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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코린토스 전쟁 2 -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

Buddhastudy 2023. 11. 1. 20:04

 

 

스파르타에서 가장 유명한 왕으로 손꼽히는 왕으로는

기원전 480.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대규모 군대를 맞아

정예병 300명의 병력만으로 맞서 싸운 레오니다스 왕이 있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영화 300처럼

300명만이 막아낸 전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에 맞선 그리스 연합군 7천 명은

터무니없는 숫자의 병력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일부인 테르모필레 전투는

비록 레오니다스 왕이 죽으면서

페르시아군에게 길목을 내주긴 했으나

스파르타 육군의 활약은 이후 그리스 세계의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됩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아테네 함대 중심의 활약으로 페르시아를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고

이를 계기로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리스 내에서의 아테네 영향력의 확대는

다른 폴리스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지게 되었고

BC 431년부터 약 30년 동안

그리스 폴리스들 간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의 마무리는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아테네를 제압함으로써 마무리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스파르타가 다른 나라들을 힘으로 제압하며

그리스 전체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했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가 치루어진지 약 100년이 지난, BC 399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 2세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소아시아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를 해방하겠다고 선언하며 페르시아를 공격합니다.

 

이에 그리스 내에 또 다른 강대국이었던

코린토스, 아테네, 테베에 원정길에 참여하라고 요청했지만

요청을 받은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는,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동맹국들에게 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모든 전리품들과 기존 아테네 제국이 받고 있던 조공까지 혼자 독차지함으로써

그리스 세계에서의 스파르타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 2세는

이러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와의 전쟁을 선언한 후

프리기아, 리디아, 사르디스 등을 침공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막대한 전리품을 챙기게 됩니다.

 

아게실라오스 2세는 페르시아 기병에 유리한 평야를 피하고

보병에 유리한 위치로 페르시아의 티사페르네스를 유인하여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합니다.

 

아게실라오스 2세는 페르시아를 휩쓸며

스파르타군의 위세를 떨쳤고

전투에서 패배한 티사페르네스는

그 책임으로 페르시아 내에서 처형을 당합니다.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후임으로 보내져 온 티토라우스테스는

아게실라오스 2세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지략으로 소아시아에서 몰아낼 계책을 마련합니다.

 

그는 로도스인, 티모크라테스를 그리스로 보내

강대해지는 스파르타에 경계심을 품고 있던 아테네, 아르고스, 테베, 코린토스 등

국가의 유력자에게 뇌물을 건네

그리스 폴리스로 이루어진 반스파르타 연합군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테베는 약소국이었던 로크리스에게 접근하였는데

로크리스는 포키스와 대립관계를 가진 상황이었습니다.

 

로크리스는 포키스를 침략하였고

이에 포키스는 동맹국인 스파르타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작은 나라들 간의 싸움에도 스파르타가 관여하자

이에 테베는 스파르타의 횡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다른 폴리스들에게 연대를 주장했고

오랜 세월 간 앙숙이었던 아테네와도 손을 잡으며

거대한 반스파르타 연합군을 형성합니다.

 

 

 

BC 395. 테베는 할리아르토스 전투에서

소규모의 스파르타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스파르타 측에서는 이 전투에서

과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종지부 찍었던

리산드로스 장군을 잃게 되었으며

동시에 파우사니아스 왕은 패배의 책임으로

스파르타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스파르타의 정치 구조는 두 명의 왕 체제였는데

이로써 스파르타의 권력은 자연스레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난 아게실라오스 왕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한편, 그리스 본토에서 스파르타를 상대로 전쟁이 일어나자

아게실라오스 왕은 페르시아 정복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리아르토스 전투에서 테베가 승리를 가져간 후

테베와 포키스 사이에 짧은 휴전이 이루어졌고

반스파르타 연합군은 코린토스에 대규모 병력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병력에 맞서기 위해 스파르타에서도

대규모 군사를 파견합니다.

비록, 명성이 빼어난 장군과 지도자가 없었고

아게실라오스는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길이었지만

스파르타의 육군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습니다.

 

BC 394. 테베 중심의 연합군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군들은

네메아 (Nemea)강 부근에서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중장보병 (hopslite) 전투에서는

주로 각 군대에서 강한 병력을 갖고 있는

우측 방이 승리를 거두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스파르타 우측 주력 부대는 아테네의 군대를 압도하였고

반면 테베, 아르고스, 코린토스인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펠로폰네소스 적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아테네를 잡았던 스파르타군은 병력을 돌려

다수의 아르고스, 코린토스와 테베에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네메아 전투에서 결국 연합군은 2,800명을 잃었고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군은 1,100명의 병력을 잃으면서

스파르타 육군이 우세를 점하였습니다.

 

같은 해, 또 다른 주요전투인 크니도스(Cnidus) 전투는

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아게실라오스 2세가 페르시아 원정에 떠나있는 동안

페르시아와 스파르타는 양쪽 모두 대규모 함대를 편성했습니다.

 

아게실라오스 2세는 평소 에게 해국가들의 함선을 집결시켜

120척의 함대를 구축해 놓았는데

이 지휘권을 자신의 처남인 페이산드로스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페이산드로스는 이러한 거대 지휘권을

가져본 적이 없어 전투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한편, 페르시아 함대는 이전부터

페니키아(Phoenician), 실리시아(Cilician), 키프로스(Cypriot)

공동 함대를 편성했는데

여기에는 아케메네스 총독

파르나바주스 2(Achaemenid satrap Pharnabazus II)

아이고스포타미 전투(Battle of Aegospotami)에서 패배 이후 망명했던

아테네 출신의 명장 코논 (Conon)이 공동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이산드로스가 이끌던 스파르타 함대와

파르나바주스 2, 코논이 이끌던 페르시아 함대는

BC 394년에 크니두스 지점에서 맞붙게 됩니다.

 

스파르타는 결연하게 싸웠지만

결국, 경험 많은 페르시아 함대에 패배하게 됩니다.

 

이때, 다수의 함선들이 가라앉거나 포획되었으며

스파르타 함대는 바다에서 전멸합니다.

페르시아는 크니도스 전투의 승리 이후

이오니아(Ionia)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코스, 니시로스, 텔로스, 히오스, 미틸렌테, 에페소스, 에리트라이

도시들에서 스파르타 관리들과 요새를 몰아냈습니다.

 

스파르타가 네메아 전투에서 우위를 보이고

크니도스 해전에서는 패배를 맞이할 때쯤

아게실라오스의 군대는 테살리아를 거쳐 본토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군하는 동안 테살리아(Thessalian)을 파괴하며 약탈한 후,

보이오티아에 도착했습니다.

 

아게실라오스는 보이오티아에서

반스파르타 동맹 국가들의 군대와 마주칠 것으로 짐작하여

자신이 이끌고 온 군대를 재정비합니다.

 

아게실라오스의 군대는 페르시아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용병들의 숫자를 늘렸는데

여기에는 주로 자유를 얻은 노예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어, 오르코메노스(Orchomenus)에서 온 스파르타 연대와

코린토스만을 건너 수송된 또 다른 연대가 합류하며

아게실라오스의 군대는 증강되었습니다.

 

스파르타 군대와 테베 중심의 반스파르타 군대는

코로네이아(Coronea)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전투의 양상은 네메아 전투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갔습니다.

 

여느 그리스 중장보병 (hopslite) 전투처럼

양쪽의 우측 방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테베가 돌파하는 동안 나머지 연합군들은

스파르타의 우측 주력 부대에 당했습니다.

 

테베의 주력은 나머지 군대가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자신들의 주둔지를 향해 반대로 돌파하기 위한 대형을 이루며

아게실라오스의 주력 부대와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아게실라오스의 군대는

테베와 연합군의 병사들을 압도하며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승리 후 아게실라오스는 자신의 군대와 함께

코린토스만을 거쳐, 스파르타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BC 395년부터 시작된

스파르타, 반스파르타 연합군 전쟁인, 코린토스 전쟁 2부로

코린토스 전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BC 394년에 치루어진 3가지 전투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스파르타는 육전인 네메아 전투와 코로네이아 전투에서는

우위를 차지하였지만

크니도스 해전의 패배를 통해

바다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연합국들은 스파르타 육군에 함부로 덤빌 수 없었지만

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며

스파르타가 중부 그리스를 거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다음 세계사 영상에서는 페르시아가 개입하는

코린토스 전쟁 3부로 이어가겠습니다.

 

그럼,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