게 되면 아주 훌륭한 것이고

인생의 후반부, 혹은 인생의 말년 부분에서

이때까지는 이름에 자기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면

이제는 차근차근 해체하고, 지워가기 시작해서

삶이 끝날 때쯤에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이름도, 자기 자아 관념도 지워나가는 것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젊어서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알게 되면

괴로움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